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옛 참모들이 도열해 이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사진공동취재단
“지금 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도 이어지는 일정 동안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남은 수사와 재판 일정에 참여하도록 하겠다.”
무거운 입이 열렸다. ‘MB의 집사’라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던 3월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하고 “사건의 전모가” 알려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이 이 자리에서 범죄 혐의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한 만큼 그가 밝혀지기를 바란 ‘진실’과 ‘사건의 전모’는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임이 분명하다.
김백준, 삼성 소송비 대납 입 열어김 전 비서관과 이 전 대통령의 인연은 40년이 넘는다. 그는 1977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국제종합금융에서 일하며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학교도 같다. 김 전 비서관은 1959년, 이 전 대통령은 1961년 고려대학교 상대에 입학했다. 그의 입은 무겁기로 유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대선을 돕고, 청와대에서 일하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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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비서관의 이름이 이 전 대통령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이 전 대통령이 다시 재계로 눈을 돌린 시점이다. ‘차익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김경준씨와 함께 금융업 진출을 준비하던 이 전 대통령은 ‘이뱅크증권중개’를 설립했다. 김 전 비서관은 이 회사의 부회장으로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이 문외한이던 금융업에 진출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오랫동안 금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김 전 비서관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이뱅크증권중개와 투자 관계로 엮여 있던 ‘BBK투자자문’이 공금 유용 등 각종 문제에 휘말리면서 좌초됐다. 사업은 무산됐지만 사람은 남았다. 그 뒤로도 계속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남아 재정 등을 관리하며 ‘영원한 집사’로 불렸다. 그런 그가 무거운 입을 뗀 순간, 이 전 대통령의 각종 범죄 사실이 흘러나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가장 큰 한 방은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보면, 삼성은 2007년 대선 당시 압도적 지지율을 얻은 이 전 대통령의 지원을 결심하고 미국에서 다스 관련 소송을 맡은 ‘에이킨검프’의 김석한 변호사와 접촉했다. 김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과 접촉하는 창구가 바로 김 전 비서관이었다. 삼성이 변호사비 대납 형식으로 이 전 대통령을 지원한 돈은 64억여원이었다. 검찰은 이 돈을 뇌물이라 봤다. 김 변호사는 미국에 거주 중이기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고, 이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했다.
이 내밀한 거래가 밝혀진 것은 김 전 비서관의 진술 덕이 컸다. 김 전 비서관은 이 전 대통령의 다른 뇌물 혐의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많은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을 보면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의 4억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2억원,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의 공천헌금 4억원,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의 5억원, 손병문 에이비시(ABC)상사 회장의 2억원,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의 3억원 등 각종 뇌물 성격의 돈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데 김 전 비서관이 관여한 것으로 나온다.
김희중, ‘원세훈 10만달러’ 진술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역시 김 전 비서관과 더불어 이 전 대통령의 비리를 증언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97년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구속영장을 보면 지금껏 알려진 것과 달리 김 전 실장이 직접 진술한 대목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가 구속영장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한 차례다. 원세훈 전 원장이 2011년 9~10월께 이 전 대통령의 국외 순방 비용 명목으로 10만달러를 전달한 부분이다. 다만 검찰 수사가 아직 남아 있는 만큼 김 전 실장의 진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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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측근 외에 ‘키맨’은 더 있다. 그중 가장 핵심 인물을 꼽자면 단연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이다. 는 김 전 사장 등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며 그의 지시로 조성된 비자금이 350억원이라는 내용을 담은 자수서를 1월3일 검찰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내부자의 이같은 결정적 진술이 있었기에 검찰은 자신감을 가지고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과 달리 끝까지 이 전 대통령 곁에 남은 이들도 있다. 1월17일 오후 5시30분, 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겨냥한 수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동관·김두우·최금락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장다사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상협 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등이 함께했다. 맹형규 전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이 3월14일 검찰에 출석할 당시 수행을 했다. 정동기 전 수석은 이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으려 했지만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유권해석이 나와 사건을 수임하지 못했다. 전직 홍보수석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삼족을 멸하겠다는 용어가 생각날 정도로 (수사가) 가고 있다”(이동관 전 수석), “올해가 개띠해라고 저희도 이전투구 한번 해봐야 하느냐”(김두우 전 수석) 등의 말을 찔끔찔끔 흘리며 이 전 대통령을 방어했다. 김효재 전 수석은 기자들에게 “(이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변호인단은 매우 큰돈이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의 청렴함을 강조했다. 장다사로 전 기획관은 국정원에서 10억원 규모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선거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한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혐의를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주군’ 지키려 입 닫은 이들하지만 이들이 감싸온 이 전 대통령은 결국 3월23일 자정 무렵 구속됐다. 이들이 지키지 못한 것은 ‘주군’뿐이 아니다. 그들은 비리로 얼룩진 이명박 정부 5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할 기회마저 잃었다. 역사는 뒤늦게나마 진실을 말한 자와 끝까지 입 닫은 자를 나눠 기억할 것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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