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방으로 오시면 돼요.”
지난 5월16일 스터디 모임 ‘문디’(Moon.D)를 찾았다. 데이터 시각화, 데이터 저널리즘, 미디어 등을 공부하는 문과생 7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만난다. 언론사 공채를 ‘본격’ 대비하려는 목적에서 모인 다른 스터디 모임과 달리, 디지털 저널리즘을 차근차근 익히며 어떤 일을 할지 탐색하는 학생이 많다. 이날 모임이 열린 스터디룸의 문 앞에는 ‘꿈’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가 널리 쓰이게 된다면 미디어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뉴스 소비는 어떻게 변할지 같이 상상해봐요.”
“화면을 접거나 돌돌 말았다가 다시 펼 수 있다면, 전체 화면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어요. 그러면 화면이 갑갑해서 잘 안 읽던 긴 콘텐츠를 다시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블릿PC가 처음 나왔을 때, (태블릿PC가) 잡지에 기회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아니었잖아요. 웨어러블 기기가 도입되면 그때 새로운 소비 형식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태블릿PC는 무거웠지만 이 디스플레이를 쓰면 휴대성이 크게 좋아져서 평균 5인치 화면이 10인치 이상 커질 수도 있어요. 웹에서는 보는데 모바일에선 소비되지 않았던 콘텐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당장 적용 가능하게이날 공부는 미디어 트렌드 짚기, 자바스크립트(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한 종류)와 D3.JS 익히기 순서로 진행됐다. D3.JS는 미국 일간지 의 전 직원 마이크 보스톡이 만든 데이터 시각화 툴인데, 전세계 언론사들이 인터랙티브 보도에 활용 중이다.
D3.JS 순서에서 스터디원들은 막대그래프에 마우스오버 효과를 주는 방법을 실습했다. 이용자가 그래프의 특정 부분을 선택하면 색상이 바뀌도록 하는 코딩 작업을 함께 익히고 각자 노트북에서 연습해봤다. 잠시 끙끙거렸지만, 결국 완성해낸 디지털 인터랙티브를 보고 모두 함박웃음을 짓는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목말랐던 이들을 이어준 건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이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은 정보기술(IT) 전문 매체인 에서 올해 처음 시도한 예비 디지털 저널리스트 및 뉴스 미디어 창업자 교육 과정이다. 구글이 후원을 맡았다. 지난 2월9~13일 5일 동안 전일교육으로 진행됐으며, 밥값과 교재비를 포함해 “적극적인 학습 참여를 약속받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수강료”가 10만원이었다. 에세이, 출결, 과제 평가 등을 합산해 최우수 학생 1명은 구글 미국 본사 취재와 인터뷰 기회를 얻었으며, 최우수 학생과 우수 학생 2명은 인턴 기회를 제공받았다.
“저널리즘 교육은 미디어 환경 변화의 속도에 버금가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저널리즘 교육은 올드 미디어에 어울릴 만한 취재 문법을 주요 커리큘럼으로 한다. 학생들이 디지털화된 스토리텔링 문법을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이 그대로 언론사에 취직하게 된다. 기존 언론사는 신입 기자들을 가르칠 여유가 없다. 외부 기관에 교육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당장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다.”
스쿨을 총괄한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장은 개설 배경을 설명하면서 “기존 저널리즘 교육에 대한 불만”을 가장 먼저 꼽았다. “‘기레기’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저널리즘은 조롱거리가 됐다. 특히 디지털 영역에서 심하다. 저널리즘 회복이 왜 중요한 과제인지 디지털 문법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새로운 디지털 저널리즘, 새 비즈니스 모델이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실전형’ 워크숍으로 구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 목표로 △디지털 저널리스트의 기본 소양 함양 △디지털 스토리텔링 툴과 데이터 저널리즘 툴을 활용한 기사 작성법 학습 △디지털 미디어 창업에 요구되는 기본 기술 습득 △디지털 미디어 창업 관련 비즈니스 모델 이해 △독자 확보를 위한 데이터 분석법 이해를 세웠다.
수강생들은 국내 디지털 저널리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룬 디지털 스토리를 작성해 멀티미디어 요소가 임베드(Embed, 음악·동영상 등의 개체를 삽입하는 방식 중 하나) 가능한 플랫폼에 게시하고, 디지털 스토리텔링 툴을 2가지 이상 활용한 스토리를 만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적화한 스토리를 만들어 게시하는 등의 과제를 수행했다. 마지막 날엔 ‘내가 1인 미디어를 창업한다면’을 주제로 발표했다.
미디어 창업 교육을 함께 담은 이유는 뭘까.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장은 ‘작지만 강한 디지털 매체’ 모델이 존재해야 한국의 디지털 저널리즘 생태계가 상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사 같은 거대 조직이 디지털을 받아들이고 전환해가는 과정이 굉장히 지난할 수밖에 없다. 전통 언론에 들어간 디지털 인재가 내부 조직 논리에 흡수되는 모습을 더러 봤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새로운 디지털 저널리즘에 도전해서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실험이다. 기존 언론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채워주면서도 동시에 직접 새 모델에 도전하는 그룹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을 함께 하고 싶었다.”
“디지털이 있기에 기자·PD도 해볼 만하다”“당장 ‘언론고시’에 도움되는 커리큘럼이 아니기에” 수강 신청이 미달될까봐 걱정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30명 정원에 60명이 신청해 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수강생의 90% 이상이 문과생이었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눈뜬’ 문과생들은 교육과정이 끝난 다음에도 스스로 계속 익히고 배우려고 ‘문디’ 같은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문디’ 스터디에 참여 중인 대학졸업생 원의림씨는 “전통 언론의 힘이 갈수록 약해지는 걸 보고 기자나 PD라는 직업에 미래 전망이 있을까 고민을 했었다. 넥스트 스쿨과 문디 스터디에서 위기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지는 걸 알게 됐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황유덕씨도 디지털 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기성 언론의 기자직 공채를 준비할 마음은 안 든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디지털 인터렉티브로 가공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독학으로 코딩 공부를 해왔다”는 황씨는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어떤 조직에 어떤 경로로 합류해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고 그는 말했다.
예비 저널리스트들의 수요를 확인한 은 앞으로 연 1~2회 이런 강좌를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를 제외하면 디지털 저널리즘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국내 기관은 매우 드물다. 미국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이 석사과정에 데이타 저널리즘 전공 코스를 마련한 것과 비교된다. 블로터도 이들의 커리큘럼을 참조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우원식 “한덕수, ‘내란 특검’ 후보 추천 의무 오늘까지 이행하라”
[속보] 노상원 ‘계엄 수첩’에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판사 “수거 대상”
“탄핵 반대한다더니, 벌써 들뜬 홍준표…노욕만 가득” 친한계, 일침
[단독] HID·특전사 출신 여군도 체포조에…선관위 여직원 전담팀인 듯
안철수 “한덕수, 내란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 않는게 맞다”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내란 직후 임명…자격 없다” 국회 행안위서 바로 쫓겨난 박선영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