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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의 끊임없는 되돌이표

평창에서 판문점까지, 해원과 평화의 여정 다섯 장면
등록 2019-07-07 22:32 수정 2020-05-03 04:29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6월30일 북한과 미국 정상의 ‘판문점 회담’은 정전협정 66년 만에 이뤄진 세계사적 이벤트였던 탓에, 오히려 현재적이고도 실재적인 의미에 둔감해질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한반도 위기설’이 엄중한 현실이었던 점을 떠올린다면, 미국 대통령이 특별한 경호 조처 없이 북한 지도자의 안내로 북한 땅을 밟은 초유의 사건은 그 자체로 한반도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보하는 강력한 상징이었다.

잊고 싶은 기억을 환기해보자면, 북한과 미국은 2017년 내내 서로 “화염과 분노”(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괌 주변 포위사격 검토”(북 전략군 대변인 성명) 등 살벌한 전쟁 용어를 주고받았다. 말로만 위협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다. 북한은 2017년 11월29일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미국은 2017년 11월14일 상원 외교관계위원회가 41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권한을 묻는 청문회를 여는 등 전쟁으로 한 발짝 떼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불과 2년 전 아니 1년 반 전, 세계 유일 냉전의 섬 한반도는 ‘사소한 오판과 실수’로도 자칫 화염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의 세 지도자는 상상을 뛰어넘는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외교로 2017년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을 2019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7월3일 과 한 통화에서 이번 북-미 판문점 회동을 북한과 미국이 서로 원한을 푸는 “해원(解冤)의 과정”으로 표현하면서,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평창에서 판문점까지, 한반도 위기를 평화체제 구축으로 대반전시킨 가장 큰 동력은 세 최고지도자들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풍부한 상상력과 통 큰 결단”이라며 “긴 호흡으로 보면, 위기로 평가됐던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마저도 서로 ‘패’를 보이고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의 일부”였다고 짚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해원’ 여정 출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하반기부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시동을 걸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풀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017년 6월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축사를 시작으로, 7월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신베를린 선언)과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 12월 미국 방송 <nbc> 인터뷰 등을 통해 수차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
반년 가까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것 같았던 문 대통령의 호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 큰 화답을 이끌어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며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1월2일 남한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을 제의했고, 1월3일 남북 판문점 연락채널이 복원됐다. 한-미 정상은 1월4일 평창올림픽 기간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기로 전격 합의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2월9일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대표단으로 내려보냈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사절단을 올려보냈다. 김 위원장이 김여정 부부장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남쪽 특사단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전쟁에서 평화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판문점서 두 차례 손잡은 남북 정상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벌어질 대하 외교 드라마의 스펙터클한 예고편이었다.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온 김 위원장을 맞으며 부러워했다. 김 위원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림을 만들었다.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 두 정상이 즉흥적으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훌쩍 넘어섰다. 두 정상이 북쪽에서 대화를 나눈 10초는 한반도 평화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장면으로 포착됐다.
남북 정상은 이날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겨레와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판문점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두 정상은 특히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선언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핵 없는 한반도”라는 열쇳말은 북-미 정상회담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차 방북을 하고 북-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등 꽉 닫혀 있던 북-미 관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5월11일 한-미 연합군사훈련 맥스선더로 인해 북한이 분노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하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5월26일 판문점에서 예고 없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타임슬립을 하듯 맥스선더 훈련 이전으로 상황을 되돌려놨다.
이날 ‘원 포인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꿨다. 문 대통령이 2차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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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싱가포르서 ‘호혜’와 ‘신뢰’ 확인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선 비핵화 조처, 트럼프의 안전보장 호응’이 선순환하는 호혜와 신뢰의 방법론을 확인했다. 북-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공동 노력 △4·27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등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신뢰를 강조했지만, 7월부터 실무 이행 방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신뢰 부족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며 핵 신고와 검증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강도적인 요구”로 받아들였다. 8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북-미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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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 물꼬 튼 평양 남북 정상회담

북-미 협상의 물꼬를 다시 튼 건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9월18~20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평양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군사합의서)를 발표했다. 두 정상은 특히 군사합의서를 평양선언의 부속문서로 설정해, ‘전쟁 위험의 근원적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실천 의지를 천명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평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실천 방안을 명기했다.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를 확약했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를 밝히며 ‘영변 핵폐기’ 카드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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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2019년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세계는 8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어쩌면 ‘빅딜’ 적어도 ‘스몰딜’을 기대했다. 뜻밖에, 결과는 ‘노딜’이었다. 지난 70년간 이어온 전쟁과 정전의 불신이 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단계를 포함한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동시적·병행적” 접근법을 주장했다. 영변 플러스알파(영변 이외에 모든 핵 프로그램과 대량파괴무기 폐기)와 전면적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요구다. 반면 북한은 신뢰 구축 정도에 따른 ‘단계적 합의’를 원했다. 일단 영변 핵시설 폐기를 통해 핵심적인 유엔 대북제재 5가지를 풀어달라는 요구다. 비핵화 로드맵(이행안)에 대한 선명한 입장차를 드러낸 셈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은 다시 답보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 쪽에 끈질기게 북-미 판문점 회담을 설득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메시지로 ‘DMZ(비무장지대) 만남’을 즉흥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이를 수락하면서 극적인 추동력을 얻었다. 협상 프로세스가 재가동되자, 하노이 회담이 오히려 “북-미 지도자의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김용현 교수)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파격적으로 성사된 6월30일 북-미, 남·북·미 판문점 만남 이후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정신을 잇기 위한 건설적인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는 7월2일 미국 쪽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과 △핵동결 △비핵화 정의 △로드맵에 포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는 3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원칙에서는 하노이 때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인도적 지원, 인적 대화 확대,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 설치” 등 전향적으로 타협의 여지를 열어놨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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