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현물이냐 현금이냐 이전에 복지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팩트체크… 비판과 달리 현물 급여 많지 않아
등록 2019-04-09 10:55 수정 2020-05-03 04:29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운데)가 3월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운데)가 3월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지난 3월5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방자치단체가 지금 현금 살포로 사실상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방지하는 법안도 같이 민생 챙기기로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 며칠 전에는 지자체의 ‘현금 살포 경쟁’을 규제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일부 보수 진영과 보수언론은 지자체의 현금 복지제도 신설을 비판하면서, 지방정부는 현물 복지에 주력해야 하고 현금 복지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크게 두 축을 담고 있다. 한 축은 현금 급여 대 현물 급여라는 급여 형태이고, 다른 한 축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 분담이라는 복지 분권이다.

선택의 자유와 정책 효과성, 우선순위는 무엇

복지에서 급여 형태는 크게 현금 급여와 현물 급여로 나뉘는데, 이를 둘러싼 초기 논쟁은 1930년대에 스웨덴이 아동수당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그때 아동수당 도입을 주장했던 알바 뮈르달은 이를 현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에게 줘야 하는 아동수당을 현금으로 주었을 때, 부모가 그것을 자녀보다는 본인들의 필요에 따라 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나라들은 대개 현금으로 지급한다. 현물(예컨대 아동용 신발)이면 지나치게 획일적인 물품이 지급될 수 있고, 또 신발이 더 필요 없는데도 받아야 하는 등 선택의 자유를 제약해 오히려 ‘총효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금과 현물 급여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느냐는 ‘선택의 자유’와 ‘정책 효과성’ 중 무엇을 앞에 둘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이 두 기준만 현금과 현물 급여의 선택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데, 특히 현물 급여에서 그렇다. 현물 급여는 현금 급여보다 종류가 더 다양하다. 식료품이나 의류, 신발, 연료 같은 일상 재화도 있지만 서비스도 있다. 서비스는 직접적인 대인 관계를 매개로 한 돌봄 서비스도 있지만 교육이나 의료, 대인 관계가 개입되지 않는 주택 같은 분야도 있다.

이들 분야마다 급여 형태 선택의 효과는 다르다. 일상 재화 분야의 급여를 현물로 주면 수급자는 구청이나 주민센터에 가서 이것을 들고 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하지만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 이를 현금으로 주면 돌봄 서비스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현금을 받은 저소득층은 그 금액만큼 돌봄 서비스만 살 수 있지만 중산층 이상은 정부가 준 현금에 자기 소득을 더해 더 비싼 서비스를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이나 의료에서도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돌봄, 교육, 의료 분야에서는 현물 급여가 불평등을 줄이는 데 훨씬 더 효과가 크다.

이에 대해 저소득층은 돌봄과 교육·의료를 현물로 주고, 중산층 이상은 자기 소득으로 사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일상 재화 분야와 유사하게 저소득층에게 정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낙인감을 갖게 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돌봄과 교육, 의료를 받는 저소득층과 자기 소득으로 사는 중산층으로 사람들을 양극화하게 된다.

이처럼 현금과 현물이라는 급여 형태에 대해 딱 잘라 판단 내리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따라서 급여 형태를 가지고 ‘중앙-현금, 지방-현물’이라는 식으로 곧바로 연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현금 수당조차 지방에 부담시키는 중앙정부

일상 재화 영역에서 급여는 대개 현금으로 제공된다고 했고, 이는 보통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에서 재원은 국비만이 아니라 지방비도 동원된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재정을 분담하는 것인데 이는 외국에서도 비슷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기초연금과 아동수당과 같은 전형적인 현금 수당도 중앙과 지방정부가 재정을 분담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주장과 달리 중앙정부가 현금 급여를 모두 책임지지 않고 있다. 만일 ‘중앙-현금, 지방-현물’ 원칙을 주장하려면 지방정부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현금 수당조차 재정의 일부를 지방에 부담시키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 또 분권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지방정부의 사회복지 지출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방의 복지 지출 구조를 보면 지방자치가 무색하게도 자체 사업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고 이는 보수 정부 시기에 더 심했다. 복지 분야에서 지방정부의 자체 사업은 2008년 12.8%에서 2013년 8.8%까지 떨어져 사실상 지방자치니 복지 분권이니 하기가 몹시 민망한 수준까지 됐다.

그러다가 2017년에 다시 10.4%로 조금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나름의 복지사업을 확충하는 것에 현금이니 현물이니 비판하는 것은 지방정부 자체 사업 총량의 미미함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이다. 게다가 이 비판은 자칫 지방자치의 취지를 침해할 여지도 있다. 최근 지자체들이 신설한 수당이나 지원금 등은 해당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의회의 승인을 얻어 시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복지 급여의 신설마저 재량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가 지방자치를 왜 헌법에까지 규정해서 시행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언론의 비판은 급여 형태를 세분하지 않고 현금과 현물의 이분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언론이 현금 복지라 비판하는 급여 중 일부는 실제로는 지역화폐거나 바우처다. 바우처는 응당 현금이라 할 수 없지만 지역화폐도 무조건 현금이라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에서는 현금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가맹점을 제한하는 등 다소 정책적 제약이 부가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여 복지 혜택을 지역 상권과 연결해 복지 혜택의 효과를 다변화할 수도 있다.

정부 간 기능과 관련해 현물 급여에서 지방정부가 좀더 많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다. 예컨대 돌봄 서비스는 제공 과정에서 제공자와 수요자가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지역주민과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가 기획과 집행에 더 많이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도 비슷하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요 없지는 않다. 예컨대 교사나 의료인, 돌봄 인력 양성은 표준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고, 서비스의 전국적 표준을 만들거나 서비스의 질 평가는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 또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차별 문제 시정은 지역의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 있는 지방정부보다는 중앙정부가 더 효과적이다.

굳이 티부의 ‘발로 하는 투표’ 가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자체 간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고 창의적 정책 실험으로 중앙정부의 정책을 끌어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지자체 간 경쟁을 비판하는 것은 혹 다른 의도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2018년도 OECD의 평균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20.1%인데 우리나라는 11.1%에 불과했다. 또 2015년도 OECD의 현금 급여 지출은 GDP의 11%이지만 우리는 4.2%에 불과하고, 현물 급여는 OECD 7.4%, 우리나라 5.7%였다.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서

우리는 OECD 국가의 절반 돈으로 각종 복지 혜택을 운영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현금 복지니 현물 복지니 구분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굳이 구분해도 현물 급여는 OECD 평균의 77%, 현금 급여는 38% 수준이어서 일부 언론의 비판과 달리 현금 급여는 부족한 상황이다. 현금 급여의 증가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는 그만큼 현금 급여가 필요한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현실이 있다. 복지 재원 총량이 작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현금 급여가 위험하다는 비판만 하는 것은 복지 재원의 총량을 줄이려는 반복지적 주장이나 다름없으며,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 건전한 역할 분담 논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1천원이라도 좋습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후원계좌 하나은행 555-810000-12504 한겨레신문 *성함을 남겨주세요
후원방법 ① 일시후원: 일정 금액을 일회적으로 후원 ② 정기후원: 일정 금액을 매달 후원 *정기후원은 후원계좌로 후원자가 자동이체 신청
후원절차 ① 후원 계좌로 송금 ② 독자전용폰(010-7510-2154)으로 문자메시지 또는 유선전화(02-710-0543)로 후원 사실 알림. 꼭 연락주세요~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