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미니어처 조각가 함진씨, 매향리 불발탄에 도시의 전경 그려넣다… 프라이팬 든 출근 여성, 외식 뒤 헬스클럽 가는 가족 등 그로테스크 넘쳐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누구든 크고 작은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대학 3학년 때 문신, 김준 등 내로라하는 당대 작가들과 함께 이름을 내걸며 모습을 드러낸 뒤 지금껏 주목받고 있는 미술작가 함진(29)씨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군대에서 ‘삽질’하던 시절 그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성완경 교수(인하대)가 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섭외한 것이다. 운 좋게도 그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미술작가로 비엔날레에 참여한 현역병이 됐다. 그는 광주 인근의 부대로 ‘임시 전출’돼 창고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언뜻 생각하면 마냥 호시절을 보냈을 법도 한데 그는 어쩔 수 없는 군인 신분이었다. 수시로 관할부대 ‘요원’이 찾아와 작업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군인 예술가가 광주비엔날레에서 당한 ‘불발탄’
“군인 예술가라는 신분이 아이러니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대가 작품 제작을 지원한다고 해서 작가로서의 열정을 접을 순 없었죠. 그래서 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하나는 기존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벌레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군대 생활을 한눈에 보여주는 미니어처였어요.” 그 두 번째 작품이 문제였다. 광주비엔날레 오픈을 앞두고 작품을 설치했을 때 상관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불발탄 위에 설치한 군대의 일상이 비판적으로 다뤄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불발탄 작품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전시장에서 철거됐다. 이때부터 작품이 사라진 것처럼 자신도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난 뒤 상처를 안겼던 불발탄을 찾기로 했다. 예상한 대로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일명 쿠니사격장) 농섬은 불발탄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이를 수거한 매향리 주민들의 도움으로 2m가 넘는 불발탄을 트럭에 실어 작업실로 옮길 수 있었다. 물론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힙합 스타일을 즐기는 청년이 불발탄을 찾는 게 뭔가 미심쩍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주민들이 쉽게 내주지 않으려 했어요. 어떤 용도로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었죠. 당시 아이디어로 생각한 ‘미사일의 도시’에 대해 설명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매향리 주민들이 완성된 작품을 보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곧바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3개월 가까이 작품을 만들었다. 불발탄 위에 미니어처 도시를 건설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마법사로 변신해 소인국을 만들었다. 작품의 무대가 넓어졌을 뿐 미니어처의 크기는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점토로 만든 새끼손톱보다 작은 인간과 곤충들이 주인공이었다. 이들이 먹고 일하고 놀이하는 장면으로 미사일 윗부분을 채워갔다. 저마다의 공간에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이들에게 들려주려고 했다. 물론 정해진 스토리는 없었다. 보는 사람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그만이다. 차츰 미사일의 도시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동화 속의 도시가 아니라 현실의 도시였다. 다만 도시의 생명체들은 아래에 있는 미사일을 보지 못할 뿐이다. 현재 미사일의 도시는 서울 화동 ‘피케이엠’(PKM)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누구든 미사일의 도시가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면 걸리버가 된 듯한 기분에 빠진다. 폭탄 위에 펼쳐진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려면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도 비치된 돋보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 거기엔 출근길 풍경을 비롯해 공사장, 운동장, 음식물 쓰레기, 식당 등 일상적 삽화가 가득하다. 각각의 풍경엔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풍자가 담겨 있다. 예컨대 출근길 풍경에 있는 출근하는 여성은 달걀 프라이를 하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고, 노인정에 가는 노인은 의치가 바닥에 떨어져도 뛰어가는 식이다. 신나게 외식을 나가는 가족은 식당에서 고단백의 음식을 먹은 뒤 다이어트를 하려고 헬스클럽에 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위험사회라고 하잖아요. 지구촌 도처에서 쉴 새 없이 폭격이 이뤄지는 게 실제 상황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위험을 남의 일로 여기며 아등바등 살아가죠. 그런 삶을 뒤돌아보길 바라며 만든 작품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이렇다면 미사일의 도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관람객들은 도시의 일상보다 먼저 불발탄을 바라보고, 고도로 압축된 현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의 도시에서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 인간과 곤충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다. 모두 비슷한 크기로서 아이 같은 어른, 곤충 같은 인간이 되어 공존의 미덕을 배워간다.
어쩌면 점토로 만든 미니어처들은 작가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초창기에 자신을 닮은 점토인형들을 만들 때부터 그랬다. 언제나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부서지는 재료를 사용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이 개미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미물에 작가적 상상력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놀이’라는 화두를 들고 작업을 했어요. 재미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의식 어딘가에 놀이로 치유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이 과정에서 내면의 나를 만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파리와 소년의 사랑… 세상의 미물이 새롭다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시도한 작가는 고개를 ‘살짝’ 돌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스펙터클에 익숙한 시대적 분위기에 “No”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종이의 뒷면에 관심을 갖게 되자 세상의 ‘미물’로 여기던 것이 새롭게 보였다. 여기에서 가 잉태됐다. 파리와 개미가, 파리와 소년이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박제 파리가 꽃밭에서 사람과 키스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약하고 아프고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따지고 보면 약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 서로 기대고 위로받고 싶어하면서도 소통의 방식, 관계맺기에 서투른 탓에 혹은 기대만큼의 것을 채우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에 혼자만을 감당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뭔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발언을 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인데 이제야 끼어들 틈을 찾았다.” 그의 작업 영역이 평면 미니어처로 ‘확장’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공위성 사진을 평면에 재구성하면서 “욕망 덩어리의 도시에서 사는 모습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사탕을 보고 달려드는 개미와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언젠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갤러리 ‘드 아펠’(The Apple)에서 관장의 ‘주의’를 무시하고 보호받는 건물의 벽을 깨뜨려 작품을 완성하고, 군대시절 몰래 카메라 ‘로모’에 손가락 크기의 인형을 이용한 군인의 ‘표정’을 담아 제대 뒤 사진전까지 열었던 청년. 그런 당돌함에서 작은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나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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