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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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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군자가 돼버린 스타들이여!

등록 2006-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왜 텔레비젼과 신문에서 연예인들은 한없이 착하고 아름답게만 그려지는가… 가십과 사생활을 솔직하게 즐기는 프로그램 의 등장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필자가 만약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사장이라면, 어떤 연예인 지망생을 캐스팅하기 전 그의 사생활부터 조사할 것이다. 재능? 책 읽는 연기나 끔찍한 라이브 실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스타가 될 수 있다. 물론 외모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외모도 기본만 갖추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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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이 눈하고 코‘밖에’ 안 했다고 고백하는 게 요즘이다. 하지만 사생활 관리를 못한 경우는 대책이 없다. 정말 캐스팅하고 싶다면 일단 미니홈피부터 폐쇄시킬 일이다. 미니홈피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곧바로 ‘국민적 비호감’이 되는 세상이다. 이준기는 흥행 뒤 무명 시절 미니홈피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 글이 뒤늦게 인터넷에 퍼지면서 ‘친일 논란’을 겪어야 했다. 또 방송인 조정린은 몇몇 연예 포털 사이트에 몇 년간지속적으로 올라온 자신에 대한 칭찬들이 자작극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말한마디 잘못하면 곤욕을 치루는 세상이다.

물론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그것이 곧바로 연예인의 추락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언행은 주홍글씨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조정린의 경우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오를 때마다 여전히 자작극 의혹에 대한 악성 리플이 따라다닌다. 연예인들의 확인되지 않은 추문을 담은 ‘연예인 X파일’이나 연예인들에 관한 악성 루머가 퍼지는 것 역시 그것이 사실일 경우 연예인에게 치명적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즘 대중은 연예인에게 매우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그 선에서 조금만 비껴나도 한동안 네티즌의 십자포화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는 한국에서 스타가 가진 미묘한 위치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판 ‘귀족’처럼 보인다. 김태희가 한 화장품 광고(CF)에 출연하며 5년간 50억원을 받을 정도로 광고 출연료가 높아졌고, 드라마와 영화 시장의 성장과 한류 시장의 등장으로 톱스타들은 이제 신문 경제면에서 이름을 볼 수 있는 대부호가 됐다. 과거 스타들은 1년 내내 활동했다면, 요즘의 톱스타들은 1년, 혹은 2~3년에 한 편의 작품에 출연한다. 대신 그들은 사업 활동을 하거나, 명품 브랜드의 론칭 파티에 더 자주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대중이 보기엔 그렇게 인기 있는 것 같지 않은 연예인도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 각종 사업에서 성공하기도 한다. 또 10~20대 초반의 스타 연예인들은 엄청난 부는 물론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스타는 단지 인기만 많은 게 아니라 미국처럼 일반인들은 꿈꿀 수 없는 인생을 사는 ‘셀러브리티’(Celibrity)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각종 매체를 통해 그들의 생활을 ‘구경’한다. 인터넷상에 스타의 화려한 집 사진들이 계속 올라오는 건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이는 대중이 연예인의 사생활에 집착하는 중요한 이유다.

미국도 한국처럼 스타의 사생활에 집착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아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말 터부시되는 일들만 아니면 연예인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 미혼 연예인들이 한 집에서 자고 나왔다 해도 그 연예인의 인기가 떨어지진 않는다. 그건 그들이 원래 개인의 사생활에 관대한 탓도 있지만, 그런 사생활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기 때문이다. 가십 매체들은 파파라치를 동원해 쉴 새 없이 스타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대중은 그 매체들을 통해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은 스타들의 사생활을 보며 키득거린다. 반면 한국에서는 스타의 꾸며지지 않은 사생활을 공식적인 매체에서 ‘절대로’ 볼 수 없다. 불과 몇 개월 뒤에 밝혀질 사실도 일단 아니라고 발뺌하고, 인터넷상에서는 온갖 비난을 받고 있는 연예인도 방송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는 한없이 아름답게만 포장된다. 해외 셀러브리티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등장하는 ‘스타의 실수’나 ‘워스트 드레서 뽑기’ 같은 프로그램조차도 보기 힘들다. 하는 것이라 봤자 실명 대신 A군, B양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이니셜 놀이’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발언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뿐이다. 가질 것은 다 가졌는데, 심지어 인간적으로까지 미화된다.

연예인들, 착한 척 하느라 피곤하다

그러니 대중이 스타의 사생활과 도덕성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돈 많고, 인기 많고, 일부 사회적 특혜까지 받고 사는데 매체에서는 늘 멋지고 바르게 사는 사람처럼 포장되니 대중으로서는 당연히 그들에게 정말 모범생으로 살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괜히 ‘굴욕 사진’이니 연예인의 ‘과거 사진’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검증과 적절한 수위 조절을 통해 셀러브리티의 사생활을 다루는 매체가 없다 보니 네티즌 스스로가 파파라치가 되고 연예부 기자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부작용도 일어난다.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밝혀지면 보호될 수도 있는 것들까지 그대로 밝혀지거나, 터무니없는 루머가 떠돌기도 한다. 또 연예인은 그들대로 ‘착한 척’하고 살아야 하니 오히려 고민이다. 케이블방송 M.net의 는 그 점에서 한국형 셀러브리티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주 연예인들의 감추고 싶은 실수 같은 것들을 19위까지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다루는 소재나 사용되는 자료가 이미 인터넷에서 볼 만큼 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좀더 재밌어지려면 참신한 소재 발굴과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연예인을 공식적으로 ‘비판’은 못해도 ‘비꼬기’는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당사자가 본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비판을 가하는 미국식 셀러브리티쇼와 달리, 는 다양한 분장과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언행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정재용의 진행으로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정재용은 동방신기나 SS501 같은 아이돌 그룹 얘기만 나오면 그들에 대해 비꼬기를 두려워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열광적인 팬덤을 가진 그룹들에 대해서는 언행조차 조심해야 하는 상황을 비꼰다. 그렇게 당사자들이 정색하고 뭐라고 하기는 우습고, 그냥 웃자니 약간 속이 쓰린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론화된 소재들은 그것이 공개되는 순간 그저 가벼운 ‘가십’이 된다.

최근 는 프로그램 사상 가장 민감한 소재라고도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의 명품’에 대해 다뤘다. 거기에는 최근 ‘6만원짜리’로 밝혀진 한 가짜 명품 시계를 차고 다니는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소문으로 들을 때는 그렇게 자극적이고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연예인들의 명품이 정재용의 유머가 곁들여진 ‘가십 상품’이 되자 그냥 웃고 지나칠 일이 돼버린다. 어린 나이에 명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는 연예인들이 왠지 얄미울 수도 있지만, 정재용이 먼저 “부럽다. 나도 돈 좀 많이 벌걸” 하며 자학 개그를 선보이는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는 ‘음성 시장’인 루머와 네티즌 파파라치들이 활개를 치고, 연예인들은 정치가 같은 ‘공인’ 취급을 받으며, 연예매체들은 늘 광고촬영 현장이나 찾아가야 하는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벌거벗은 임금님, 벌거벗은 스타님?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사생활 공개나 악성 루머 등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가벼운 가십을 터부시할 이유는 없다. 연예매체가 매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그것을 소화할 때, 오히려 대중은 연예인의 도덕성을 따지기 전에 그 가십을 한 번 읽고 웅성웅성거린 다음, 새로운 가십을 찾는다. 왜 한국의 연예매체는 도 아니면 모식으로 연예인을 완벽한 우상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만들려고 할까. 또 연예인이나 그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는 왜 그들을 천사표로만 포장하려고 하나. 패리스 힐튼처럼 막나가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여자 연예인들은 담배 피우는 것조차 ‘담배 피우는 것 같은 여자 연예인들’이라는 사진이 떠돌며 구설수에 오르는 지금의 상황은 모두에게 답답할 뿐이다. 인터넷에서는 연예인의 치부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방송에서는 연예인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묘사되는 지금의 상황은 마치 동화 을 연상시킨다. 연예인은 현대의 왕 같은 위치에 올랐지만, 대중은 그들을 존경하는 대신 속속들이 벗겨낸다. 대중은 모두가 연예인이 벗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연예인과 연예매체만이 스스로 멋진 옷을 입었다고 자랑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거짓말이 아니라 적당한 노출로 그걸 새로운 패션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센스 아닐까.



관리남녀, 문근영·장동건·배용준…


철저한 사생활 관리와 자선사업 활동으로 높은 인기 쌓아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철저하게 사생활 관리를 하는 연예인들은 반대로 인기에 큰 도움을 받는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 그가 톱스타가 된 것은 그의 연기자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의 온갖 험한 루머들을 담은 ‘연예인 X파일’에서조차 ‘완벽하다’는 평을 받은 깨끗한 사생활 관리가 큰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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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생활과 학교 생활을 철저하게 병행하고, 출연료의 상당 부분을 선행에 쓰는 등의 행동이 그를 데뷔 1, 2년만 돼도 연예인 생활에 너무나 ‘적응’을 잘하는 다른 또래 연예인들과 차별화했다.
장동건과 배용준 등 30대 남성 톱스타에게도 사생활 관리는 톱스타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은 사생활이 거의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사생활 관리에 철저하고, 평소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대중의 호의적인 평가를 얻는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평범한 여성이 장동건과 결혼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온갖 문제들을 가상으로 쓴 글이 유행했을까. 부와 명예, 그리고 대중적인 인망까지 얻는 남성 톱스타들은 일반인들이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현대판 ‘왕자님’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대니얼 헤니와 데니스 오 같은 혼혈 스타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사생활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혼혈인 관련 자선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흠 하나 없는 ‘완벽한 남자’의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 오히려 대니얼 헤니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어색하나마 한국어를 할 때 그 발음 때문에 환상이 깨진다고 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 즉, 한국에서 연예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단지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흠 잡힐 데 없는 사생활 관리까지 동반해야 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앤젤리나 졸리처럼 불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캔들에 휘말렸어도 활발한 자선사업과 같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작품 활동으로 여론을 반전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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