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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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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뭘로 시끄러웠나영?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온·오프라인을 달군 2004 문화계 핫이슈…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싱하형의 ‘악플’은 덤이요~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올해 문화계는 ‘한류 열풍’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류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문화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이들이 대중문화를 지배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한국 영화는 1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박찬욱·김기덕 감독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MP3폰 출시를 계기로 인터넷 무료 음악 문제가 불거졌고,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온·오프라인 문화계 이슈 6개를 다시 살펴봤다. 각 이슈별 제목은 인터넷 유행 문체(근영체·태희체·수정체·나영체·삼체 등)로 달았고, 인터넷 스타 ‘싱하형’의 어투를 빌려 댓글을 달았다.

욘사마 효과
“나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근영”

얼마 전 국내 대학 이사장이 일본에서 택시를 탔다가 당혹스런 질문을 받았다. 택시기사는 승객이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욘사마를 아느냐”고 물었다. 배용준을 모를 리 없는 이사장이 “안다”고 대답하자 “그럼 욘사마 사인을 받아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본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욘사마 열풍’이 남의 일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 욘사마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준비된 부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욘사마 열풍은 방송과 영화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공간 PPL(Product Placement)’이다. 그동안 제품 위주로 이뤄지던 PPL의 개념을 공간으로 확장해 화면에 등장한 장소가 복합 관광 서비스 지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의 촬영지인 강원도 춘천과 남이섬, 용평리조트 등을 찾는 일본 관광객 등으로 인한 매출이 연간 160억원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매니지먼트사에는 생일 때 보내오는 팬레터 축하카드 말고도 평일에도 선물을 두고 가는 일본인 관광객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배용준의 ‘가족’들이다. 배용준은 인산인해를 이룬 팬들로 인해 호텔 출입이 봉쇄된 상황에서도 “가족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인사라도 해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열도의 연인’다운 모습이 방송 화면에 등장해 팬들은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형 왔다. 형은 거짓말 안 한다. 욘사마 잘나가는 거 안다. 잘나갈 때 많이 벌어둬야 하는 거다. 나도 잘나가는 거 알지? 근데 왜 나는 과수원이나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이냐. 욘사마, 형 과수원에서 드라마 한번 찍어라. 안 찍으면 존내 얻어터진다.”

1천만 관객 시대
“우리는 꿈을 보았을 태희야”

지난해 개봉한 영화 가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흥행이 이어지던 연말에 강우석 감독은 “이러다 1천만명을 넘는 것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파죽지세의 흥행 돌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지난 2월 는 관객 1천만명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관객 100만을 처음 깬 이래 10년 만에 10배의 흥행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한국 영화사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의 기록(1107만명)도 한달이 채 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강제규 감독의 가 1천만 관객의 바통을 이어받아 1172만명을 동원했다. 두 영화가 함께 상영된 지난 2월의 한국 영화 점유율은 80%를 웃돌았다. 애국심이나 민족애, 역사적 비극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관객의 발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대신 과거사가 얼마든지 시대의 담론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은 1천만 관객 시대를 연 와 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두 영화가 창출한 일자리 수만 해도 연인원 4668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는 EF쏘나타 2만2200대를 생산했을 때와 같은 고용효과다. 이런 한국 영화 돌풍은 문화관광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가이드라인’ 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형 왔다. 니들이 아는 이소룡은 너무 근엄해. 나를 닮아 존내 웃긴 넘이지. 나를 찾아다니면 ‘사부’를 묻는 처절한 장면에서도 ‘사과’를 찾는 웃기는 이소룡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나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면 2천만명 보장한다. 안 보는 넘은 내가 온몸을 피투성으로 만들어주지.”

중국 역사왜곡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 하정”

중국의 한국사 비틀기가 노골화됐다. 지난해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사 왜곡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국내의 반응은 ‘할 테면 하라지’ 식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지난 7월 고구려사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때를 같이해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를 삭제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이 국가 프로젝트로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과 발해까지 흡수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학계와 시민단체의 대응이 거세지면서 ‘조용한 외교론’을 내세우며 지켜보고만 있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정부는 북방사 지키기에 힘을 보태면서 고구려연구재단 등 ‘국사’의 대항마를 키우기에 이르렀다. 한편에서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이 “국사의 폭력에서 고구려를 구출하자”며 국경에 갇힌 국가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자는 주장을 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따라 국내 고구려 유적의 보존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단위 문화재로 관리하던 중원고구려비, 경기 지역의 고구려성 등에 대한 새로운 보존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한·중의 국경 이슈를 알리려는 다양한 우리 역사 바로알기도 시도된다. 내년 1월 초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기 위해 고구려의 역사 유물과 벽화 등을 담은 ‘고구려, 우리의 미래’라는 고구려 역사 우표첩을 발간한다.

“형 왔다. 아직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무사하더구먼. 나 그넘들 용서 못한다. 형이 홈페이지에 글을 하나 올리겠다. 거기에다 니들이 악플러 기질을 확실하게 발휘해 반말로 댓글을 다는 거다. 그래도 긴장하지 않으면 떼로 몰려가서 본때를 보여줘라.”

창작 뮤지컬 봇물
“뮤지컬 산업이 무르익고 있나영”

영화 산업의 뒤는 뮤지컬이 이어받을 것인가. 올해 초 100억원가량의 제작비를 투자해 막을 올린 뮤지컬 는 4개월 동안 114회의 공연에서 20여만명을 동원해 13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반기에는 가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하며 4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4억원의 수익을 남겼다. 이와 함께 등의 창작 뮤지컬도 관심을 끌었다.

이렇게 뮤지컬 공연이 끊이지 않으면서 “그래도 장사가 될 것은 뮤지컬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국내 뮤지컬계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는 가운데 외국처럼 쇼케이스를 통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도 도입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CJ엔터테인먼트와 LG아트센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창작뮤지컬 워크숍 쇼케이스’가 열리기도 했다. 뮤지컬 산업의 기본기를 다지려는 것이다.

뭔가 될 듯한 조짐은 뮤지컬 등의 오픈 런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숭아트센터와 극단 ‘오디 컴퍼니’가 함께 마련하는 ‘뮤지컬 열전’도 준비되고 있다. 뮤지컬 전용관 구실을 하는 공연장에서 같은 실험적 공연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올해 동숭아트센터는 지난 20여년 동안의 히트작 15작품을 엮은 ‘연극열전’으로 17만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형 왔다. 스타크래프트에 중독된 니들 명심해라. 지금이 새벽 3시가 되는데 아직도 오락하니? 대가리에 오락만 들어 있으면 미래가 없다. 10초 내로 얼른 자빠져 자라. 푹 자고 낼은 공연장에서 오락에 찌든 눈을 씻어내도록 해라. 형도 한번 가볼 테니 기다리거라.”

무용계 권력 교체(?)
“나 이제 짤렸삼, 어디로 갈삼”

문제의 발단은 지난 8월에 열린 ‘서울국제무용콩쿠르’였다. 지난해 전야 행사에 2억5천만원, 올해 본행사에 5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은 행사가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까웠던 것이다. 사상 최대의 국고 지원금을 받아 참가자 경비와 사례비 지급 등에 거액을 쓴 사실이 밝혀지면서 콩쿠르의 집행위원장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 허영일씨에게 눈길이 쏠렸다. 급기야 무용계에서 쉬쉬하던 허씨의 학력 허위기재 문제가 불거졌다.

애당초 허씨의 학력 문제는 지난 1997년에 처음으로 제기됐다. 당시 허씨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이력서에 명시한 하와이대 대학원 주디 반 자일 교수가 직접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는 무용계 내부의 ‘제 식구 감싸주기’로 인해 사건이 표면화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1월 일본 도쿄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박사과정 수료에 관한 내용까지 ‘허위’로 밝혀져 사건이 확대됐다.

허씨가 대표 연구자로 참여해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3년간 모두 27억여원을 지원받는 연구과제 ‘한국 근·현대사의 전통 무용의 굴절과 계승방향’에 대한 눈초리도 곱지 않다. 무용연구자들보다는 고문번역자 중심으로 과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용계 관련 행사와 연구 등이 허씨에게 집중된 탓에 내부 반목이 끊이지 않았다. 허씨는 학력 논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직을 내놓았다.

형 왔다. 존내 짜증난다.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그렇게 사람을 마구잡이로 갈구면 안 되는 거다. 국내 대학에서 석사까지 했으면 많이 배운 거 아니냐. 그것으로 무용계를 휘어잡은 비결을 연구하는 게 좋겠다. 아 글구 형은 배운 거 쪼매 모자라도 거짓말 안 한다.”



“형 왔다, 새퀴들 긴장해라”

인터넷 스타 싱하형


그는 초기에 ‘찌질이’(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를 빗댄 유행어) 신세를 면치 못해다. 전형적인 악플러(짜증나는 댓글을 다는 사람)로 디시인사이드의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 나타나 ‘싱하’라는 닉네임을 사용해 “형 왔다~”로 시작하는 댓글을 남겼다. 악플러이면서도 다른 악플러에게 ‘새퀴’ ‘존내’ 등의 변형 욕설을 퍼부어 네티즌들이 대리만족감을 느끼도록 했다. 한때 ‘싱하’라는 단어를 사이트 금지어로 정하고 IP가 차단되면서 더욱 인기를 모았다.
올해 최고의 인터넷 마스코트로 꼽히는 싱하형은 독특한 말투보다도 ‘짤방’(짤림방지)으로 올린 이소룡의 사진으로 확실히 떴다. 싱하형이 사용하는 이소룡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오버하거나 건방지고 모자란 듯한 모습이다. 그런 이소룡과 함께 등장하는 싱하형은 “찌질이 새퀴들 긴장해라” “한강 굴다리로 10초 안에 튀어와라” 등의 발언을 하면서 이전의 스타 ‘을용타’의 인기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현재 싱하형을 이용한 캐릭터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한쪽짜리 월간지 도 나왔다. 이소룡을 캐릭터로 삼은 T셔츠는 각종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영화 의 자막을 싱하형식으로 바꾼 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까지 싱하형의 정체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댓글을 통해 ‘과수원을 하는 30대 초·중반의 남성’일 것으로 짐작된다. 싱하형과 함께 이소룡이 지금 인터넷을 휘어잡고 있다.




이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

인터넷 권력 ‘디시인사이드’


인터넷사이트‘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는 네티즌들의 공동 놀이터다. 디지털 카메라 관련 정보를 교환하려고 지난 1999년 만든 사이트가 날마다 80여만명이 찾는 거대 사이트로 ‘성장’한 것이다. 덩치로만 따진다면 ‘싸이월드’의 위력에 한참 밀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는 1천만개 이상의 ‘미니홈피’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는 싸이월드와 달리 방문객의 힘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거대 갤러리’가 있다. 여기에 비회원제의 장점을 살려 인터넷 정치 문화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애당초 디시인사이드는 PC통신 마니아들의 집합소 구실을 했다. PC통신 논객들은 다양한 정치 사이트로 흩어졌는데 컴퓨터 전문가들은 갈 데가 없었다. 이들이 디지털 카메라 ‘얼리 어답터’ 구실을 하면서 디시인사이드에 모였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유식대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김유식 디지털 인사이드 대표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문화적 파급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해 ‘패러디’에 나서면서 네티즌들이 ‘정치도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디시인사이드의 문화적 파급력은 이미 ‘2002 월드컵’ 때 확인됐다. 당시 한 이용자가 사진의 댓글로 ‘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인터넷 공간이 ‘아’으로 물들었다. 아무런 뜻도 없이 선문답식으로 형용사와 감탄사, 의성어 등으로 마구 쓰인 것이다. 이어서 ‘폐인’과 ‘자’(득도하려고 수행하는 사람) 등이 사이버 문화를 주도했고, 엽기적 자세의 ‘딸녀’, 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 ‘개죽이’와 중국 선수의 뒤통수를 때리는 이을용을 담은 ‘을용타’ 등이 ‘싱하형’ 이전에 인터넷 마스코트 구실을 했다.
디시인사이드를 찾는 사람들은 ‘엽기’를 지나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어쩌면 정치 참여도 또 다른 재미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탄핵·총선 정국에서 패러디로 정치에 재미를 입혔다. 디시인사이드에선 장문의 글을 올린 뒤 ‘3줄요약’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리기 일쑤다. 그래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과 플래시 등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려 한다. 멀티미디어형 담론 생산 기지인 디시인사이드 밖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정치·사회 갤러리의 ‘디시폐인’들은 정치인을 초청해 토론을 하고 밀양사건 수사 항의 집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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