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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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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잘 키운 괴물 하나!

등록 2004-06-17 00:00 수정 2020-05-03 04:23

거침없는 할리우드 패러디와 못 말리는 동화 캐릭터들이 온다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3년 만에 돌아온 초록괴물 슈렉은 명실상부한 2004년 최고 스타다. 그가 출연(?)한 은 지난 5월19일 미국 개봉에서 역대 애니메이션의 흥행기록을 깼다. 또 전편에 이어 두 번째로 칸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말 그대로 잘 키운 괴물 하나가 열 왕자님 부럽지 않은 형국을 만들어낸 셈이다.

잘생긴 왕자님이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해낸다는 고전적 동화,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충실하게 따라간 공식을 깬 슈렉의 ‘이단아적 상상’은 2편에서 더 유쾌해지고 더 ‘어른스러워’졌다. 디즈니를 향하던 조롱의 타깃은 할리우드 전체로 외연히 확장됐고, 패러디의 수준도 가벼운 농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편은 시작부터 ‘멋진 왕자님’ 콤플렉스를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동화의 순서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성에 도착한 꽃미남 왕자님. 그러나 피오나 공주는 슈렉과 벌써 신혼여행을 떠난 참이다. 로맨스 영화의 상투적인 장면들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닭살스러운 밀월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겁나 먼’ 왕국의 왕과 왕비인 피오나 부모님의 초대장이 날아든다.

이들이 ‘겁나’ 오래 걸려 도착한 ‘겁나 먼’ 왕국 거리는 영락없는 미국의 할리우드다. 비벌리힐스의 로데오 거리를 베낀 ‘로미오’ 거리에는 버거킹 대신 버거프린스가 있고, 사람들은 ‘베르사체리’ 쇼핑백을 들고 다닌다. 신데렐라, 라푼젤 같은 동화 스타들이 이곳의 저택에 산다. 레드카펫을 밟고 동화계의 스타들이 속속 등장해 요란스럽게 자신을 과시하는 왕실 무도회와 열띤 중계는 아카데미 수상식을 떠올리게 한다.

사위(라기엔 너무 추한 괴물)가 꽃미남 왕자에게서 딸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왕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형 스타일의 요정과 짜고 슈렉을 위험에 빠뜨린다. 역시나 슈렉을 돕는 건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잘나가는, 그리고 디즈니가 좋아하는 미남미녀 캐릭터가 아니라 빨간 모자, 피노키오, 아기돼지 삼형제 등 동화치고는 우울하거나 비극적인 정조를 띤 ‘마이너리티’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는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하는 청부살인업자 ‘장화 신은 고양이’다. 반데라스가 직접 출연했던 ‘조로’를 패러디한 장화 신은 고양이는 내숭 100단의 못 말리는 왕자병 환자로, 1편에 이어 출연한 동키와 투닥거리며 슈렉의 편이 된다.

는 고전동화뿐 아니라 , 등 실사영화 그리고 성인용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까지 패러디하면서 1편보다 어른들의 볼거리를 더욱 늘렸다.

이처럼 의 거침없는 할리우드 풍자와 조롱은 실은 자기풍자에 가깝다. 시리즈 역시 전형적인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졌으며, 꽃미남·꽃미녀는 아니지만 슈렉과 피오나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대전제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악적이지 않으면서도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여유와 자신감은 를 여느 영화의 해피엔딩보다 즐겁게 쿨한 영화로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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