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사형선고 대부분 끝까지 가… 결백 밝혀낼 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겐 끔찍한 상황

1심 사형, 2심 무죄, 대법원 원심 파기 환송, 환송심 2심 무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피고인 이도행(40)씨는 사건 발생 이후 7년 동안, 사형과 무죄라는 두 극단을 오가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한국판 ‘O. J. 심슨 사건’이라고 불리며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이 사건은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외과의사인 이씨는 지난 1995년 6월11일 오후 11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30분 사이에 치과의사인 처와 딸을 목졸라 살해한 뒤 사체를 욕조에 담그고 안방 장롱에 있는 옷에 불을 붙여 방화를 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으며, 환송 뒤 서울고등법원은 2001년 2월17일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재상고해 1년8개월째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형을 선고한 1심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른 뒤 알리바이를 만들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서서히 타들어가는 방법으로 지연 화재를 놓았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만약 천주교인권위원회 변호인단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변호인단은 사건 당일 발생한 화재가, 그가 출근한 이후 발생한 것임을 화재 재현을 통해 입증했고, 2심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무죄선고를 받아낸 것이다.
이날 피고인이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목격한 것은 오전 7시께. 화재로 인해 ‘바퀴벌레 잡는 연막탄 같은 하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처음 목격된 것은 오전 8시50분께였다. 이날 개업한 자신의 병원에 오전 8시5분께 첫 출근한 것으로 확인된 피고인이 방화를 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착화(불을 붙이는 행위) 뒤 1시간 반 이상 지나 방화가 되도록 하거나, 훈소(모기향이나 담배처럼 불꽃 없이 아주 서서히 타들어가는) 현상이 1시간 반 이상 계속되다가 불꽃이 일어났다고 보아야 하나 기록상 그런 특수장치가 있었던 흔적이 없다. 따라서 화재가 지연 인지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화재는 피고인이 출근한 이후 제3자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든,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든 모두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00% 완전한 증거란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불완전한 판결에 근거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 있도록 돼 있는 사형제도다. 특히 자신의 결백을 밝혀낼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안주리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이도행씨의 경우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한번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사회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대부분의 경우 1심에서 사형받을 경우 끝까지 가는 게 우리나라 상황인데, 이는 억울한 사람을 양산할 수 있는 끔찍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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