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가 반해버린 문장] 작은형의 입에서 새어나온 세 음절

등록 2005-07-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작은형의 입에서 새어나온 세 음절의 명사 하나. “어머니!”
<꿈꾸는 식물>(이외수 지음, 동문선 펴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품위 있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품위 있게 살려고 하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외수의 첫 장편은 거리의 앵무새마저 ‘총화유신’을 외치는 시대가 배경이다. 화자는 창녀촌을 운영하는 가족의 셋째아들이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유일하게 ‘해맑았던’ 둘째형은 미쳐서 집을 뛰쳐나간다. ‘동물성’만 득실대는 세계에서 식물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미치는 것뿐이다. 오랜 가출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형은 점점 더 미쳐버린다(혹은 식물의 세계에 은둔한다). 어느 날 집을 나선 작은형을 화자가 쫓아간다. 작은형은 그만의 의식 속에서 평화로운 혹성, 섹스만 아는 놈들의 혹성 등등을 떠돌아다니다가 시장의 문패 앞에 똥을 싸기도 한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가부좌를 튼 형의 입에서 나온 단어. “어머니!” 그는 어머니의 혹성에 온 것이다. 화자는 쓸쓸히 작은형에게서 등을 돌려 소도시의 창녀촌, 동물의 세계로 돌아간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