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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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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의 위력, 안희정의 위력

모두 ‘직장 내 괴롭힘’
등록 2019-02-16 16:02 수정 2020-05-03 04:29
폭행과 강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연합뉴스

폭행과 강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연합뉴스

“닭을 쏠 수가 없어서 일부러 빗맞혔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함께한 워크숍 상황을 에 설명하면서 ㄱ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ㄱ씨는 “워크숍으로 출발하기 전 ‘닭 잡아서 먹죠’라고 하기에 백숙을 끓여 먹는다고만 생각했다. 워크숍 장소에 도착했는데 활을 주면서 닭을 향해 쏘라고 해 망설였다. ‘못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아서 시늉만 보이자는 심정으로 활을 당겼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닭을 맞히지 못하자 화가 난 양 회장이 일본도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했다. ㄱ씨는 비타민을 과다 복용하게 하는 등 양 회장의 갑질에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계속 그런 압박을 당하다보면 무기력해지고, 양 회장이 시키는 대로 비위를 맞춰주면 한동안은 편해진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매일 힘들지만 한번 참고 넘어가면 되니까.”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을 느끼고 성폭력을 당했던 것처럼, ㄱ씨가 직장에서 양 회장의 위력에 눌려 지시에 따랐던 것처럼, 우리는 직장·군대·가정 등 일상에서 지위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위력을 경험한다. 국내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조아무개(33)씨 역시 교수의 요구로 원치 않는 술자리에 나간 적이 있다. “다른 동기들도 그 술자리에 가고 싶지 않아 했지만 거부하면 성적을 잘 받지 못할까봐 억지로 참가했다.” 일상에서 ‘위력’을 경험하고도 어쩔 수 없이 응하거나 참는 일이 많지만 유독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2015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인분 교수’ 사건의 경우 피해 학생에게 ‘그럴 만했으니 교수가 그랬겠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김지은씨에겐 ‘불륜’ ‘서로 좋았던 것 아니냐’ 같은 2차 가해를 입힌다. 사실상 직장 내에서 겪는 위력은 같은데도 성폭력 피해를 당할 때는 업무상 지위 관계가 유지되지 않고 비업무적 관계로 전환되는 것처럼 취급한다. 게다가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성폭력 피해자에게만 묻는다.

ㄱ씨는 왜 그런 갑질을 당하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을까. “생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런 일까지 당하면서 왜 회사를 다니느냐고 하는데, 내가 참으면 나 혼자만 고생하고 고통받으면 되는데, 못 참고 그만두면 가족이 너무 힘들어진다”고 ㄱ씨는 말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도 “조아무개 평택대학교 명예총장에게 20여 년간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ㄴ씨가 성폭력을 당하는 고통보다 일자리, 가정 등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양진호 사건도, 안희정 사건도 넓게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다. 지위가 주는 굉장한 힘이 관계 위주의 한국 사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며 “특정 지위가 있는 사람이 위력을 행사할 여지가 너무 넓다. 폭행 등 사람의 인격을 침해하는 여러 행위가 동원된다. 양진호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참았던 것처럼,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서도 피해자가 참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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