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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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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가라사대] 나라에 뭔가 요구하기 전에 나라를 위해서 뭔가 하란 말이야!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태극기 휘날리며>(2004) 중 대대장이 진태(장동건)에게 건네는 대사

▣ 김도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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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런던 중심가에서 한 무리의 대학생 배낭족들과 마주쳤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지 1년이 지났건만, 그들은 붉은 악마 티셔츠에 커다란 태극기를 배낭에 붙이고 있었다. 국제경기가 아이들을 국제적인 감각의 코즈모폴리턴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애국애족 혈맹집단으로 만들어버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겠지 싶어 입맛이 좀 썼더랬다. 얼마 전엔 시청 앞을 지나가다 보니 시청이 온통 하얀색 천으로 덮여 있다. 처음에는 독일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완전히 감싸거나, 센트럴파크에 7천여개의 커튼을 매단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한국에 왔나 싶었다. 이명박의 키치적 센스도 이런 식이라면 나쁠 거 없지, 라고 생각했더니, 오 마이 갓. 태극기다.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시청을 태극기 3600장으로 덮은 거란다. 누구는 태극기를 보면 월드컵이 떠오른다지만, 나는 전두환의 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1시간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선생들이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었던 고사리손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태극기는 펄럭이고, 애들은 신났고, 누군가의 머리는 빤짝였지. 세상은 도돌이표 돌림노랜가 보다. 태극기는 펄럭이고, 애들은 신났고, 누군가의 머리는 또다시 빤짝거린다네. 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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