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후용리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열흘간 부대낀 아시아 아티스트들
싱가포르 작가의 바다 유목민 비디오 단서 삼아 창작 작업 올올이 엮어내
▣ 문막=김다슬 인턴기자 pinkxanoc@hanmail.net
“아시아 각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10일 동안 일상과 창작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지점을 발견했다.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타이베이 설치미술 비디오 아티스트 투 웨이)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 폐교에 궁지를 튼 극단 노뜰의 ‘후용공연예술센터’ 좁다란 방에 지난 8월10일 아시아 5개국의 아티스트 25명가량이 둘러앉아 ‘합평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2005 국제무대예술워크숍페스티벌 9박10일의 경험을 말하며 공동 창작 의지를 밝혔다. 무엇이 이들을 조그만 시골 마을로 불러들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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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첫 만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콩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린 홍콩아트센터에서 만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획자와 예술가들은 교류 협력을 위한 네트워크로 ‘리틀 아시아 크리에이터스 미팅’을 꾸렸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타이베이 아티스트 빌리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와 더불어 공동 창작 프로젝트 진행에 뜻을 모으고 무대예술 워크숍을 마련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구체화하도록 했다. 이를 주관한 극단 노뜰의 원영오 대표는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들은 개별적으로 작업을 한다. 이에 견줘 극단 노뜰은 하우스 컴퍼니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행사를 주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홍콩·타이베이 이은 세 번째 만남
애당초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공동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될 리는 없었다. 올해 참가자들의 범위는 공연예술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다. 실험 음악가·비디오 디자이너·애니메이션 작가·신체극 안무가·연극 연출가 등까지. 그것도 대부분 각 분야에서 20여년의 내공을 쌓은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의 작업을 한데 엮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용리에는 창작을 주도하는 리더가 없었다.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창작의 한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다만 오십줄에 접어든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체극 안무가 토니 얍이나 원 대표 등이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조율사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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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많은 아티스트들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오로지 아시아적 감수성뿐이었다. 이들이 소통 수단(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동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면 유일한 공통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창작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서로를 관통하는 뭔가가 있어야만 했다. 극단 노뜰의 배우로 워크숍에 참여한 조경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연습실에서 마주했을 때 무엇으로 협력을 해서 결과물을 내올까 막연했다. 함께 몸으로 부대낀다고 해서 창작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과 창작이 하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다른 생활권의 아티스트들이 즉흥극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예술적 감수성이 저마다 다른 탓이다. 그런데 지난 8월2일 이뤄진 첫 번째 즉흥극 작업이 뜻밖으로 쉽게 풀렸다. 싱가포르의 연출·안무가로 비디오 작업까지 병행하는 자이 쿠닝이 공동 창작의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 다. 그가 빈탄 인근의 해협 ‘리아우’(Riau)에서 바다 유목민 생활을 하는 원주민 ‘오랑라우트’(Orang Laut)의 삶을 3년 동안 찍은 비디오 필름을 들고 왔던 것이다. 지금은 개발에 밀려나 둥지를 잃은 오랑라우트족이 무엇을 애써 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문명인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워크숍 참가자들은 오랑라우트족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했다. 어디론가 떠돌 수밖에 없는 바다 유목민과 공연예술을 위해 창작 여행을 떠나는 자신들의 처지가 닮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오랑라우트족의 동작을 즉흥극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랑라우트족의 몸짓 하나하나가 즉흥극의 모델이었다. 언제나 바다를 떠도는 배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을, 배에 서서 있더라도 중심을 아래쪽에 두어 흔들림에 견디는 동작을 무대에 재현하는 것이었다. 우선 자이가 권하는 대로 오랑라우트족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 앉은 자세를 편하게 유지하려면 마음을 닮아야 했기 때문이다.
안무, 실험음악,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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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참가하는 아티스트들은 격렬한 동작을 몸짓 언어로 형상화하는 안무가만이 아니었다. 타이베이의 실험음악가 위 후안 푸가 오랑라우트족의 삶을 담은 몽상적인 음악을 만들어 들려주고 비디오 아트가 무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저마다의 특장을 살린 작품으로 하나의 즉흥극을 완성해가는 식이다. 물론 전체적인 리더가 없다 보니 창작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계도 나타났다. 홍콩의 연출가 앤디 응은 “간혹 막막하고 답답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누군가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면 결과물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생각을 한데 모으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바다 유목민에 관한 즉흥극은 다른 작품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유목민의 일상이 워크숍의 모티브 구실을 하면서 ‘쌍둥이’와 ‘표류’를 주제로 하는 여러 작품을 즉흥극으로 만들 수 있었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비디오 작업으로 즉흥극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타이베이의 비디오 아티스트 투 웨이와 캐리 오우가 도로에서 자동차의 속도감에 흔들리는 사람을 찍었던 것이다. 이 영상을 중심으로 즉흥적인 재연이 이뤄졌다. 공연예술의 도우미 구실을 하던 영상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의 스텔라 소가 만든 2분짜리 애니메이션에서도 즉흥극이 나왔다.
이렇게 아시아의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즉흥극을 만들면서 서로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게 한계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워크숍이 진행된 10일 동안 합평회를 제외하곤 통역을 쓰지 않았다. 이전 워크숍에서 한번 걸러진 언어는 의미와 뉘앙스를 왜곡한다는 교훈을 얻은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만의 소통방식을 터득했다. 후용1리의 동네잔치에 초대받아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미니 퍼브에서 국적을 뛰어넘은 언어로 소통하면서 ‘느낌’으로 통하는 방법을 습득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차이를 좁히고 미래를 여는 도구였으리라.
아시아 대표하는 공동창작품도
이제 아시아 아트스트들의 만남은 교류를 넘어 공동 창작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여전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소규모 작품부터 접근하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품 탄생도 희망사항만은 아니다. 이미 소규모 공동 창작의 결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자이 쿠닝과 타이베이의 첸 춘밍이 공동작업의 결과를 내놓았고 지난해 워크숍에서 만난 싱가포르와 일본의 극단이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 공연예술 교류의 창구로 떠오른 후용리. 내년에는 싱가포르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동시에 아시아의 아트스트를 초대하려고 한다. 이날 폭우를 뚫고 ‘파리’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아시아 아티스트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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