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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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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순간, 테엘 미 테엘 미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있을 때 즐기시라, 팬덤을 넘어선 ‘국민가요’ 원더걸스의 를 부르며 </font>

▣ 최민우 음악평론가

테엘 미, 테엘 미, 떼 떼데 떼데 테엘 미. 테엘 미, 테엘 미, 떼데떼 떼데 테엘 미. 이걸 곡조를 붙여 따라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10대일 것이다. 혹은 20대일 것이다. 혹은 30대이거나 40대, 어쩌면 50대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 당신은 중학생일 수도, 고등학생일 수도, 대학생일 수도, 군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평소에 음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성형수술 비용이나 대출 이자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일 수도 있고 자식이 특목고에 못 갈 것 같아 걱정스러운 가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후렴을 따라할 때는 하나가 된다. 테엘 미, 테엘 미, 떼 떼데 떼데 테엘 미.

‘롤러장 디스코’의 영리한 부활

음악업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중이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최초로 선보인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 때문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원더걸스의 메가히트곡 (Tell me) 때문이다. 이 노래는 아마도 2007년의 거의 유일한 ‘국민가요’급 노래일 것이고, 2007년 하반기에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문화상품이다. 포털 사이트 동영상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몇 편씩 원더걸스의 춤을 따라하는 소년소녀들(과 군인들과 심지어는 학교 선생님들)이 만든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올라오고 있다. 멤버들 사진은 연예인 사진 게시판에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특히 통통한 볼살 때문에 ‘만두 소희’란 별명이 붙은 안소희의 인기가 높다). 내일모레 마흔이 될 ‘아저씨’들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재미있고 좋다고 한다. 대학 캠퍼스 무대에 서면 여학생들의 ‘비명’보다 남학생들의 ‘함성’이 더 크게 그들을 반긴다. 덧붙이자면, 아마 이 ‘함성’이야말로 (예전에 핑클이 그러했듯이) 이들이 범국민적 성공을 거둔 여성 아이돌 그룹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는 영리한 노래다. 이 노래가 기둥으로 삼고 있는 것은 198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 스테이시 큐가 부른, 롤러장 시대를 빛냈던 디스코 히트곡 (Two of hearts)다. 80년대 초·중반 디스코·하우스 사운드의 ‘아날로그’한 재현은 현 일렉트로닉 신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데, 는 그런 경향을 과감하게 수용하면서 그것을 ‘인기가요 스타일’로 재치 있게 바꿔놓는다. 또한 전주에 잠깐 등장하는 양념 정도로 대충 활용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곡 전체의 콘셉트로 밀고 나간다. 대중에게나 ‘마니아’에게나 환영받을 만한 시도다. 여기에 꼭짓점 댄스만큼이나 따라하기 쉬운 춤과 앙증맞은 패션이 더해졌다. 가히 기획의 승리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인기 분석이란 결국 사후적인 것, 달리 말하면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 요인’인 것이다. 사실 음악업계는 늘 해오던 대로 해왔을 뿐이다.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몰려든 후보자들 중 이모저모 따져 멤버들을 골라 뽑고, 노래를 가르치고, 춤을 가르치고, 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곡을 준 뒤 개성적인 옷을 입혀서 무대에 세웠다. 그리고 그게 터진 것이다. 데뷔곡 (Irony)에서 스쿨걸 룩으로 춤을 출 때 바로 터진 건 아니었지만. 박진영은 문화방송 와의 인터뷰에서 원더걸스의 인기 비결에 대해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게 있는 가수가 나왔을 뿐인 것 같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했는데 사실 누구라도 그런 질문에 대해 그것 말고는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인기니까.

인기 분석, 음반 비판? ‘할 말 없음’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은 를 제외한 데뷔 음반의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음반의 기본 콘셉트는 앞서 말했듯 ‘복고의 창의적 활용’이지만 이 콘셉트가 음반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몇몇 곡은 이 점을 흡족하게 충족시키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곡들이 ‘최신 유행’과 ‘우린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요’ 스타일로 흘러서 전체적으로는 잘 나가다 이상하게 딴 길로 빠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이돌 그룹 특유의, 이른바 ‘할인점 스타일 장기자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만약 애초의 콘셉트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더라면 상당히 개성적인 음반이 됐겠지만 아이돌 그룹 활동이 어차피 ‘영원히 함께’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를 고려하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말과는 좀 다른 쪽을 언급하며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작금의 원더걸스 신드롬은 보기에 따라서는 나름 ‘감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냐하면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음악 분야가 (좋은 의미에서) 화제의 중심에 놓인 것이 정말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노래 한 곡 때문에 모두가 즐거워한 적이 최근에 있었던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FT아일랜드, 카라, 그리고 빅뱅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 그룹의 춘추전국 시대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선전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영향력’이 팬덤 바깥에서까지 원더걸스처럼 강력하게 작용했던 예는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이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놀 수 있을 때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며 끝내야겠다. 이런 재미는 스냅사진과 같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아니면 못한다. 아마도 그건 원더걸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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