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놈만 밀자’는 가족 철학을 삶아낸 코믹극 <역전의 명수>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역전의 명수>는 말 그대로 역 앞에 사는 명수의 이야기다. 명수에게는 1분27초 늦게 태어나 ‘억울하게’ 동생이 된 현수가 있다. 이 영화의 설정은 <우리 형>의 반대 버전, 즉 <우리 동생>쯤이 된다. <역전의 명수>에서는 ‘우리 형’이 아니라 ‘우리 동생’이 집안의 꿈과 희망이다. 명수는 허구한 날 싸움질만 일삼다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잘리고 엄마가 하는 국밥집 배달이나 하는 신세지만, 현수는 서울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인재 중의 인재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의 새빨간 거짓이 이 영화에서는 <우리 형>보다 강도 높게 드러난다. <우리 형>에서는 고작 형의 도시락 반찬에 계란 하나 더 올려주고 브랜드 옷 한벌로 형제간 서열을 드러냈지만, 명수는 그야말로 현수의 ‘시다바리’다. 쌍둥이라는 점을 이용해 명수는 현수의 여자친구 정리부터 현수 대신 군대 가기, 심지어 현수 대신 ‘혼빙간’이라는 너저분한 죄목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대신 가기까지 한다.
<역전의 명수>는 쌍둥이지만 성격도 사회적 위치도 천양지차인 형제의 신세가 뒤바뀌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성매매 여성을 영화 속 멜로의 구성요소로 손쉽게 가져오는 아슬아슬함과 중반까지 대책 없이 날뛰는 에피소드, 안정된 연기력이 가릴 정도로 다듬어지지 못한 여성 캐릭터 등 거슬리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통렬한 구석이 있다. 일단 엄마를 보자. 폼나는 데는 현수를, 궂은 일에는 명수를 배치하는 데 이 엄마, 자신의 가족 운영 방식에 조금의 갈등도 없다. 물론 마음속에 명수에 대한 연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군대에 대신 가는데도, 감옥에 대신 가는데도 엄마의 ‘적극적인 권유’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 우리 가족 잘되기 위해서라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정준호가 1인2역으로 연기하는 현수 역시 명수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데 조금의 미안함이 없다. 어차피 ‘찌질하게’ 굴러가는 명수의 인생, 군대에 가서 밥값이라도 덜고, 그동안 자신은 고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년이라도 빨리 고시에 합격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잘난 인간 하나를 위해- 여기서 잘났다는 건 순전히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벌고 출세한다는 의미다- 못난 인간들이 희생하는 게 마땅하다는 논리는 사실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상식이다. 아들 대학 보내기 위해 딸내미는 초등학교 졸업신킨 뒤 버스 차장을 시키거나 공장에 보내는 것을 당연한 가족간의 도리로 여기면서 일사분란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될 놈 밀어주고 안 될 놈 깔아주기라는 철칙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역전의 명수>는 이처럼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하찮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해온 관습과 상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웃음을 자아낸다.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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