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국가 동원행사가 아닌 전 국민의 축제로… 붉은악마의 힘과 미래를 말한다

그라운드는 절반이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스탠드는 오로지 붉은색이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붉은색이 밀어붙이는가 싶다가 흰색에 밀리기도 했지만, 스탠드 위에서는 붉은색이 온전히 굽이칠 뿐이었다. 대구 월드컵경기장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온 나라 방방곡곡이 그대로 스탠드였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붉은색 물결이 일렁였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열린 6월10일, 이 땅은 그토록 붉었다. 엿새 전 한국과 폴란드의 첫 경기가 열릴 때 연출된 대장관은 이날 다시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95년 PC통신에 뿌려진 ‘작은 밀알’
그것은 붉은 축제였다. 운동장과 거리에서 폭발한 건 붉은색 환희였다. 온 국민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됐을 때나 아쉬운 무승무에 탄식하는 동안에도, 또 다른 승리감에 목이 메는 이들이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눈물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국가대표 서포터스 ‘붉은악마’ 감사위원장 김종호씨는 지난 6월4일 부산 아시아드 스타디움에서의 첫 감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듯했다. 붉은악마 회원이라면 누구나 같아 보였다. 아니, 같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기대는 했으나 예상하진 못했다”였다.
‘비더레즈’(BE THE REDS).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자던 그들의 ‘도원결의’는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창대한 결과의 첫출발은 작고 가난했다. 1995년 PC통신 축구동호회원들이 프로축구 단체관람을 시작하면서 싹튼 자발적인 응원문화는 1997년 6월 열린 코리아컵 대회에서 ‘그레이트 한국 대표팀 서포터스’라는 이름을 내건 첫 대표팀 응원으로 이어졌다. 그 뒤 모임의 공식 명칭은 수십명 수준에 불과하던 회원의 온라인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되었다. 멕시코 4강 신화의 상징, ‘붉은악마’.
1997년 8월10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부터 붉은 유니폼을 선보인 이들은 8월30일 한·중전에서 ‘붉은악마’라는 현수막을 비로소 내걸었다. 극적인 2 대 1 역전승으로 훗날 ‘도쿄대첩’이라고 이름붙여진 9월28일 도쿄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붉은악마는 과거 연예인이 이끌던 응원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응원을 펼쳐보이며 성가를 높였다. 당시 붉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에 나선 한국 응원단은 5천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붉은악마 회원은 64명뿐이었다.
11월1일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 2차전. ‘도쿄대첩’에 고무된 붉은악마는 이날 운동장을 찾는 일본인 1만명을 제외한 한국 관중 5만명 모두 붉은 유니폼을 입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내 전광판에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읍시다’라는 홍보영상을 계속 내보내고, PC통신에서도 활발히 홍보활동을 폈다. 한 백화점으로부터 붉은색 유니폼 2천장을 협찬받아 경기 당일 입장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 일본 응원단이 들어선 자리만 빼곤 스탠드가 온통 붉은색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2 대 0 패배. 그 뒤 운동장에서 붉은옷을 입는 사람은 붉은악마 회원들로 제한되었고, 스탠드가 다시 붉은색으로 채워지기까지는 4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붉은악마 2대 회장 김태호씨는 “당시 스탠드가 붉게 물든 건 한 월드컵 유관단체에서 관중들에게 옷 위에 덮을 수 있는 1회용 붉은 비닐을 나눠줬기 때문”이라며 “당시 관중들은 왜 같은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빨갱이’와 ‘신성모독’의 발견

그렇다면 한국팀 관중은 왜 붉은색 옷을 통일해서 입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누구보다 먼저 떠올린 게 한국의 특정 이념세력과 종교세력이라는 사실은 사뭇 시사적이다. 붉은 빛깔에서 ‘빨갱이’를 연상하고 악마라는 애칭에서 ‘신성모독’을 먼저 발견하는 현실은 우리의 가난한 축제문화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비더레즈’ 캠페인을 보면서 정작 심각하게 의문을 던져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복장을 통일해야만 축구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걸까. 오히려 관중문화의 개별성을 억압하고 획일성을 강제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그저 축구경기를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축구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경기 바깥에서 맴도는 피동적 타자가 아니라 경기를 이끌어가는 구성요소라는 얘기다.” 붉은악마 미디어팀장 신동민씨는 “복장 통일은 관중이 경기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매우 적절한 수단일 뿐 획일성을 갖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초기 붉은악마 회원들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겪은 ‘아픈’ 기억을 소중히 공유하고 있다. 그 대회는 붉은악마 회원들이 색깔의 가공할 위력을 제대로 실감한 기회이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우리는 거대한 오렌지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작은 섬이었다. 우리의 붉은 옷은 보이지도 않았다. 거리에서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수백명씩 오렌지색 옷을 입고 떼지어 몰려다녔다. 심지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은 모두 오렌지색 양복에 오렌지색 넥타이를 맸고, 할머니들은 모두 오렌지색 빵모자를 쓰고 지나갔다.” 김태호씨는 “우리가 겁에 질릴 정도였으니 경기를 하는 선수들인들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겠느냐”며 “우리 팀이 네덜란드에 0 대 5라는 처참한 점수차로 진 게 기량차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통일된 복장은 하나의 상징일 뿐, 정작 중요한 건 서포터스의 문화라고 붉은악마들은 입을 모은다. 서포터스의 응원방식은 일반 관중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우리에게 낯익은 축구관전 문화는 치어리더와 대형 확성기로 대표된다. 쩌렁쩌렁 울리는 확성기 음악에 맞춰 짧은 치마의 젊은 여성이 열심히 춤을 춘다. 관중들은 박수를 치지만, 치어리더가 쉬는 동안엔 응원도 함께 쉰다. 그 사이 아저씨들은 웃옷 단추를 풀고 소줏잔을 기울이며 골이 터지기를 기다린다. 어쩌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선수에게는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온다.
장삼이사를 모아놓고 진행하는 이런 응원 풍경에 견줘보면 붉은악마의 응원은 매우 조직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직적 응원이라면 동원된 관중만한 게 없다. 프로축구팀 모기업에서 단체로 동원한 넥타이부대의 응원은 가히 일사불란하다. 그러나 억지춘향이다. 억지춘향이 아니더라도 치어리더가 등장하는 보여주기 위한 응원방식은 경기와 따로 놀 수밖에 없다. 붉은악마 초창기 회원인 신동일씨는 연·고전의 화려한 응원이 한국 응원문화에 끼친 악영향을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게으르고 수동적인 응원문화를 넘어
“연·고전에서는 관중이 주체적으로 경기 상황에 몰입하는 방식보다는 응원 리더의 지휘를 매개로 응원을 위한 응원을 한다. 그 학교 학생들이라면 응원전이 또 하나의 대결종목이라고 믿을 만큼 강한 내적 결속력으로 뭉쳐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 문제는 공통된 이해관계가 없는 다양한 관중을 상대로 그런 응원을 고집할 때, 관중의 소외밖에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는 축구장에서 필수적인 선수와 관중의 호흡 일치는 고사하고 축구에 대한 관념 자체를 아주 왜곡해버리는 결과를 낳았고, 그렇지 않아도 게으른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응원 자세를 더욱 게으르게 만들었다.”(붉은악마 사이트에서)
그렇다면 붉은악마, 나아가 서포터스 응원의 특징은 무엇일까. 붉은악마의 응원은 보통 축구팬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조직적이지만, 동원된 관중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능동적이다. 붉은악마에도 ‘현장팀’이라고 불리는 응원단이 있지만 이들의 응원은 경기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간단한 구호와 박수, 응원가를 반복한다.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거리집회에서처럼 중간중간에 의사소통을 맡는 ‘리딩맨’들이 있어 전체적인 응원을 조율한다. 응원 열기가 달아오르면 어느 순간 리딩맨 없이도 자연스럽게 응원이 조화를 이루며 이어진다.
“서포터스의 응원은 경기의 흐름을 탄다. 우리 선수가 공을 가로채면 박자가 빨라지고 공을 빼앗기면 박자가 느려진다. 축구는 관중이 경기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종목이다. 빠른 응원은 우리 선수들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느린 응원은 상대 선수들의 흐름을 빼앗는다. 이런 방식으로 응원을 하다 보면 관중도 자연스럽게 경기의 흐름에 몰입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간다.” 붉은악마 신동민 팀장은 “본래 프로팀 서포터스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응원구호와 율동을 즐기지만 국가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악마는 쉬운 구호와 응원가로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붉은악마가 걸어온 길은 선수들에게만 전유되던 축구의 생명력을 관중들에게까지 확장하는 일이었으며, 치어리더에게 저당잡혔던 응원의 희열을 되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붉은악마들은 온 국민이 붉은악마가 되자고 소리쳐왔다. 프랑스월드컵이 끝난 뒤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던 붉은악마 되기 캠페인은 지난해 초 붉은악마 집행부가 몇몇 대기업들과 협찬 계약을 맺고 ‘비더레즈’로 구체화하면서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PC통신 축구동호회원 수십명으로 시작한 붉은악마는 지금 회원 수 15만명을 헤아리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고, 월드컵은 국가 동원행사가 아닌 온 국민의 축제가 되었다.
“입장권 할인혜택 포기하겠다”

그러나 붉은악마 집행부를 비롯한 초창기 회원들은 조직의 눈부신 성장에 감격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에 가위눌린다. “초기에는 ‘일당 얼마나 받느냐’, ‘어디 가면 아르바이트 신청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른 관중들이 우리더러 ‘경기 중에 일어서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욕하던 때를 생각하면 5년 만에 몰라보게 변했다.” 한 붉은악마 초창기 회원은 “붉은악마가 한국 축구의 희망처럼 떠받들어지는 지금의 현실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비더레즈’의 성공이 붉은악마의 노력 못지않게 대기업의 마케팅과 언론의 분위기 띄우기에 기댄 것이라는 안팎의 냉정한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배우 한석규가 출연한 광고 한편이 아무도 찾지 않는 운동장을 찾아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붉은악마들의 외침보다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감사위원장 김종호씨는 “이제 경기장 안이나 밖에서 회원과 비회원이 섞여 있어도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붉은악마는 대중화되었다”며 “붉은악마 조직의 성장은 더 이상 붉은악마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붉은악마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길을 걸어왔듯이, 붉은악마의 앞날 또한 쉽게 점쳐지지 않는다. 외국의 국가대표팀 서포터스는 계급적·지역적 유대감과 연대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붉은악마는 자발적이기는 하되 자연발생적이지는 않았다. 수평적 형태이기는 하나 전국적인 조직망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도 외국의 서포터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붉은악마 2대 회장 김태호씨는 “척박했던 한국 축구문화에서 붉은악마의 계몽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라면서도 “지금의 붉은악마는 어느새 덩치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붉은악마는 월드컵이 끝난 뒤 모습을 탈바꿈하기 위한 몇 가지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먼저 붉은악마 회원들이 받아온 입장권 할인 혜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려고 합니다. 붉은악마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축구 대중화에 더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 조직의 틀도 지금보다 훨씬 느슨한 형태로 바꿀 생각입니다. 회원 관리는 지역과 지부로 대부분 이관하고, 중앙은 인터넷으로 큰 가이드라인만 잡는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신동민 미디어팀장은 “무엇보다 미디어팀장이라는 자리가 먼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 목표는 ‘악마의 해체’
붉은악마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혔듯이, 붉은악마의 궁극적 목표는 “붉은악마 조직의 해체”다. 붉은악마 집행부는 오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축구팬들이 붉은악마의 깃발이 아닌 프로팀 서포터스, 심지어 동네 조기축구회 깃발을 들고 제가끔 독일 원정을 떠나는 행복한 장면을 꿈꾼다. 그때라야 축구는 하나의 스포츠를 넘어서 온 국민이 현실의 고통을 녹여버리고 공통의 사회인식을 합성해내는 거대한 용광로이자 축제마당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 열기는 식어버리고 붉은색 유니폼이 장롱 속으로 숨어든다면 붉은악마는 또다시 황량한 운동장 스탠드에 외롭게 설 것이다. 최근 일본 스포츠사회학회는 월드컵 개막식 이후 일주일간 한국의 월드컵 진행상황을 관찰해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로 “한국인들은 한국 대표팀 이외의 경기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이 다른 나라끼리의 경기뿐 아니라 국내 프로리그에도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온 국민이 축제의 환희에 빠진 지금이 오히려 “비더레즈”를 더욱 목놓아 외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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