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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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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 계속하면 쫓겨날 수 있다니…

11월 대회 앞둔 예멘 킥복싱 국가대표 출신 아흐마드…

인도적 체류 인정받았지만 프로 선수 활동 불투명
등록 2018-11-03 19:50 수정 2020-05-03 04:29
아흐마드 아스카르(28)가 10월30일 오후 일도무에타이킥복싱 도장에서 연습생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아흐마드 아스카르(28)가 10월30일 오후 일도무에타이킥복싱 도장에서 연습생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인도적 체류 지위로는 킥복싱 대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

예멘 킥복싱 국가대표 출신 아흐마드 아스카르(28)는 10월30일 오전, 아침 운동을 마친 뒤 제주 외국인·출입국청에서 걸려온 전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제1221호 ‘예멘 킥복서 발 묶인 코리안드림’ 참조).

출입국청 직원은 그가 킥복싱 대회에 참가하려면 운동선수 비자를 따로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흐마드는 앞으로 18일(11월17일) 정도 남은 ‘경호무술대협회 주최 전국무예대회’ 킥복싱 경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대회는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다. 지난주 출입국청에서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고, 대전 상대까지 정해진 뒤였다. 그는 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서울로 가 더 큰 무대에서 운동을 계속할 꿈을 꾸고 있었다. 이미 서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과도 연락을 해놨다. 미국인 킥복서 브레넌은 아흐마드가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서울에 오면 묵을 수 있는 곳과 운동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출입국청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을 느꼈다.

‘인도적 체류’로는 불가한 일들

“10년 넘게 운동선수 생활을 했고, 세계 각국에서 운동을 했지만 운동선수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격투기 비자는 어떻게 받는 거냐”고 아흐마드가 따져 물었지만 출입국청은 단호했다. 출입국청 직원이 “만약 운동선수 비자 없이 대회에 참가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지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흐마드는 눈물이 났다.

“후티 반군이 운동을 못하게 해 예멘을 떠났다.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국까지 와서 난민 신청을 하고 인도적 체류 지위까지 받았는데 또다시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속상했다. 그저 마음 놓고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싶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가.”

이날의 소란은 아흐마드가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 허창희 일도무에타이킥복싱 관장의 개입으로 오후 2시쯤 일단락됐다. 허 관장은 “아흐마드가 11월에 출전하는 대회는 프로 대회가 아니고, 생활체육대회라고 출입국청에 설명을 했더니 ‘참가해도 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프로 경기나 돈을 받는 시합은 하면 안 된다고 (출입국청 쪽에서) 신신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아흐마드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앞으로 프로 선수로서 계속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흐마드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전쟁이 진행 중인 예멘의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 지위를 인정받았다. 인도적 체류는 난민에 비해 제한 사항이 많다. 난민으로 인정되면 본국에서의 직업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지만 인도적 체류 지위는 그렇지 않다. 언론에서는 ‘단순노무직’에 한해서만 취업할 수 있다고 보도하지만 이 내용이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다. 다만 자격증을 요하는 전문직의 경우 법무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갖춰 심사를 받아야 한다. 법무부는 국내 내국인 고용시장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한다. 당국은 앞서 영어 교사를 하고 싶다는 인도적 체류자에게 불허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난민들의 법률 문제를 돕는 한 변호사는 에 “운동선수 체류비자가 따로 있어 취업직종 제한에 걸린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절차를 걸쳐 활동할 수 있을지는 법무부에 문의해야 한다”고 했다.

계속 운동을 하기 위해 법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 난민 불인정 판정에 불복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아흐마드는 이의제기를 생각하지만 한국에선 난민 심사 결과를 뒤집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예멘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던 아버지의 상태가 최근 악화됐다는 소식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심리적으로 크게 움츠러든 아흐마드는 “일단 11월17일 대회까지는 뛰고,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벌어서 아버지 병원비를 보내지 않으면 아버지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면 지인이 있는 인천 지역으로 가서 공장일을 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아흐마드가 계속 운동을 하길 바라는 허 관장은 11월 경기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대한킥복싱협회가 주최하는 경기는 아니지만 전국 각지의 킥복싱 관계자들이 와서 경기를 보기 때문이다. 허 관장은 “아흐마드가 이번 경기에서 좋은 실력을 보여주면 많은 관계자가 관심을 갖고,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영상도 제대로 찍어두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흐마드가 혹시 제주도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더라도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잘 살펴보겠다고 했다.

고마운 인연이 있어 다행이다

아흐마드는 허 관장에게 깊이 고마워했다. “허 관장이 친아버지처럼 친절하게 잘 해줬다. 숙소값도 대신 내주고, 체육관에서 계속 운동할 수 있게 허락했다.” 허 관장은 지난 7월2일 비가 오는 날, 수중에 돈이 떨어져 집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쫓겨난 아흐마드를 자신의 체육관으로 데려왔다.

아흐마드는 에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난민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들이 이미 기사를 읽고 면접에 들어왔다. 내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다.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고맙다.”

제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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