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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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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넌 걸렸다… 게임 끝!

등록 2004-04-16 00:00 수정 2020-05-03 04:23

사기 고수들의 심리 대결과 인생역전을 담은 미스터리물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각본·감독 최동훈, 4월16일 개봉)은 1999년 한국은행 구미지점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물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비와 예술가 사이를 곡예하는 춤바람 영화 이나 화투와 카드에 자진해서 인생을 담보잡히는 허영만 만화 와 장르가 다름에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선수’들끼리 수술(사기)하고 수술당하는 인생역전의 절묘한 순간을 이야기의 절정부에 배치해놓은 것이다. 에서 풍식(이성재)은 사교춤을 스포츠 댄스도 아닌 예술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예술을 욕정의 발산을 위한 미끼쯤으로 생각하는 카바레 인생들을 당연히 경멸한다. 풍식의 약점은 이런 ‘진정성’에 있었다. 자신을 춤의 진정한 매력에 매혹된 불세출의 예술가로 세뇌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파트너를 찾아 멋지게 춤을 췄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 상대방에게 춤의 진정한 기쁨을 안겨줬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냥 돈이 내 손에 쥐어져 있을 뿐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은 춤추고 가끔 자주고 주는 돈을 거부하지 않는 공인된 수순을 거쳤음에도 제비는 아니라는 것. 누가 뭐래도 풍식 자신만은 자신의 진정성을 믿는다. 먹이를 찾던 꽃뱀이 풍식의 이 점을 겨냥했다. 평상시에는 한없이 소극적이고 조신한 여인이 풍식의 “한곡 추실까요”라는 요청에 아주 부끄럽게 응한다. 스텝을 밟는 순간 그녀의 몸이 돌변한다. 수줍던 낯빛이 갑자기 환희로 바뀌면서 기막히게 뛰어난 율동과 리듬감을 뿜어낸다. 풍식은 감탄한다. ‘아~ 이 여자, 춤이 뭔지 아는구나.’ 그런데 춤이 끝나면 그녀는 다시 겁 많고 소심한 주부로 돌아간다. 풍식은 그런 그녀의 순수함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빠져든다. 그리고 깨끗이 당한다. 돈 털리고 얻어터지고. 그렇지만 풍식은 꽃뱀의 위장된 순수를 여전히 믿으려 들고 그녀를 찾아헤맨다. 드디어 간신히 만들어낸 재회의 순간, 그녀가 싸늘하게 내뱉는다. “야, 이 새끼야. 프로면 프로답게 굴어. 게임에 졌으면 승복할 줄도 알아야지!”

이 관객에게 이거 하나 꼭 명심하고 돌아가라고 당부하는 말이 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것이라도 탐욕을 부리는 순간 당신은 덫에 덜컥 걸려든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그런 경우의 가지 수를 여러 가지로 풀어 친절하게 보여준다. 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풍식은 탐욕을 부리다 당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방식은 실로 풍부하다. 의 하이라이트 역시 ‘선수들끼리의 전투’다. 프로 중의 프로 김 선생(백윤식)이 영리하고 말발은 좋으나 아직은 양아치 수준에 불과해 보였던 창혁(박신양)에게 깨끗이 당한다. 한국은행 금고의 돈을 빼돌리는 협동 작업이 성공한 뒤에 벌어지는 일이다. 김 선생은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서야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사기극은 이따금 인생의 이치를 되새김질시켜준다. 그 종합판이 궁금하다면 허영만의 를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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