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컨텐츠 드라마를 둘러싼 각축전… 방송사 밥그릇 넘보는 독립제작사·연예기획사의 발빠른 행보
▣ 손원제 기자/ 한겨레신문 정치부 wonje@hani.co.kr
누가 한류의 고삐를 쥘 것인가?
한류의 거센 물결이 중국과 동남아를 돌아 마침내 일본 열도를 흠뻑 적시고 있다. 거대한 일본 문화시장이 한류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류의 덩치 또한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다. 초판 10만 세트가 모두 팔린 데 이어 12월10일 10만부 추가 발행이 발표된 ‘욘사마’ 배용준의 사진집 과 DVD의 세트당 가격은 1만4700엔(약 15만원)이다. 재판 세트까지 모두 팔리면 사진집 매출액만 300억원 수준이다. 한국 국내는 물론, 저작권 개념이 취약한 중국이나 시장 규모가 작은 동남아 등에선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다.
영화 훌쩍 넘은 2003년 드라마 수출액
드라마 수출 금액도 일본 시장이 확보되면서 엄청나게 치솟았다. 올해 최대 히트작 이 에 7억원에 팔리며 드라마 수출 최고가를 기록한 것도 잠시, 권상우와 김희선이 출연하는 는 드라마가 완성도 되기 전에 48억원에 일본 시장에 입도선매됐다. 드라마 방영권이 21억원, 오리지널사운드트랙 등 부대 저작권이 27억원에 이른다. 이전까지 대만 등에 수출됐던 드라마 가격이 편당 많아야 수천달러에 그쳤던 데 견주면, 일본 열도의 열풍이 불러온 시장 확대는 어지러울 정도다.
시장이 커지면서 누가 얼마만큼의 파이를 가져갈 것인지가 점점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류 컨텐츠를 만들고 파는 한국 문화산업의 시장 주체들 사이에서 이 문제는 갈수록 사활적인 관건이 되고 있다. 일본 시장의 편입과 그에 따른 전반적인 한류 컨텐츠의 시장가치 증대는 바야흐로 한류의 물결에 올라타는 자가 한국 문화산업의 지배자로 떠오를 수 있는 새로운 물적 조건을 창출하고 있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류의 크고 도도한 흐름 안에 존재하는 뜨거운 각축이야말로 앞으로 한류의 정체성을 빚어내고 미래를 만들어갈 핵심 요소이다.
각축은 크게 3자 사이의 합종연횡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SBS 등 드라마를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강력한 생산자이자 유통망을 장악한 거대 지상파 방송 3사가 그 하나요, 최근 드라마를 중심으로 컨텐츠의 핵심 생산자로 부상하고 있는 독립제작사가 그 둘이다. 끝으로 배용준과 이병헌, 최지우 같은 한류 스타들을 거느린 연예기획사, 또는 스타 자신이 삼각 구도의 한 축을 이룬다.
일단 한류 각축전의 삼각 구도가 이들로 짜이는 것은 현 단계 한류의 핵심 컨텐츠가 드라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드라마는 현재 다른 모든 문화상품들을 압도한 채 가장 강력한 한류 대표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영화조차 한류 바람에선 드라마의 위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등의 영화가 일본과 중화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서진 못했다. 최근 와 등이 300만달러라는 고액을 받고 일본에 팔린 것도 등 드라마로 창출된 한류 바람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으리라는 진단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 2003년 드라마 수출액은 4300만달러로, 같은 해 영화 총수출액 3098만달러를 훌쩍 앞질렀다. 올해 들어선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4~26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4회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2004)에는 일본 말고도 중국, 대만, 베트남, 미국, 영국 등 외국 방송 관계자 800여명이 몰려들어 1300만달러어치의 한국 영상물 구매 계약을 맺었다. 대부분이 드라마다. 견본시에 참여했던 청춘리 중국국제방송공사 국제판매국장은 “한국 드라마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드라마가 완성도 되기 전에 아시아 바이어들에게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판권, 제작사가 직접 챙겨
드라마 붐의 원인과 배경으론 여러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인류학계에선 일본과 중국·동남아 사이에서 근대화의 중간 단계를 겪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드라마에 반영돼 각각 다른 차원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풀이를 내놓기도 한다. 일본에선 일본 드라마가 놓치고 있는 가족과 순정을 재발견하는 복고 열기의 대상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선 휘황한 배경과 개방적인 연애담 등이 대리만족과 동일시의 대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방한했던 가와이 하야오 일본 문화청 장관도 “ 같은 한국 드라마들이 경제적 성장으로 잃어버린 감정의 흐름, 마음의 여유를 그린 것이 (일본에서의) 히트 배경”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 드라마의 내적 특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승수 전 문화방송 드라마 국장은 “비사실적이고 비자연스러운 문학성과 영상 음향,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은 멜로가 한국 드라마의 특성이자 강점”이라고 말했다. 를 연출한 윤석호 PD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순수, 사랑의 아름다움과 같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스스로의 작품 경향을 제시한 바 있다. 윤 PD는 “일본인 중에 누가 를 두고 일본 중년 여성에게 소녀를 다시 찾아줬다는 표현을 썼는데, 은유적이지만 포인트를 제대로 잡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한류 드라마의 성취는 주로 잘생긴 한류 스타들의 개인적 매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견해는 주로 연예기획사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베이징과 도쿄보다 서울 거리에서 잘생긴 사람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김경욱 SM엔터테인먼트 대표)거나 “일본에선 욘사마나 송승헌 등의 매력을 소비하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김광수 포이보스 대표)는 등 한류 스타의 외모 자본을 강조한다.
어느 쪽이 됐든 분명한 건 한국 드라마가 한류 바람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 때문에 드라마 제작과 관련한 3자 사이에 갈등과 협력의 삼각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삼각 구도의 주축은 거대 지상파 방송사다. 등 드라마의 해외 저작권은 대부분 방송사 소유다. 이 때문에 한류 바람을 타고 돈이 되는 드라마 수출의 열매는 아직까진 대부분 방송사 손안에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머지 2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런 일방적 지배 구도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독립제작사들은 방송사의 하청 구조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전전작·판매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립제작사 에이트픽스는 중국 현지에서 100% 사전 제작한 24부작 한-중 합작드라마 의 시사회를 지난달 24일 열었다. 방송사의 참여 없이 제작사가 직접 투자와 제작, 배급을 담당한다. 이미 중국 배급은 마쳤으며, 에이트픽스는 “방송사엔 국내 방영권만 판매해 제작비 일부를 회수하고, 나머지는 국외 판권과 부대 사업 수익 등을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류로 확대된 해외 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구상이다.
연예기획사의 발걸음은 더욱 활기차다. 이들은 스타를 앞세운 스타마케팅과 함께 드라마의 제작마저 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착착 실현하고 있다. 송승헌의 입대 연기 논란에 휩싸였던 가 대표적인 사례다. 는 송승헌과 권상우의 소속사인 GM기획이 제작사 포이보스를 직접 설립해 김종학프로덕션과 공동제작 형식으로 만드는 드라마다. 김광수 포이보스 대표는 “처음부터 송승헌과 권상우 등을 염두에 두고 미리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철저히 기획한 드라마”라며 “제작 완료 전에 일본과 중국 등에 수십억원에 판권을 선매하는 것도 스타를 중심으로 한 기획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이보스와 김종학프로덕션은 드라마의 모든 수입을 5 대 5로 나눈다. 고현정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이나 등도 싸이더스HQ 등 연예기획사가 제작을 주도하는 사례다.
기획사 ‘스타파워’로 만드는
물론 스타 중심의 드라마 제작은 이미 국내 드라마에선 일상적인 방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한류 시장 확대와 결합되면서 스타 파워가 드라마 캐스팅과 광고 출연에 국한되던 데서 벗어나 기획과 제작, 판매 등 전 영역의 지배권 차원으로 증폭된다는 차이점을 드러낸다. 이런 스타 파워의 확대 추구는 돌풍이 종국적으론 욘사마 열기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의 드라마적 매력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 바람은 지금 와선 욘사마 배용준 개인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팬덤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내 저작권을 대부분 <nhk>에 양도한 탓에 4천억원에 이르는 일본 내 관련 컨텐츠 시장의 과실은 대부분 일본 안에 남았다. 한국방송의 관련 수익은 수출대금 4억원을 비롯해 고작 7억원에 그친 상태다. 외주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쪽도 DVD 등 일본 내 일부 저작권 수입의 10% 미만만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배용준만은 드라마와 별도로 스타의 매력을 상품으로 연결해 독자적인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300억원대로 예상되는 사진집과 DVD 세트 매출을 빼고도, 그는 이미 7개(5개 회사)의 일본 광고에 출연하면서 수십억원을 챙겼다. 현재적인 또는 잠재적인 한류 스타들을 거느린 연예기획사로선 입 안 가득 군침이 돌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뵨사마’ 이병헌에 이어 장동건의 사진집 세트가 준비되고 있고, 최지우는 드라마가이드북 판매에 나섰다. 여기에 드라마 제작까지 성공할 경우, 연예기획사는 스타를 중심으로 한 ‘원소스 멀티유즈’의 수익 극대화 구조를 달성할 수 있으며, 바야흐로 한류 시장의 진정한 강자로 등장할 수 있다.
홍콩영화의 몰락을 기억하라
우려와 견제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방송 드라마제작팀 정성효 PD는 “스타 중심의 기획 드라마가 실패할 경우 한류 열기가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계했다. “스타를 앞세워 기존 한류 성공작과 비슷한 드라마를 기획할 경우 대중의 식상함을 부를 수 있다.” 윤석호 PD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이라며 “그걸 배용준 혼자 독점하는 표현에는 당연히 반감이 든다”고 밝혀, 스타 파워쪽으로 한류의 축이 기우는 데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물론 이는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반감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반론 또한 광범하게 존재한다. 문화 주체들 사이에 경쟁과 각축을 통해 한류가 한층 풍요로워짐은 물론, 경제적 이익 또한 극대화되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다 고만고만한 액션 기획물의 범람 끝에 몰락한 홍콩 영화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엔 통렬한 진정성이 담겨 있다. 중국 피닉스 위성TV의 안젤라 펑 이사는 국제방송영상견본시에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종학 PD도 최근 와의 인터뷰에서 “멜로 홍수 속에서 우리 드라마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며 “한국도 멜로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류라는 좋은 상황을 지속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스타마케팅과 컨텐츠 제작, 기획이 한류 컨텐츠의 다양성 확보와 시장 확대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삼각 주체의 너른 안목과 긴 호흡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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