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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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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악플을 권하는가

등록 2007-02-03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유니의 자살이후 ‘악플러’에 쏟아지는 비난에서 언론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주목’ 받아야 사는 포털과 인터넷 언론이 던진 ‘악플’이란 욕망의 낚싯대</font>

▣ 강명석 기획위원

두 여성이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 한 사람은 인기 탤런트 오지호의 옛 연인이었던 호스티스 출신의 여성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수 유니다. 두 사람 모두 죽기 전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점을 빼면 그들의 죽음에는 큰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차마 웃을 수도 없는 저질 코미디 한 편을 우리에게 남겼다. 1월21일 유니의 죽음이 알려지자 수많은 연예 관련 매체에서는 유니의 죽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네티즌들의 악플(악성 댓글)을 꼽았다. 악플이 사람 죽인다고, 인터넷 문화 문제라고, 앞으로 실명제라도 해서 단속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그 매체들은 오지호가 자신이 죽은 여성의 옛 연인이었음을 인정하자마자 앞다투어 기사로 ‘악플’을 썼다. 죽은 여성이 이른바 ‘×××’ 룸살롱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연예인과 ×××의 관계’ 같은 기사를 올렸고, 오지호가 유가족의 압력 때문에 사실을 인정했다는 추측을 거리낌없이 뿌렸다. 심지어 문화방송 은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죽은 여성의 집까지 찾아가 유품을 촬영하기도 했다. 누구도 죽은 여성에 대한 애도나, 지나친 사생활 취재가 한 연예인의 장래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에 대한 우려 따윈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들이 불과 며칠이 지나 악플러들을 비난한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물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개그우먼 김형은의 미니홈피에 “잘 죽었다”는 글을 남기고, 유니의 미니홈피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남긴 악플러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연예계에서만큼은 악플러들을 가장 부추기는 것은 바로 언론매체의 기사들이다.

무대 위 가슴 노출 사진도 버젓이

악플은 본질적으로 매우 이중적인 두 가지 심리가 동반되는 행위다. 악플러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강하게 어필하려는 심리를 가진다. 악플의 내용이 심할수록 네티즌들은 그에게 비난이든 호응이든 어떤 반응들을 보인다. 그리고 정말 심한 악플은 악플러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해당 연예인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악플러의 입장에서 악플은 지금까지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높이 있던 연예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거나, 그들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악플은 댓글란의 ‘대세’를 잘 파악하고 따라야 할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선플’(선한 댓글)이 넘치는 곳에서 악플을 다는 것은 눈에 띄기만 할 뿐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해당 연예인에게 고소를 당할 각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악플러는 자신 외에도 무수한 악플이나 비난으로 가득한 곳에 있을 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인터넷의 연예 기사들은 바로 이 ‘대세’를 형성하는 구실을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연예 기사들 중 상당수는 ‘악플 권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악성 기사들이다. 그룹 씨야의 멤버 남규리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도중 의상이 흘러내려 가슴을 노출하는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떤 언론사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마저 하지 않은 채 남규리의 사진을 그대로 올렸다. 멤버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을 먼저 걱정하거나, 매체의 양심상 그런 사진을 올리지 않겠다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연히 그 기사들 밑에는 선정적인 내용의 악플들이 올라온다. “이런 사진이 올라오는 걸 보면 자작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처음에 언론 윤리만 잘 지켰더라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일을 오히려 언론이 나서 더 크게 만든 셈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정론이 아니라 무엇이든 사건을 더 크게 부풀리는 것뿐이다.

지난 몇 년간 유독 섹시 콘셉트의 가수들이 쏟아져나온 것은 단지 대중이 섹시 콘셉트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이효리와 채연처럼 섹시함에 자기 고유의 캐릭터를 만든 경우가 아니면, 섹시 콘셉트로 성공한 여가수는 거의 없다. 오히려 섹시한 여가수는 기획사의 입장에서 가수‘만’ 있으면 홍보가 가능한 유일한 콘셉트이기에 많이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다 할 홍보 방법이 없더라도 인터넷 언론매체들이 알아서 그 가수들을 더욱 선정적으로 포장해 기사화하기 때문이다. 섹시 콘셉트로 나와 무대 위에서 노출 해프닝이라도 일으키면 무명의 가수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순식간에 검색어 1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사들 밑에는 반드시 악플러가 따라온다. 악플러가 없으면 기사는 주목받기 힘들고, 그런 기사가 없으면 악플러는 글을 남길 곳이 없다. 이런 공생관계를 통해 언론매체는 성실한 취재와 분석을 통한 기사의 질적 완성 없이도 연예 산업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한 언론사가 영화 의 예고편만 보고 출연 배우의 연기력을 비난하고, 스타들에게 한복을 입혀 설 인사를 오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자 영화 관계자들이 취재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이든 ‘네티즌 논란’이면 OK?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올리는 매체는 아무리 취재력이 부실하다 해도 이 ‘악플의 메커니즘’을 통해 어떤 톱스타에게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는 악플을 통해 스타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악플러들과 마찬가지다. 언론은 때론 악플러를 비난하고, 때론 스타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비난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공생관계다. 물론 악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악플러들이 개과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터넷에서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개개인의 윤리적·도덕적 판단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수익을 얻는 언론매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통해 방문자를 끌어들이는 포털 사이트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악플의 문제는 단지 개개인의 인격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방법으로든 ‘주목’을 받아야 살아남는 포털 사이트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언론매체가 얽혀 있는 산업적인 문제다. 이것이 단지 몇몇 비정상적인 악플러들만을 비난할 수 있는 문제일까. 비정상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악플러는 사라져야 하지만, 특정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평범한 네티즌들까지 악플러로 만드는 ‘악성 기사’도 사라져야 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국방송 에 출연한 성유리의 연기력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물론 사람의 주관에 따라 성유리의 연기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언론은 성유리의 연기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기자가 책임을 지는 판단을 내리는 대신 ‘네티즌 논란’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쓰면서 네티즌의 의견을 잔뜩 인용했다. 결론은 없고 언론은 슬쩍 빠져나가면 남는 건 그 논란이 확대되는 것뿐이다. 당연히 팬과 안티 사이의 다툼이 일어나고, 그중 일부는 흥분해서 어느 순간 악플러가 될 수도 있다. 과연 유니에게, 오지호와 그의 옛 연인에게 진정으로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악플러뿐일까. 겉으로는 악플러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스스로 악플러를 끌어들이는 언론매체의 이중성은 현재 한국 연예 저널리즘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선정적 기사로 승부하는 천박한 언론

다른 분야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연예계는 특히 언론이 독점적인 위치를 가장 빨리 잃어가고 있는 곳이다. 과거처럼 몇몇 매체가 연예계 정보를 독점하지도 못하고, 작품이나 스타에 대한 정보나 심도 있는 분석은 기자들보다 오히려 마니아들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다수 인터넷 언론매체는 더 성실한 취재를 통해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는 대신 악플러까지 양산할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선택했다. 이런 마인드가 별다른 노력 없이 오직 여가수의 섹시함으로 버티려는 기획사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저 노출으로만 승부하는 섹시가 천박함이 되듯, 선정적인 기사로만 승부하는 언론 역시 천박하기는 매한가지다. 물론 지금은 ‘주목’받으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섹시 가수의 수명은 길지 않고, 악플러들은 고소당했다. 그러면 악플러들을 끌어모으는 언론들은 어떻게 될까.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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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만으로 악플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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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오는 7월 실명제 확대되지만 실효성은 의심… 결국 자율만이 희망</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하리수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상습적인 악플을 달아온 ‘악플러’를 고소했다. 이경실씨는 인터뷰 중에 악플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강원래씨의 미니홈피에도 장애인 비하 발언이 올라왔다. 이렇게 악플은 공인 중에서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경우가 흔하다. 프라이버시 취약 계층인 이들이 악플의 타깃이 되는 것이다. 흔히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남의 상처를 건드리며 즐기는 심리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원래 익명성은 사회적 약자의 발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다. 그렇다면 약자를 위한 익명성이 약자를 해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일까? 실명제는 악플을 막을 수 있을까?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오는 7월1일부터 실명제가 확대된다. 하루 평균 이용자가 10만 명 이상인 포털과 미디어 사이트의 게시판과 댓글에 실명제가 의무 적용된다. 개정안에는 익명성을 사이버 명예훼손의 주범으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7월부터 악플로 인한 폐해가 줄어들까?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하리수, 강원래 등에 대한 악플은 실명의 공간인 미니홈피에서 발생했다. 악플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포털도 대부분 사실상의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실명제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방증이다. 오히려 익명성보다는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를 함부로 대하게 되는 비대면성, 다수의 악플러 속의 하나로 숨어서 안도를 느끼는 집단성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실명제를 실시해도 비대면성과 집단성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정책실장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악플은 단순히 인터넷의 문제가 아니라 소수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문화적 풍토가 인터넷에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인터넷 문화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명제 외에도 악플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포털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실시하고, 댓글 수를 제한하는 등 조처를 취하고 있다. 오병일 실장은 “문제 설정이 잘못됐다”며 “‘실명제냐 익명제냐’가 아니라 ‘강제적 실명제냐 자율적 선택이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강제하는 실명제가 아니라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실명제를 실시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당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고 김형은씨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달았던 사람은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자신의 미니홈피와 김형은씨의 미니홈피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고 유니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누리꾼이 댓글 자정운동을 호소해 호응을 얻었다. 그래도 자율만이 여전히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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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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