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구속시키는 데 분노하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 자격이 있냐. (중략) 우리 다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은 것 아니냐. 김 의원(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당신은 앞으로 천 년 이상 박근혜 저주를 받을 것이다.”(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탄핵 공방이 시작되면 통합이 아니라 또 다른 분열로 갈 것이다. 탄핵은 역사적 사실로 굳어져 있다. 당시 우리 당 의원 중에 탄핵 찬성은 62명, 반대 57명, 기권 9명이다. 탄핵해서 정권이 넘어가 문재인 대통령을 불러왔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지적이다.”(김무성 의원)
황교안 대표 “태극기 부대 표심도 잡겠다”이 ‘논쟁’은 언제 벌어졌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고 조기 대선을 치른 2017년 봄에 나온 발언일까? 아니다. 이 논쟁은 ‘대한민국 미래와 보수 통합’을 주제로 2019년 8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토론, 미래: 대안찾기’ 토론회에서 일어났다. 2016년 12월9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의 참여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유한국당은 ‘박근혜’라는 이름 앞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보수 통합’ ‘우파 통합’ 등의 구호가 나오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두고 대치하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사이의 꼬인 매듭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들의 갈등이 통합으로 갈지, 분열로 갈지를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현재는 황교안 당대표로 상징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하고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그는 2020년 4월 총선을 이끌 당대표로 지난 2월 선출됐다.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에도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한 자유한국당 당원들의 표심이 황 대표에게 쏠렸는데, 당내 주류인 친박계의 지원사격이 밑돌을 깔았다. 그는 전당대회 기간에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태극기 부대’의 표심까지 잡겠다며 “탄핵이 타당했던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하며 ‘탄핵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황 대표는 취임 뒤 “혁신의 깃발을 더욱 높이 올리고, 자유우파의 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당 안팎에선 ‘도로 친박당’이란 평가가 흘러나온다. 당의 주요 보직을 친박계 의원들이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공천과 조직 관리를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는 친박 한선교 의원이 지난 6월 사퇴한 뒤, 또다시 친박으로 분류되는 박맹우 의원에게 돌아갔다.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에 ‘신경 써줄 수 있는’ 자리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김재원 의원이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탄핵 때 탈당했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온 ‘복당파’ 황영철 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발해 친박-비박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황 의원은 현 나경원 원내대표 이전 김성태 원내대표 체제에서 예결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김재원 의원의 이의제기로 예결위원장 자리를 두고 경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몰리자 반발한 것이다.
‘504표 차’로 정의당에 진 보궐선거를 보라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을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도 친박인 유기준 의원이 7월23일 임명되면서 주요 당직 경쟁에서 비박계 의원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비박계 의원들 중심으로 당이 다시 “친박당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당직을 특정 계파가 독점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든 국회의원 후보 공천 방향을 암시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황 대표가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친박당’이라는 이름이 앞서는 순간 자유한국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반성이나 성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110석의 자유한국당은 친박으로 묶이는 의원과 비박(복당파+중립 성향) 의원이 거의 반으로 나뉘어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을 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했다. 황교안 대표 체제 이전 비박 성향인 홍준표 전 대표 체제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아래서 친박 의원들은 자신들에게 책임을 묻는 기류가 형성될 때마다 “탄핵에 앞장서고 당에 침을 뱉으며 저주하고 나간 사람들이 한마디 반성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고 김무성 의원 등 복당파를 공격하며 박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소환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티케이(TK·대구경북), 피케이(PK·부산경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박근혜’라는 이름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기에 조원진·홍문종 의원이 이끄는 우리공화당의 존재도 자유한국당을 ‘박근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4·3 경남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우리공화당(당시 대한애국당)은 ‘존재감’을 보였다. 정의당 여영국 당선인과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의 표차는 504표였는데, 우리공화당의 진순정 후보가 838표를 가져갔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는 극단적 성향의 우리공화당 핵심 지지층은 과거 자유한국당 열성 지지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자유우파 국민을 배신한 역적”비박의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8월27일 국회 토론회에서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나와 연루돼 구속된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다 풀어줘라’ ‘보수우파 정치세력은 분열해서 싸우지 말고 통합해 문재인 정권과 싸워서 나라를 구해달라’고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박 전 대통령 논란을 정리하자는 견해를 보였는데, 바로 우리공화당은 김 의원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법 거짓 탄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하고, 대한민국을 권력 찬탈 세력에 갖다 바치고, 자유우파 국민들을 배신한 역적”이라고 반발했다.
8월29일 대법원 선고 뒤 자유한국당은 “파기환송심에서는 정치적 고려, 정국 상황을 배제하고 오직 증거와 법률에 의한 엄밀한 심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들이 박근혜 논란을 되풀이하는 동안 자유한국당의 여론조사 지지도는 20% 초반(한국갤럽 기준)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당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여도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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