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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 사대천왕이 온다!

등록 2004-12-24 00:00 수정 2020-05-03 04:23

겨울 극장가 정복에 나선 세계 애니메이션 4편… 입맛에 맞는 그림·캐릭터 따라 골라보세요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지난해까지 내리 3년 겨울 극장가의 제왕은 시리즈였다. 더 이상 돌아올 원정대도 왕도 없는 올겨울 극장가의 승리자는 애니메이션이 될 공산이 크다. 세계 애니메이션의 양대 강국인 미국과 일본, 그곳에서도 최고 제작사의 신작들이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12월15일 첫 테이프를 끊은 디즈니·픽사의 을 비롯해 으로 드디어 디즈니를 꺾은 드림웍스의 ,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등 ‘브랜드’만으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스튜디오들이 경합을 벌이며, 여기에 워너의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 가 가세한다.

인크레더블 | 무인도 정글, 장난 아닌 걸

한국보다 먼저 개봉한 해외 흥행기록만 봤을 때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이다. 11월 초 미국 개봉 때 디즈니·픽사의 전작이자 최고 흥행작인 의 개봉 수익을 제친 이 애니메이션은 현재 올해의 흥행순위 6위에 올라 있다. 다른 흥행작과 달리 여전히 개봉 중인 걸 감안하면 순위는 더 올라갈 수 있다. 주목할 건 흥행기록뿐이 아니다. 미국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애니메이션에서 강력한 라이벌 를 제쳤고, 미국영화협회가 뽑은 올해의 영화 10편에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으로 올랐다. 그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과연 은 입이 벌어지게끔 하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등 새 작품마다 기술적 경지를 새롭게 열어보인 픽사가 처음으로 사람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이다. 실제 사람처럼 움직임이 유연하면서도 실사영화보다 훨씬 극적인 생김새와 액션 반경을 가진 이들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왜 애니메이션인가를 마치 정답처럼 보여준다. 은퇴한 인크레더블이 악당의 유혹에 빠져 달려가는 무인도의 거대한 정글을 둘러싼 자연 풍광도 그 스케일과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정밀성에서 전작들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 해맑던 디즈니 픽사의 작품 목록에 처음으로 ‘중년의 위기’ 같은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소재가 들어갔다는 것도 흥미롭다. 여기에 영화 도입부에서 마치 할리우드 스타처럼 인터뷰를 하는 슈퍼 영웅들의 모습 중계는 ‘패러디’ 왕국 드림웍스를 바짝 따라갈 만큼 재치 있고 세련됐다.

그러나 은 새로운 ‘쿨’함을 담고 있는 반면, 캐릭터의 감성에서는 전작들의 입체성이나 섬세함을 가지고 있지 못한 평면적인 액션물이다. 특히 한번 영웅은 영원히 영웅이고,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영웅의 한방에 날아가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뉘앙스는 혈통주의나 계급주의, 나아가 미국의 세계경찰 주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여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노장 하야오의 꽃밭은 포근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12월23일 개봉)은 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디지털 기술의 최고 결과물인 반면, 은 아날로그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야오는 에서도 성이 움직이는 장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면을 순수한 수작업을 고집해 완성했다. 둘을 비교·대조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텔레비전에서 평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의 티끌 없이 정밀한 푸른 숲보다 분홍색 물감을 뿌려놓은 하야오 세계의 꽃밭에 몸을 던지고 싶은 욕구를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했지만 은 전작 에 비하면 영화의 스케일로나 미학적 야심에서나 소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본래 뒤 후진 양성에 주력하려던 하야오는 다이애나 윈 존스의 원작소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본래의 계획에 없었던 탓인지 야심보다는 노작가의 낭만성과 호기심이 더 눈에 띈다. 하야오는 여전히 아름다운 창공과 문명파괴의 위험을 보여주면서도 캐릭터에서는 변주를 시도한다. 마법에 걸린 소녀이기는 하지만 90살 할머니를 여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처음이다. 언제나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남자 주인공이 철딱서니없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도 처음이다. 정처 없는 노인이 돼 하울의 성에 들어가게 된 소피가 왕자병 환자에다 겁 많고 그 속에는 내밀한 아픔도 가진 마법사 하울을 노인의 따뜻하고 푸근한 심성으로 다독이며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로, 드러내는 ‘로맨스’ 역시 처음이다. 하야오는 언제나 역경 속에 놓인 소녀의 성장담을 그려왔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예 할머니로의 변신을 통해 나이 먹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성찰한다. 여기에는 언제나 소년의 감성으로 작업해왔지만 이제 노년이 된 자신의 삶에 대한 소회가 묻어 있을 것이다.

육중하지만 유머감각 넘치는 성의 움직임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유럽식 주택 풍경, 파스텔톤의 자연 배경과 핑크빛 무드까지 은 올겨울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포근한 느낌의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샤크 | 해저에 깔아놓은 재치와 수다

기술적으로는 반대지만 변신과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두 작품과 달리 드림웍스의 (1월7일 개봉)는 이미 확보된 전세계 고정팬들을 위한 보너스처럼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패러디와 ‘쿨’한 수다, 실사영화보다 더 호화로운 목소리 출연진 같은 전략에서 의 뒤를 그대로 잇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윌 스미스, 르네 젤위거, 안젤리나 졸리, 로버트 드 니로, 잭 블랙 등 마치 을 연상시킬 만큼 번쩍거리는 스타들의 목소리 연기가 눈에 띈다. 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목소리 연기자들을 캐릭터의 모델로 승격시킨다. 무슨 소리인가 하니 주인공 오스카의 날아갈 듯 가벼운 얼굴 표정은 윌 스미스를, 그 여자친구의 퉁퉁한 볼은 르네 젤위거를, 상어 마피아 리노 얼굴 옆의 점은 로버트 드 니로를 빼다박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는 실제 배우를 그래픽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패러디 역시 한술 더 뜬다.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는 심약한 아들 등 의 비토 콜레오네 가족을 연상시키는 리노의 주변 분위기도 웃기지만 압권은 상어가 직접 의 그 유명한 테마음악을 흥얼거리며 겁주는 장면이다. 여기에 비벌리힐스 로데오 거리를 옮겨놨던 의 겁나게 먼 왕국처럼 온갖 브랜드를 ‘해저’식으로 변용해 바닷속에 깔아놓은 재치도 무뎌지지 않았다. 다만, 에서 이미 한 이야기 다시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관객이라면 역시 세련된 말장난을 반복해 듣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 수도 있다. 고래 청소부인 별 볼일 없는 떠버리 물고기 오스카가 우연히 상어가 죽는 현장에 있으면서 순간 기지를 부려 상어 사냥꾼으로 영웅이 되며 리노와 한판을 벌인다는 이야기. 패러디의 수준이나 규모에서 어른 관객들을 잡아끌며 액션, 어드벤처, 뮤지컬 등 여러 장르를 두루두루 혼합해 완성한 ‘착한 편이 나쁜 편을 이긴다’는 착한 이야기 구조는 어린이 관객에게 호소한다.

폴라 익스프레스 | 북극행 열차는 성탄절을 싣고~

‘톰 행크스’라는 흥행 조커와 그의 십년지기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손잡은 (12월24일 개봉)는 흥행력에서 앞선 세 작품에 처지는 감은 있지만 크리스마스 특수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에 있다. 특히 신비하고 환상적인 크리스마스와 북극의 이미지는 아이들을 매료시킬 만한 강력한 무기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칼데콧상 수상작인 원작 동화를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던 아이가 북극행 열차를 타면서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다. 는 여느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업 과정을 통해 태어났다. 모션 캡처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내려받아 거기에 그래픽을 입혔다. 퍼포먼스 캡처는 동작뿐 아니라 얼굴의 미세한 표정까지 포착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톰 행크스는 여기서 무려 1인5역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직접 연기했다. 그러나 이 기법으로 만들어진 사실적인 표정들은 아직 어딘가 어색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얼굴 근육에 수백개의 센서를 달아도 눈동자의 움직임까지는 잡아내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북극으로 가는 여정과 기차 안, 북극 마을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색채감은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장점이다. 그 가치가 크리스마스를 믿는가 안 믿는가라는 단순하고 기독교적인 기준으로 재단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세상을 불신하던 아이가 세상과 맞닥뜨리며 스스로 무언가를 깨달아간다는 점에서 는 그럴듯한 성장담으로도 읽힐 수 있는, 아동용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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