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는 신경정신과적이면서 동시에 신체적인 질병이다. 이 말은 중의적이다. 우선 마음의 병이지만 신체증상(과호흡·질식감·빈맥 등)을 동반한다는 의미가 있다. 선후를 바꿔, 마음의 병이지만 몸이 아플 때 온다는 점에서도 공황장애는 마음만큼 몸 챙김이 중요한 질병이다. 이 인터뷰한 김현도(45·가명)씨와 로셀리나(38·필명)는 몸의 건강이 어떻게 공황장애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람 모두 기저에 ‘불안’이라는 심리적 원인이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지만, 발병 순간엔 ‘몸의 건강 이상’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신체적 원인’이 준 희망</font></font>“과로, 과음, 카페인 과다, 수면 부족, 식사량 부족 이 다섯 가지 때문에 신체 균형이 무너지면 공황장애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런 상황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공황장애가 온다.”
김현도씨는 주치의인 신영철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첫 진료 때 들려준 이 말을 ‘공황장애 치료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한 달 정도 다닌 이전 병원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김씨는 회사일에 대한 압박과 완벽주의적인 성격 등 심리적 원인으로 공황장애가 왔다고만 여겨 좌절이 더욱 컸다. 신체적 원인도 있음을 명확히 알게 되자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몸이 회복되면 공황장애도 나을 수 있겠구나!’ 김씨는 공황장애를 악화하는 생활리듬의 악순환을 깨기로 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석 달간 쉬었다. 휴직 기간에 몸의 컨디션(상태)을 관리하고 처방받은 약을 먹자 신기할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빨랐다. 7월 첫 공황을 경험했던 그는 10월 접어들어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신 교수가 언급한 ‘3과다 2부족’과 불안의 상관관계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일이 너무 많을 때, 수면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몸의 세포가 긴장돼 푹 잘 수도 없다. 잠을 못 자면 불안도가 높아진다. 정신없이 바쁘면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일이 많다. 탄수화물과 당이 떨어지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일은 많고 잠은 못 잤으니, 피곤하다고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다. 카페인 섭취가 많아지면 특별한 외부 자극이 없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한다. 술에 취했을 때 잠시 해방감을 느끼지만, 술기운이 떨어지면 불안은 더 증폭된다.
로셀리나 역시 ‘건강 이상’이 촉매였지만, 공황장애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건강염려’라는 한 단계를 더 거쳤다. 자신의 건강 문제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여기고, 극도로 불안해하며, 결과를 재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행동 양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놀이치료실의 그 아이처럼</font></font>그는 2018년 11월 한밤중 물을 마시고 침대로 돌아오다 낙상했다. 몸이 브이(V)자로 꺾이면서 꼬리뼈를 바닥에 찧었다. 허리가 아팠다. 정형외과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한 달 뒤, 그는 빙판길에서 넘어져 같은 부위를 2차로 다쳤다. 통증이 심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지만, 영상으로 식별되는 이상은 없었다.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주관적 통증’이 너무 강했다. 놀이치료사인 그는 일에도 차질을 빚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들한테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치료 중에 수시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지난해 2월 “살아야 하니까” 퇴사를 감행했다.
집에서 쉬면서 디스크 환우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자신과 비슷한 증상의 환자가 오랫동안 고생했다는 글이 눈을 사로잡았다. 디스크로 7개월 동안 몸져누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이 올라왔다. 온종일 ‘통증에 대한 불안’에 압도됐다. ‘이러다 못 일어나면 어쩌지?’ 그러다 2주간 극심한 우울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3월 말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버스 의자에 앉자 또 통증이 올라왔다. ‘한 달이나 잘 관리했는데도 아프네…’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하차 정류장을 놓쳤다. 버스에서 내려 한 정거장을 되돌아가고 있을 때 심장박동이 이상하리만치 빨라지는 걸 느꼈다. 머리가 멍해지고 공간감이 평소와 달랐다. 찬 우유를 한 잔 사 마시며 불안감을 달랜 뒤 병원 진료를 받았다. 참 이상한 하루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극한 불안감과 조우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느낄 법한 불안이었다. 등골이 서늘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을 덮는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불안인 줄 알았던 건 불안도 아니구나’ 싶었다. 동네 병원에선 “스트레스의 신체화”라며 신경안정제만 처방해줬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버티다 5월 중순 종합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았다.
로셀리나는 “평소 자주 넘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어깨를 다쳐 팔을 쓰기 불편할 때가 많았고, 발목을 다쳐 잘 걷지 못한 적도 많았다. 관절이 조금만 아파도 삶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잘 알았다. ‘허리까지 아프면 망한다’는 공포가 컸다. 지레 겁먹고 ‘허리는 완벽하게 고쳐내리라’ 마음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스로 설정한 ‘안전범위’를 벗어난 것 같았다.
로셀리나가 사는 동네는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신도시다.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해줄 ‘믿을 만한 의사’가 없다고 느꼈다. 진단과 치료의 불확실성이 그를 더 큰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허리 통증은 그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커졌다. 반대로 자아는 초라하게 작아졌다. 유치원생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위축됐다”고 했다. 놀이치료실에서 보던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꼬마’, 자신이 꼭 그런 아이 같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신감을 잃고 나를 못 믿을 때</font></font>요즘은 병원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집에서는 복식호흡법과 명상을 꾸준히 실천한다. 특히 놀이치료 때 아이들과 함께했던 미술치료는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떠오르는 대로 그린 그림 속에 “내 마음”이 있었다. 가족·친구를 동반하면 스스로 느끼는 안전범위 안에서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됐다. 백화점·서점 등 ‘아이들이 내 허리를 칠까’ 두려웠던 공간도 꽤 수월하게 다닌다.
로셀리나는 이제 “허리가 아파서 공황이 왔다기보다는, 허리 통증이 나의 ‘취약한 부분’(건강염려)을 건드리니 공황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데다, 열등감이 강해서 유능감을 너무 중시하고, 남의 시선 앞에 서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성격을 되돌아보고 어루만지는 연습도 하고 있다.
최주연 강남 연정신과 원장은 “공황장애는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거나 신체적 취약함이 커진 순간에 오는데, 결국은 자신감을 잃고 나를 못 믿을 때 온다”며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체력적으로 자신감이 있을 땐 공황장애가 잘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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