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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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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은폐’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고용노동부 인터뷰
등록 2020-02-02 14:59 수정 2020-05-02 19:29
 산재은폐 기획
①(통계)은폐된 289억3288만원 
②(사례)막히고 또 막히고…산재 노동자 20명 심층 인터뷰
③(대안)산재는 당연히 산재보험으로
④(인터뷰)국민건강보험공단·고용노동부 인터뷰
⑤(희망)산재보험, 594개 사업장에서 265만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업재해 은폐로 건강보험 재정이 축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산업재해 관련 정책을 짜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어떨까.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쪽 기관의 이야기를 나란히 들어봤다.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과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를 각각 전화통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

“산재 미보고 땐 건강보험 진료비 환수”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 인터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재은폐로 인한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공단은 산재 환자가 건강보험으로 부당하게 진료비를 청구한 사례를 적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체 전산프로그램을 이용해 매월 S·T 상병코드(손상) 중 부당 진료 가능성이 높은 8500건을 뽑아 조사한다. 하지만 환자의 거짓 진술과 사업주의 사고 사실 은폐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올해부터는 기존 프로그램에 사업장 정보(업종, 가입자 규모) 등을 추가해 산재은폐 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자체 조사만으로는 산재은폐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유관기관과 자료를 연계해 조사하고 있다. 소방청의 ‘119구급활동일지’를 활용해 환자의 직업과 사고 발생 장소·원인 등을 검토한 뒤 산재 가능성이 높은 건을 조사한다. 수협중앙회 어선원 재해건강보험 진료 자료도 연계해 조사한다. 그 결과 2019년에만 8647건, 10억2300만원을 환수했다. 또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산재 미보고 사업장에서도 건강보험 진료비를 환수하고 있다. 요양기관을 방문한 환자가 산재나 폭행 등으로 진료받을 경우 요양기관이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공단에 조회한 뒤 처리하게끔 하는 ‘건강보험 급여제한 여부 조회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산재은폐 적발을 위해 준비하는 제도 개선책이 있나.

고용노동부가 확보한 산재 조사표를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고용노동부에 산재 조사표가 보고됐지만 근로복지공단에는 산재요양 신청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7년에만 1만4916건가량 된다. 이 중 3분의 1이 건강보험을 이용했다고 추정하면 연간 5천 건(60억원)가량 된다. 산재 조사표를 공유하면 이 비용을 추가 환수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이른 시일 안에 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한다.

산재 신청 문턱을 낮추기 위해, 병원에서 의료진이 산재 환자의 진료비를 산재보험으로 청구하도록 하는 제도는 검토하고 있나.

해당 건은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서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산재은폐 방지를 위해 의료진이 산재 사고를 인지했을 때 그 사실을 건강보험공단에 통보하는 제도는 건강보험공단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올 상반기에 산재은폐 지표 개발”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은폐율이 최대 42.4%에 이른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산재은폐를 파악하고 있는지.
산재은폐는 사업주가 의도를 갖고 산재 조사표를 노동부에 제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산재를 모두 ‘은폐됐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듯한데 오해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상보험법에는 산재 근로자가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42.4%? 산재은폐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숨기려는 의도가 있어야 산재은폐라고 했는데 그 의도는 어떻게 파악하는가.

산재 근로자 등에게 물어서 파악하는데, 작정하고 숨기려고 하면 밝혀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 ‘산재은폐 의도가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 서너 가지 지표를 개발해 대체하려고 한다.

의도가 없는 경우는 왜 산재은폐가 아닌지.

산재를 은폐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도록 2017년 산업안전보건법이 바뀌었다. 그런데 영세사업장에서 법을 잘 몰라 산재 조사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까지 형사처벌하는 건 과하다는 반론이 나왔다. 이런 사례는 산재은폐가 아닌 ‘산재 미보고’로 보고 과태료 처분한다.

건강보험공단은 고용노동부가 산재 조사표를 공유해주길 원한다. 이 자료가 있으면 건강보험을 부당하게 이용한 산재 노동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산재 조사표 전체를 공유해 진료비를 모두 환수하기 시작하면 사업주들이 부담을 느껴 산재 조사표를 노동부에 제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기업들이 최대한 산재를 보고하도록 해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 한 예로 과거 (부상을 포함한) 재해율을 기준으로 기업에 불이익을 줄 땐 기업들이 산재 조사표를 제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기준을 사망률로 바꿨더니 은폐가 줄었다. 우리는 건강보험공단과 목표가 다르다.

산재 조사표는 공유하지 않을 건가.
지난해 말에 한참 논의했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 산재은폐로 의심되는 내역을 뽑아서 요청하면 우리가 산재 조사표와 대조해 통보해주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바꿀 예정인 것으로 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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