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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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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찾아 삼만리

리프트 무서워 집 근처 역 못 가는 전동휠체어 이용자 진은선씨

“승강기 따라 지하철 동선 바뀌어”
등록 2018-08-30 09:16 수정 2020-05-03 04:29
진은선씨가 ‘신길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 사과’와 ‘모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요구하며 8월21일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진은선씨가 ‘신길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 사과’와 ‘모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요구하며 8월21일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그의 집은 서울 송파구 마천역 근처다. 마천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래서 그는 한 정거장 떨어진 거여역까지 20분쯤 이동해서 지하철을 탄다. 장애여성 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의 진은선(25·사진) 활동가의 이야기다.

선천성 하반신 장애가 있는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집 근처 마천역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엘리베이터 대신 설치된 지하철 리프트가 무섭고 불편해서다. 지하철 리프트는 대학에 들어간 19살에 처음 타봤다.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 휠체어보다 고작 한두 뼘 넓은 발판에 휠체어를 딱 맞춰야 했다. 리프트가 덜컹거릴 때마다 무서웠다. 대중교통이 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집 안에 가두는구나.’

장애인 이동권 심각성 깨닫게 해준 리프트

그가 8살 때였던 2001년, 휠체어로 리프트를 타려던 장애인이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처음 일어났다. 16년이 지난 2017년에도 똑같은 사고가 났다. 그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장애인 이동권도 함께 성장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하철 리프트는 진씨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 중요한 사례였다. 성인으로 독립해 활동 반경이 넓어지던 시기, 그는 세상의 벽과 마주했다. 진씨에게 장애인으로서, 20대 여성으로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대중교통은 언제 처음 이용했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집과 학교만 오갔다. 전동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대학에 가던 19살 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사회활동 하는 지금은 서울시 전역으로 다닌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저상버스는 타기가 힘들었다. 정류장에서 기다려도 버스가 내 앞에 바로 서는 게 아니다. 사람이 많으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잦다. 장애인 콜택시는 그 수가 적어 1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예사다. 심할 때는 4~5시간 기다리기도 한다. 주로 이용하는 게 지하철이다. 지하철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어떤 점이 위험한지.

리프트 발판이 휠체어보다 20~30㎝ 살짝 더 넓을 뿐이다. 긴장하고 정말 정확하게 딱 맞춰서 타야 한다. 내려가는 동안 기계가 흔들린다. 장비가 낡았고 점검이 제대로 됐는지 몰라 아주 불안하다. 공익요원이 동행하지만, 그분이 바로 옆에 있지 않고 계단 아래 먼저 내려가 있거나 뒤에서 따라올 때도 있다. 무서워서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해결 방법 있지만 의지가 없는 정부웬만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은 피해서 다니겠다.

그래서 지하철 동선이 바뀐다. 환승역에 엘리베이터 대신 리프트가 설치돼 있으면, 그 역을 피해 돌아간다. 늘 동선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무척 피곤한 일이다.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데 한 달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리프트를 타게 된다. 그럴 때는 미리 역에 전화해 리프트가 점검됐는지 확인한다. 고장 난 때가 많은데 현장에서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더 들여야 한다는 게 평등하지 않은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이런 불편을 겪을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

처음에는 당황하고 충격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평범한 일상인데 나한테는 제한이 많다는 점에 화가 난다. 그러다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좀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당황하고, 화가 나고, 체념하는 일이 반복된다. 나중엔 웃기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첫 리프트 사망 사고가 나고 1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고가 일어난다. 바뀌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이 계속 죽고,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됐는데도 정부가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해결 방법이 분명히 있지만 의지가 없다고 본다. 2015년 서울시는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 하지만 지금까지도 예산과 지하철 구조를 핑계 대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좀더 연세가 있는 분들과 대화할 때 ‘이동권’ 감수성에 차이가 있는지.

그렇지는 않다. 선배들이 정말 많이 싸운 덕에 이만큼 나아졌다. 저상버스, 장애인 콜택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이 바닥인 사회에서 계속 싸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누린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고,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선배 세대에게 정말 감사한다. 더 힘을 모아서 앞으로 같이 싸우는 게 중요하다.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걸 물려주고 싶은가.

예전에는 휠체어를 타고 식당에 들어가면 ‘당신 들어오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건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인권 감수성이 커진 덕이다. 다음 세대는 아예 그런 말을 할 필요조차 없으면 좋겠다.

장애여성 폄하하는 남성들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떤 불편이 있나.

나이 많은 남성들은 지하철에서 젊은 장애여성에게 쉽게 말을 건다. 불쌍하다고 혀를 차거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예쁜데 몸이 그래서 어째?”라면서. 이런 남성들은 장애여성의 지위를 자신보다 훨씬 낮게 생각한다. 힘이 없을 것 같고, 자기가 이야기하면 친절하게 답해야 할 것 같은 거다. 그들은 반말은 기본이고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어디 살아? 보호자는 어디 있어?” 다른 장애여성들도 가장 많이 말하는 부분이다. 장애남성과는 다른 지점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대처하나.

대처할 방법이 없다.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동권이 전반적인 사회적 평등의 문제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이 말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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