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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을 세울 것인가 눕힐 것인가

등록 2007-10-16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주 남산 열암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대형 마애불, 유지와 복원을 둘러싼 논란

▣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부처님 일어나십시오!”

신라 불국토였던 경주 남산 열암골 들머리에 요즘 불자들이 이런 현수막을 내걸었다. 남산 후미진 남동쪽 끝자락 골짜기 기슭에 엎어졌다가 최근 발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1200여 년 전 신라 마애불에게 드리는 기원이다. 8~9세기 신라 서라벌(경주) 장인이 바위에 정성껏 새겼다가 통째로 넘어지면서 땅에 깔리고 흙에 묻혀 1천 년 세월을 견딘 인고의 역정을 끝내라는 뜻일 터다.

△경주 남산 열암골 능선 기슭에 엎어진 마애불 바위의 전체 모습. 9월 흙에 묻혔던 바위 아랫면을 발굴해 엎어진 부처상을 온전히 드러낸 뒤 찍은 것이다. 현재는 철망과 울타리, 모래 마대 등으로 둘러싸 보호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마애불 바위를 천천히 틀어서 아랫면의 마애불 전면을 누운 부처(와불) 형태로 드러낼 계획이다.

밟고 다녔던 장애물이 성소였다니

이 마애불을 새긴 바윗덩이는 길이 6m20cm에 폭이 2m50cm, 무게 70t이다. 새겨진 불상의 키만 6m에 가깝다. 남산에서 가장 후미진 남동쪽 열암골의 산능선 아래 옛 절터 동쪽 언덕배기에 비스듬히 걸쳐 있다. 경주 도심에서 20여 분 차로 달려와 다시 30분 가까이 오솔길을 올라가야 닿는다. 원래 부근에는 경북도 지정 문화재인 목 없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과 원찰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었다. 5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신참 연구원이 절터를 조사하다 통행로 부근인 바위 아랫부분에서 발과 옷 주름 일부를 확인하면서 마애불은 세상에 다시 드러났다. 9월 날카로운 콧대 등의 윤곽선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얼굴 부위가 흙 속에서 발굴되어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답사 때마다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하며 밟고 다녔던 장애물”(박방룡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장)에서 순식간에 순례객이 잇따르는 성소로 격상된 마애불 바위는 뜻밖의 논란도 불렀다. 과연 마애불을 세울 것인가, 눕힐 것인가.

9월 얼굴이 공개된 뒤 마애불 복원 방침을 놓고 발굴 주체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쪽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바위벽에 새긴 통일신라 마애불 가운데 원형을 가장 온전하게 간직한 것으로 평가되는 마애불 복원에 대해 학계나 교단 쪽의 견해가 엇갈리는 까닭이다. 애초 문화재 원상 복원 원칙에 따라 빠른 시간 안에 원상태대로 세우자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 기술, 신앙상의 문제 등으로 복원 얼개, 시기 등을 숙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불교계에서는 거꾸로 엎드린 부처의 자태가 더욱 신비스런 섭리를 느끼게 하는 만큼 현 상태로 보존하자는 여론도 적지 않다. 9월30일 이후 철망을 치고 보호 중인 마애불 바위에는 지금도 평일 30여 명, 주말 100명 이상의 불자, 답사객들이 순례하고 있다.

“연말까지 조금씩 돌려 옆으로 눕힐 것”

현재 연구소 쪽 방침은 땅 위에 거꾸로 처박힌 마애불을 연말까지 조금씩 돌려 90도로 눕혀놓겠다는 것이다. 하늘을 보고 누운 와불 형태로 만들어놓고 온전한 모양새를 살펴보면서 현재 보존 상태와 안전도를 진단하고, 복원 절차와 얼개는 시간을 두고 가늠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9월10일 마애불 얼굴 발굴 현장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바로 세우겠다고 공언한 데 비하면 신중한 행보다. 일단 발굴 문화재의 원형과 보존 상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얼굴과 몸체의 전모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병목 연구소 소장은 “원형 보존 여론도 있으나 경사면에 걸친 마애불 바위의 상태가 불안정하다. 땅을 파서 밑에서 불상 얼굴을 올려보고 분석하는 대안도 생각했으나 아래가 암반이라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마애대불이 자리한 원래 터와 부근 절터에 대한 역사적·고고학적 정보도 별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마애불과 근처 다른 석불이 놓여진 절터는 원래 서라벌의 유력한 귀족층이 개인 발원을 위해 조성한 명당 원찰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와 마애불 바위 바로 위의 능선에 오르면 동으로는 토함산 자락, 남으로는 박제상 망부석 전설이 서린 치술령과 울산 가도, 서로는 남산 자락에 한눈에 잡히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3월부터 절터의 정비 조사를 벌이던 와중에 발견된 마애대불의 원래 자리 또한 확실치 않다. 얼굴 등이 온전한 것으로 보아 강한 충격으로 단번에 바로 앞으로 넘어진 것으로 일단 본다. 하지만 구체적인 붕괴 경위나 마애불의 원래 터 비정은 마애불을 돌려 눕혀놓은 상태에서 그 옆의 눌렸던 터를 정밀 조사해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장 조사를 맡은 권택장 학예사는 “마애불 바위 위쪽이 여러 돌무더기들이 불안정하게 널린 너덜겅 지역이어서 지진, 폭우 같은 모종의 충격에 의해 돌들이 밀려오면서 순식간에 엎어지지 않았나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불상을 돌려 눕히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산속 오지이고 남산이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진입로를 넓혀 크레인을 들여올 수는 없다. 따라서 차량의 구멍난 타이어를 교체할 때 카센터 정비업소 등에서 흔히 쓰는 유압 설비를 바위 곳곳에 고정하고, 조금씩 잭을 조여 들어올린 뒤 몸체를 서서히 트는 방식이 유력하다. 바위를 틀 때마다 생긴 공간에는 흙을 채운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다진 흙을 공간에 넣어 바위를 받치면서 부처상을 위로 눕혀놓게 된다. 이 과정에만 400㎥ 정도의 흙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래 암반에 닿아 있는 마애불의 머리 부분과 허벅지, 배꼽 부분은 암반의 압박으로 표면의 껍질이 벗겨지는 박리현상도 보여 조금씩 몸체를 돌리는 것도 민감한 훼손을 낳을 수 있다. 또 마애불 바위 아래쪽도 급경사 언덕이어서 이 부위가 쓸려가지 않도록 철골 등으로 보강공사를 해야 한다. 관련 업체의 말로는 이 과정에만 수십억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일단 부처를 눕혀놓게 되면, 다음부터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도상 및 보존 처리를 위한 분석과 복원 방안 연구 검토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지 소장은 “복원에 대한 교계 등의 여론도 감안해야겠지만, 마애불을 눕히게 되면, 지금처럼 엎드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기적처럼 남은 얼굴·몸체 복원 신중히

학계도 기적처럼 남은 마애불의 얼굴과 몸체를 온전하게 보도록 복원해 예술사적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세기 후반~9세기 초 새긴 것으로 보는 마애불은 옆 얼굴과 정면 얼굴이 크게 달라 관심을 모았다. 언론 공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날카로운 콧대와 찢어진 눈초리의 권위적인 옆 모습과 달리 정면은 디지털 스캔으로 입체 실측한 결과 온화하기 그지없는 순박한 용모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보는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신라 장인이 다듬은 풍성한 볼과 정감 어린 정면 눈의 조형이 흥미로운 대조를 빚은 것이라고 미술사가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설명했다. 미남부처로 유명한 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불과 카리스마를 지닌 석굴암 불상의 특징을 함께 지녔다는 분석도 있다. 손등을 보인 양손을 가슴과 배에 댄 독특한 손갖춤(수인), 신라 중대 전성기 조각과 하대를 잇는 현실주의 조각의 드문 사료라는 점도 복원론의 배경이 된다.

하나 분명한 것은 섣불리 복원을 시작했다가, 뒷감당을 못하는 사태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복원 모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해체 도중 딜레마에 빠져버린 전북 익산 미륵사 해체의 전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10일 현지 마애불을 참배한 불자 이상헌(48·경주 황오동)씨는 “새길 당시 얼굴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불자들의 신심과 환경을 감안해 신중하게 보존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1200여 년 전 서라벌의 어느 신라 귀족이 복을 빌며 새겼을 열암곡 마애불. 이 조각물은 이제 이 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후대인들의 인식과 통찰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탈바꿈했다. 천상의 부처는 우리 문화재 동네에 천근만근의 화두를 빙긋이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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