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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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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명령, 진지를 구축하라

등록 2005-09-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젊은 작가 9명의 현주소를 밝히는 일민미술관 ‘사계청소전’
다양하고 독창적인 작업으로 방해물 제거에 나섰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 미술계의 얄팍함을 거론할 때 젊은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특유의 ‘순발력’으로 기성 미술의 가치와 태도를 재빨리 이해하고, 영리하게 자신과 작업을 이미지 메이킹한다는 것이다. 신선한 감각과 독특한 취향에서 완성과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날림의 흔적이 곳곳에 밴 작품을 ‘트렌드’로 읽길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청년 미술의 진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리라. 지금 젊은 작가들은 무엇을 지향하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을까.

지난 9월1일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젊은 작가 윤사비(28)씨와 김영은(25)씨가 함께 마련한 ‘수도권 사랑 풍경’이라는 제목의 연주 퍼포먼스였다. 기존의 연주회를 생각하면서 퍼포먼스를 관람했다면 머리에 쥐가 났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생경한 연주인 탓이다. 실시간으로 연주되는 음악을 텍스트로 중계하고 음악이 연주되는 하드웨어적인 과정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작업이었다. 두 작가가 무정형의 음을 들려주면 연주 해설자로 분한 성기완씨가 스포츠 혹은 게임을 중계하듯 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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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문자로 중계 ‘수도권 사랑 풍경’

“요즘 미술은 시각 중심 예술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미술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면 어떤 시야를 확보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다른 감각까지 포괄하는 미술을 생각했다”는 윤씨의 말처럼 ‘수도권 사랑 풍경’은 감각의 확장을 통해 삶의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젊은 작가가 이미지를 텍스트로 삼아 비주얼을 가지고 노는 데 익숙한 세대를 자극하려면 색다른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소리’를 문자로 중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씻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민미술관이 마련한 ‘프로젝트 139’ 시리즈 ‘사계청소’(射界淸掃)전은 자신의 섹터를 확보하려는 젊은 작가들이 사계를 청소하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하고 독창적인 작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139’의 올해 전시는 독특하게 진행됐다. 선정된 9명의 젊은 작가가 서로의 뜻을 모아 전시 주제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서 정한 주제 ‘사계청소’는 효과적인 공격을 하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는 군사작전을 일컫는 말이다.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자리를 구축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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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계청소’에 돌입했다. ‘수도권 사랑 풍경’이 미술의 미래를 예견케 한다면, 김지혜(30)씨의 ‘지장물(支障物)에 관한 이야기 2005’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잊혀진 풍경을 ‘재현’하고 잊혀질 오늘을 ‘기록’하는 작품이다. 미군기지 확장계획으로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들을 보여준다. 폐교 운동장의 녹슨 구름사다리와 언덕 위의 천주교 공소, 마을회관 등으로 경험과 감성을 자극하고, 60대 전후의 주민들이 기억을 더듬어 몸의 경험을 간직한 삶의 터전을 지도로 만들기도 했다.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자리를 살피는 데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등장하기도 한다. 옥정호(31)씨의 ‘똘이장군, 타잔을 초청하다’는 부활을 꿈꾸는 과거의 영웅을 현실로 끌어들여 조롱하면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똘이장군-제3땅굴’편을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연기한 똘이장군이 타잔을 초청해 광복 60주년 기념식장을 누비고 인사동과 경복궁, 63빌딩 등지를 관광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계청소에 나선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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