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김 두번 죽인 반공드라마 , 연출진들이 더듬은 당시의 기억
“새 반공극 첫회. 84년 싱가포르행 열차의 식당차 한쪽 구석에서 다정하게 식사하던 김덕천과 쇼콰이 두 사람은 오세원을 보자 갑자기 긴장한다. 서툴게 잡은 나이프와 포크로 우악스럽게 식사하는 그의 모습이 평양에서 온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1호실에 앉은 김일성대학교의 학생 오유경은 계속 말없이 차창만 응시한다. 김동현 극본, 류시형 연출.”
“정권과 한 박자로 확인사살”
1986년 11월4일치 12쪽에 실린 프로그램 소개이다. 이라는 새 반공드라마가 이날부터 전파를 타게 됐음을 알리고 있다. 싱가포르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암약하는 북한 해외 간첩망의 ‘실상’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이후 넉달 가까이 이어지며 안방을 찾게 된다.
“납북탈출 윤태식씨 어제 귀국. 지난 5일 싱가포르에서 북한으로 납치되기 직전 한국대사관으로 극적으로 탈출한 서진통상 홍콩본부장 윤태식(28)씨가 9일 오후 8시 태국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귀국했다. 입국수속을 끝낸 윤씨는 국제선청사 유료귀빈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유인당한 과정과 탈출경위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87년 1월10일치 에 실린 윤태식씨의 귀국 기자회견 소식이다. 17일 뒤 윤씨가 자신을 납치하려 한 북한 공작원이라고 지목한 수지김(본명 김옥분·당시 34살)은 홍콩 자기 집 침대 옆에서 목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86년 가을부터 이라는 주말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윤태식이 기자회견한 뒤부터는 아예 수지김이라는 여간첩이 등장했어요. 안기부가 발표한 그대로 줄거리가 바뀐 겁니다.” 수지김의 셋째동생 김옥림(41)씨가 지난 393호 에 털어놓은 가슴아픈 사연 중 하나다. 김씨는 “어떻게 언론이 억울한 여성의 누명을 벗길 생각은 안 하고 정권과 그렇게 한 박자로 확인사살까지 하느냐”며 탄식했다. 무고한 여인 수지김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것은 사악한 살인범과 손잡은 불의한 국가권력이었지만, 그 억울한 사연을 공공연한 사실로 믿게끔 만든 것은 반공드라마였다. “보통 사람들은 신문·방송에서 떠드는 대로 그대로 믿잖아요. ‘그 집 언니가 대체 왜 간첩질을 했대’라고 물어오는 거예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드라마에도 나왔다’면서 우리를 설득하려 하는 거예요.” 독재권력과 드라마는 이렇게 환상의 콤비로 서로 만났다.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수지김 사건은 의식도 못했는데요. 그게 사건과 관련된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그냥 작가가 구상해온 걸로 알았습니다.” 2002년 1월18일 의 연출자 류시형 PD(현 한국방송 심의위원)는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수지김 사건이 어떻게 드라마에 반영되게 됐는지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기획이 다 된 상황에서 연출만 맡았다. 대본과 관련해 작가와 상의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원고를 빨리 써서 넘기고 나면 촬영 나가고 해서 상의시간이 없었다. 전부 작가의 픽션이라 생각했다.” 그때 드라마의 전개과정을 책임진 건 작가였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중정 출신 고 김동현 작가의 작품
“그분은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지난해 연말쯤인가, 얼마 안 됐어요.” 고인이 된 의 작가 김동현씨는 “한국 반공드라마를 도맡다시피 해온” 방송작가다. 류 위원은 “작가가 반공드라마 하면 김동현 할 정도로 워낙 유명했다”며 “그가 안기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원고를 썼으니, 그 과정에서 그런 식으로 극본이 이뤄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방송작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일본에서 대학을 중퇴한 그는 61년 이라는 라디오드라마로 데뷔한 뒤 등 반공드라마를 주로 썼다. 탤런트 문오장씨가 조총련 고위직으로 출연했던 과 김병기씨가 김정일 역할로 나와 화제를 뿌렸던 등 지금도 반공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도 그가 쓴 것이다. 그러나 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작품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임동호 국장은 “몇년 전부터 거의 접촉이 끊겨 협회에선 회비 미납 등의 이유로 제명된 상태”라고 말했다. 등의 방송작가 김운경씨는 “김씨는 중정 등의 이력으로 작가세계에선 소외된 처지였다”며 “사실 작가로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한 채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고 말했다.
김씨에 대해 가장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는 김수동 전 한국방송 드라마국 국장이었다. “김 작가는 중앙정보부 과장 출신으로 강화도에서 대북책임자로 근무했다. 김형욱 부장 시절에 특히 작품을 많이 했다. 당시 영화배우들은 반공드라마에 관여하지 않는 풍조였는데, 남산(중앙정보부의 별칭)의 힘으로 최무룡·김승호·박노식씨 등이 김씨의 반공액션물에 대거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시대상황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변하면서 심적으로 타격이 있었던 것같다. 그뒤론 경기도 안산에 내려가 지내면서 내가 한번 보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했다.”
남산의 인정을 받았던 김씨도 극본을 쓸 땐 꼭 안기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류 위원은 “김씨가 매주 원고를 써오면 그걸 안기부에 넘겨 심의를 받았다”며 “안기부가 고쳐야 할 곳을 지적해오면 작가가 반영했다”고 말했다. 원고를 남산 안기부청사에 전달하는 일은 조연출의 몫이었다. 현재 한국방송의 주말드라마 의 연출자 김용규 PD가 당시 조연출이었다. 김 PD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비참하고 한심한 꼬락서니”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주 안기부 정문에 가서 전화를 걸어 원고를 가져왔다고 ‘보고’를 했다. 그나마 담당자는 얼굴도 한번 못 봤고, 그냥 그가 수위실에 놓고 가라면 놓고 왔다. 그게 다였다. 안기부 말단조차도 우릴 어디 사람으로 보기나 할 때였나. 왜 이 짓을 하나 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쫄따구라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렇게 전달된 원고는 안기부의 검토를 거쳐 수정되곤 했다. “얼마 있다가 어디어디를 어떻게 고쳐라 하고 전화가 온다. 그러나 그 수정지시는 PD나 작가에게 직접 내려갔기 때문에 나는 어디가 어떻게 고쳐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도 수지김 사건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젊은 PD 가운데 그런 반공극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며 “나도 3년차 ‘쫄따구’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다”고도 했다. “당시엔 드물게 은 해외촬영도 갔는데 나는 쏙 빼고 가서 사실 개인적으로도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의 출연진은 상당히 화려했다. 당시 최고의 히로인으로 성가를 떨치던 최선아씨가 주싱가포르 북한대사(문오장)의 딸로 남한 유학생(백윤식)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역할을 했고, 고 이낙훈씨도 조총련계 고위 공작원으로 출연했다. 백윤식씨는 “방송 초기 싱가포르로 해외촬영을 갔다 돌아오며 홍콩에 들렀다가 김동현 선생님에게 홍콩과 관련된 극본 얘기를 들은 기억은 있지만, 수지김 사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위원은 “당시 탤런트 민욱씨가 수지김에게 납치당한 남자 역할을 맡아 기자회견 장면을 찍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면서도 “수지김은 아마도 직접 출연한 게 아니고 대사상에 ‘수지김이 뭐했다’는 식으로 처리됐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민욱씨는 아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아마 작은 역할로 출연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을 계기로 연속극 형식의 반공드라마는 퇴조의 길을 걷게 된다. 87년 6월항쟁과 대통령직선제의 도입, 노태우 정권의 7·7선언 등으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반공드라마가 들어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류 위원은 “을 하면서 이미 이런 드라마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땐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대로 그냥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기부가 실질적으로 반공드라마의 제작을 관리하고 방송사와 PD는 다만 주어진 기획을 하청하듯이 생산해내는 ‘괴벨스적’ 시스템은 차츰 안팎의 저항과 거부에 부닥치게 된다. 방송작가 김운경씨는 “당시 봇물처럼 터지던 정권에 대한 저항을 반공으로 돌리려던 의도가 반공드라마 양산의 배경”이라며 “노태우 정권을 기점으로 약해지더니 김영삼 정권부터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그동안 숱하게 만들어진 맹목적 반공드라마들은 지금껏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극우적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지금도 경각심을 갖고 기억해야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을 보며 자란 세대에겐 지금도 ‘김정일’ 하면 기쁨조를 농락하던 엽색가의 행태가 떠오르기 일쑤다. 드라마는 이성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조건반사를 우리 뇌리에 창출했다. 또 군부파시스트 정권의 홍보물로 전락해버린 반공드라마에 울고 웃는 가운데, 이국 땅에서 외롭게 죽어간 여인 김옥분은 여간첩 수지김으로 머릿속에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죽음과 훼손된 명예는 권력에 기억마저 빼앗겨야 했던 불행한 현실을 새삼 아프게 돌이켜주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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