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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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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과학기술 유전자가위

유전자 연구의 지각변동 가져온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된 특허 분쟁 여전히 진행 중
등록 2018-09-11 13:14 수정 2020-05-03 04:29
<font color="#008ABD">은 최근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크리스퍼 특허 빼돌리기’ 의혹을 보도했다.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세계적으로 생명과학·의학 분야를 뜨겁게 달구는 기술로 그 잠재 가치가 최소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 결과와 박용진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서울대에 재직하던 2012~2013년 당시 동료들과 개발한 크리스퍼 원천기술과 관련해 서울대에 거짓으로 직무발명 신고를 하고 자신이 최대주주인 회사 툴젠으로 빼돌렸다. 또 다른 특허는 서울대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빼돌렸다. 국민 세금 수십억원이 투입돼 탄생한 기술의 성과를 일개 민간 기업이 온전히 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_편집자주</font>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개발한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위)와 브로드연구소의 장펑. 위키미디어/MIT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개발한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위)와 브로드연구소의 장펑. 위키미디어/MIT

1987년 일본 오사카대 연구팀은 대장균의 유전체를 분석하다가 독특한 유전자(DNA) 서열을 발견했다. 반복서열 사이에 비반복서열이 끼어 있는 이 구조는 1995년 이후 스페인 알리칸테대 연구팀에 의해서 다른 세균과 원시세균에도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서열을 후에 ‘크리스퍼’라 이르게 된다. 크리스퍼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CRISPR)라는 긴 구절을 이루는 단어의 앞머리를 따서 만든 약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유전자를 자르는 또 다른 유전자 </font></font>

이 서열의 생물학적 의미는 잘 밝혀지지 않다가 2005년이 되어서야 크리스퍼 속에 든 비반복서열이 플라스미드(박테리아 세포에서 홀로 증식할 수 있는 염색체 외의 DNA)나 파지(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하는 DNA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덴마크의 한 유산균 회사의 연구자들은 크리스퍼 배열이 실제로 파지 저항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박테리아 균주가 파지에 감염되면 그 파지의 DNA 조각을 잘라내어 면역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경찰관이 전과자의 지문을 등록해두었다가 이후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대조해 범인을 잡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그런 면역력을 갖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201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당시 스웨덴 우메오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는 크리스퍼 서열에서 복제된 RNA가 침입한 파지 DNA의 짝이 맞는 부위를 GPS처럼 찾아내고 데려간 단백질(Cas9)로 그 DNA를 잘라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DNA의 표적을 인식하는 부분과 DNA를 자르는 부분으로 구성된 효소를 ‘유전자가위’라고 하는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는 DNA의 표적을 인식하는 부분이 크리스퍼 서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는 RNA가 꼭 크리스퍼 서열에서 유래할 필요는 없으며 자르고 싶은 DNA와 짝이 맞도록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잘린 DNA 토막의 길이로 측정해보니 각각 다른 DNA 부위를 겨냥하도록 만들어진 RNA를 갖는 유전자가위는 이중가닥의 고리형 DNA 분자를 원하는 부위에서 잘라냈다. 원래는 크리스퍼의 작용 양식을 밝히려는 단순한 목적에서 연구를 시작했으나, 이 참신한 발견으로 이제 믿을 수 있고 빠르며 저렴한 DNA 절단 유전자가위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유전자가위로 절단된 부위는, 세포가 절단된 부위의 DNA 토막을 조금 탈락시키거나 새로운 DNA 토막을 추가해 절단된 곳을 화학적으로 봉합하는 기본 경로를 통해 수리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발견 또는 발명된 지 이제 6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기술은 막강한 위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사(DNA 유전정보가 전령 RNA에 옮겨지는 과정)의 조절이나 생체 내 염색체 이미징 등 기초 생물학 연구에 다양하게 쓰이는 것은 물론 돌연변이 유전자 교정을 통한 체세포 유전자 치료, 자녀의 유전병을 막기 위한 배아와 배우자 세포 돌연변이 유전자 교정, 외래 유전자를 도입하지 않는 식물 유전체 변형, 해충이나 침입종의 멸종과 멸종 동물의 복원 등에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는 2012년 5월25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관련해 영향력 있는 특허를 당연히 가장 먼저 출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우드나, 김진수, 장펑</font></font>

그다음으로 한국 툴젠의 김진수 연구팀은 2012년 10월23일 특허를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의 장펑(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생명공학자) 연구팀은 이보다 약 50일 정도 늦은 2012년 12월12일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신속 심사 경로를 밟은 브로드연구소가 2014년 4월 첫 번째 특허를 먼저 등록했고 UC버클리 분교의 특허 등록은 좌절됐다. 2015년 4월13일 UC버클리 분교는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자신들의 특허 출원에 저촉된다고 주장하는 ‘저촉심사서’를 제출했다. 저촉심사에서 UC버클리 분교의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도구를 발명한 것은 자신들이며, 브로드연구소의 연구팀은 자신들의 연구에 뒤늦게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2월15일, 미국특허청은 원래의 특허를 확인하는 심판을 내렸다. 엄밀히 말해 브로드연구소 특허는 UC버클리 분교의 논문과 특허에 포함되는 하위 범주의 기술이지만, 원래 원핵세포(체세포분열하는 핵이나 염색체가 없는 세포)에서 쓰던 것을 진핵세포(한 개 이상의 염색체를 가지고 유사 분열하는 세포)에서도 쓸 수 있도록 그 하위 범주를 한정해 개선한 것이기 때문에 특허성을 갖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2017년 4월 UC버클리 분교는 미국특허청의 결정에 불복하고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함으로써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UC버클리 분교는 2017년 3월과 6월에 각각 유럽과 중국에서 사람의 질병 치료를 포함한 광범위한 특허를 부여받아 더욱 혼전 양상을 보인다. 미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특허권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려면 향후 수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UC버클리 분교는 전체 세포, 브로드연구소는 진핵세포에서 작용하는 것을 특허 출원의 범위로 하는데, 툴젠은 진핵세포의 핵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가 핵심기술이다. 현재까지는 브로드연구소의 기술은 UC버클리 분교의 기술에서 일부를 한정하며 발전해 진보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는 데 반해, 툴젠의 기술은 UC버클리 분교의 기술 범위에 포함돼 진보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font></font>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한 특허권 경쟁의 결과는 관련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라이선스 계약 여부와 범위에 따라 연구 지형도에 대격변을 초래할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권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가려지더라도, 승자가 누구에게 어떤 가격으로 라이선스를 배포할지는 불분명하다. 게다가 관련 과학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선취 특허권의 범위에 포함될지도 불분명하다.

전방욱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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