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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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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중시 실무형에게 국회는 안 맞았다”

가계부채 전문가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변신했던 제윤경
등록 2019-12-09 12:35 수정 2020-05-03 04:29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20대 국회가 문을 연 2016년 5월30일, 는 1면에 ‘132개의 초심’이라는 제목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선 의원 132명의 얼굴 사진과 각자의 각오를 담았다. 투표용지 한 장 무게는 1.8g, 국회의원 배지는 6g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계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초선 의원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방송 개혁에 앞장”(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자영업자·노동자가 존엄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박용진 민주당),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이행하겠다”(유민봉 자유한국당), “환경 당국의 위상을 바로잡겠다”(이상돈 바른미래당), “노사 2자 기구 위한 중앙노사관계법 신설”(이용득 더불어민주당), “노동 개악 막고 인간 존엄 보장되는 일터 만들기”(이정미 정의당), “금융소비자 권리 늘리고 금융회사 책임 높이기”(제윤경 더불어민주당) 등 ‘무거운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설득하고 싸우며 3년6개월을 보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하고, 촛불의 염원을 받아안았던 20대 국회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충돌’과 낮은 법안 처리율 등으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마지막 정기국회(12월10일)까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촉발된 여야 강대강 대치로 진통을 겪고 있다. ‘민생 법안’을 볼모로 삼고 정쟁만 한다는 비판에도 시달리고 있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초선 의원 중 일부는 국회를 떠날 준비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재선을 위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초선 의원 132명의 각오는 좌절된 것일까? 21대 국회 역시 ‘얼굴’만 바뀌고 같은 경험을 되풀이할까?
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릴 법한 초선 의원들의 눈으로 꽉 막힌 현재 국회 상황과 20대 국회 전반을 돌아봤다. 국회를 떠나며 몸도 마음도 비교적 가벼운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에게서 20대 국회에 대한 ‘쓴소리’도 들었다. 소수 정당 눈에 비친 거대 정당의 모습도 살펴봤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시작은 화려했다. 2016년 5월30일, 국회 첫날이었다. 123명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세비 이틀치 66만5천원씩을 모았다. 이렇게 만든 8179만5천원으로 부실채권(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대출) 123억원을 매입했고, 2525명을 구제했다. 가계부채 전문가 제윤경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쇼라는 비아냥에 “쇼는 더 많이 크게 계속돼야 한다”고 대차게 대꾸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이 첫 세비를 부실채권을 위해 쓰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의원들의 태도가 바뀌자, 추심을 실적으로 삼던 금융기관의 채무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33만 명이 악성 부채에서 해방

제 의원의 성과는 1년 뒤 더 도드라졌다. 민주당은 2017년 7월 부실채권 소각 보고대회를 열어 “금융감독원의 부실채권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통신 3사와 대부업체, 국내 은행 등 부실채권 12조원이 소각됐다”고 밝혔다. 이는 33만 명이 악성 부채에서 해방됐다는 뜻과 같았다. 11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제 의원의 목소리는 들떴다. “이런 방식으로 30조원 넘는 채권이 소각됐다.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으면 너무 오래 걸렸거나,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함께 되짚은 3년6개월, 시작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일까. 자신의 1호 법안인 ‘죽은채권부활금지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3년이 넘도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법안은 채권 소각 ‘쇼’가 있던 날 우상호 원내대표가 직접 언급한 민주당의 대표 민생 법안이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죽은 채권)의 추심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길을 열자는 취지를 담았다. 국회의원이 일하지 않는다(못한다)고 감히 누가 추심할까. 그는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었다. 제 의원은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부채감은 1호 법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발의한 법안이 90건이 넘어요. 결과적으로 전부를 입법으로 제도화하지는 못했으니 아쉬움이 남죠.”

제3자의 기술 탈취를 막고 이를 처벌하도록 한 하도급법 등은 대표적인 성과지만 상당수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제 의원은 “헌법기관 한 사람이 고심 끝에 발의한 법안이 2만1천여 건이다. 이 가운데 계류된 안건이 1만5천여 건”이라며 “국민의 여러 의사를 모아 담은 것인데 국회에서 심사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내년에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게 여섯 달 전이니 내려놓을 만도 한데, 아니었다. “남은 기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서는 조바심도 보였다.

국회의원은 더 일해야 한다

제 의원은 “의사일정 합의가 안 되면 아예 일을 못한다든가, 상임위 소위원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단 한 사람만 부정적인 의견을 내도 법안이 보류된다든가 하는, 일 못하게 하는 국회 관행이나 제도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성과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에 대한 반성을 제 의원은 법안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으로 개별화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바꾼 것이지, 그 대통령을 만든 정치집단(자유한국당 등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세력)은 그대로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을 거친 행정부 관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들다. 하지만 이것 모두 핑계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촛불개혁의 성과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협치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라고 물었다. “그게 성과를 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의사일정 합의를 거부하고 18번의 보이콧을 하는 상대와 뭘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제 의원은 거듭 일할 환경을 강조했다. “어느 당이냐 상관없이 의사일정 핑계 대지 말고 일할 수 있도록 국회를 만들면 된다. 그게 국회 상설화”라며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권위를 고려하면 일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민은 다 안다. 자율성이 보장돼온 국회가 얼마나 제 할 일을 내려놓고 있는지, 이제 강제하는 게 맞다, 일해야 한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말이지만 여당 초선 국회의원 개인의 ‘일하자’는 주장에 말이 아닌 실천으로 화답할 만한 국회의원을 선뜻 떠올리기 쉽지 않다.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버텨야 하는 국회가 견디기 어려웠을까. 스스로 “돌아보면 국회의원과는 잘 맞지 않는 인간형”이라고 했다.

“내년 총선 때문에 청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국회를 설명하면서 ‘국회는 입법, 예산 등 하나하나에 정당 간 합의를 이뤄내고 때로는 국민의 공감을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효율과는 거리가 멀고 때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아요. 그러면서 매번 느끼죠. 아, 정작 나는 잘 안 맞는구나. 나는 성과를 중시하는 실무형 인간이구나.”

일에서만이 아니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 중 하나로 “악수하는 일”을 꼽았다. “의원들과 자연스럽게 악수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거나 “국회의원 명찰을 달고 낯선 사람들 가운데 서야 하는 행사장이 고통스러웠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해 지역에서의 재선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털어놓은 속내는 지금껏 쌓아온 이력과 어긋난다.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의 대변인에 이어 우원식 원내대표 당시 원내대변인을 거쳤다. 최근 황인성 위원장(참여정부 당시 시민사회수석)에게 자리를 넘기기까지 남해·하동·사천 지역위원장에 임명돼 활동했다. 현재는 원내부대표다.

우리가 하려는 건 혁명이 아니라 개혁

원내지도부를 경험하면서도 청와대나 원내 입장과 일치된 행보만 걸은 것도 아니었다.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이끈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완화가 민주당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랬다가 정무위에서 쫓겨날 뻔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12월에 있었던 이른바 ‘연판장’ 사태에서는 박용진 의원 등과 함께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교체를 요구한 여당 의원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당시 김 부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부정을 비호하려 했다는 비판을 샀다.

내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치개혁도 힘겹게 이어가는 상황에서 경제개혁 부담까지 얹으면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을 이해하려 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혁명이 아니고 개혁이니까 더디고, 한번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에 안타까움도 있었다”고 했다.

임기가 끝난 국회의원 제윤경은 무엇이 돼 있을까. “일단 지금은 국회의원의 일을 하고요, 그때는 당연히 ‘구직자’겠죠.”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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