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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교수님이 큰오빠가 되다

두이 린 투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 교수 인터뷰
등록 2015-05-21 14:40 수정 2020-05-03 04:28

“뉴스를 전하는 톤(tone)과 스타일, 그리고 플랫폼에 대한 이해.”
모바일과 소셜미디어 시대에 이른바 전통 언론들은 우왕좌왕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 스냅챗, 넷플릭스, 아마존…. 적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는 플랫폼들이 빠른 속도로 미디어 시장을 장악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플랫폼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기에 바쁘다. 신문과 잡지, 방송 등 전통 언론은 과연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이 린 투(Duy Linh Tu·사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두 가지 생존법을 꼽았다. 교수님처럼 딱딱하게 가르치려 드는 언론 대신 편안한 친구처럼 재밌게 다가가는 언론, 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플랫폼을 적절하게 활용해 독자나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언론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두이 교수는 올해 초 이라는 책을 펴냈다.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멀티미디어 기술과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 작법을 담은 책이다. 신문( ), 방송(NPR, ), 동영상을 기반으로 한 신생 매체( ) 등에서 일하는 언론인 40여 명과의 인터뷰가 책의 밑바탕이 됐다. 지난 5월1일 찾은 그의 작은 연구실은 최신식 음향기구와 카메라, 컴퓨터들로 가득했다.

뉴스에 관심 없는 게 아니라 방식을 싫어할 뿐이른바 전통 언론사들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너도나도 ‘혁신’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기기의 등장이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는 건 물론 중요한 변화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뉴스 ‘톤’의 변화다. 우리가 어릴 때 보던 뉴스에서는 기자가 정자세로 뻣뻣하게 서서 “보십시오. 저 뒤에 화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며 중계방송한다. 마치 ‘교수님’처럼 가르치려는 자세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친구 같은 기자가 뜨고 있다. 양복이 아니라 티셔츠를 입고서 심각한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큰오빠’ 같은 존재다. 미국 청년들이 다큐 영상매체인 (VICE)를 좋아하는 이유다. 15살짜리 여자애한테 한번 물어보자. 오빠랑 놀래, 아니면 영어 선생님이랑 놀래? 전통 언론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유튜브의 등장은 뉴스 소비 방식과 뉴스 톤을 바꾼 변곡점이었다. 두이 교수는 “웹이 등장한 초기만 해도 CNN은 텔레비전 방송 내용을 똑같이 온라인에 올리기만 했다. 이걸 젊은이들이 좋아했겠나? 그런데 유튜브 안에 있는 미디어 파트너 부서에서 뉴스나 영상의 톤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도와줬고 미디어의 변화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이제 더 이상 신문이나 방송으로 뉴스를 소비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미래가 절망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유튜브에서 ‘네팔 지진’이라고 검색해보면 뜻밖의 동영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단점은 1분에 3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되다보니 정보의 홍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CBS의 댄 래더라는 기자 이름을 보고 뉴스를 봤지만, 이제 CBS나 댄 래더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친구들이 공유해준 링크의 뉴스를 더 신뢰한다. 전통 언론 내부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이 자체가 공포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 없는 바보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를 통해 북한이나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몇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즐긴다. 정치에 진짜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보여주는 방식을 싫어했던 것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상과 뉴스를 갈구하고 있다.

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등에 관한 깊이 있는 다큐를 제작하는 매체로, 국내에서는 ‘데니스 로드먼, 북한에 가다’라는 다큐로 주목받았다. 두이 교수는 를 두고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뉴스룸 안에서 젊은이들에게 편집권을 주고 있는 나 온라인 정치 토론쇼를 선보인 TYT, 스포츠 전문 웹진 등도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매체로 꼽았다.

뉴스회사, 페이스북·영화와 경쟁한다뉴스 톤의 변화라는 게 결국 재미와 흥미를 뜻하는 것처럼 들린다.

과거엔 뉴스에서 오락과 흥미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 뉴스는 대학교수처럼 심각한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전에는 뉴스 네트워크 안에 있는 A라는 회사와 B라는 회사가 경쟁 상대였다면, 이제 A는 B뿐만 아니라 영화·페이스북·유튜브·게임 등과 경쟁해야 한다.

미국 10대가 열광한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냅챗의 뉴스 서비스인 ‘디스커버’를 보면, 여기에 참여하는 매체들이 스냅챗만을 위한 전용 콘텐츠를 따로 제작한다. SNS 등의 뉴스 플랫폼이 점점 다양해질수록 전통 언론이 대응할 몫도 늘어나는 느낌이다.

언론사의 모든 구성원들이 플랫폼을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인스타그램, 스냅챗, 유튜브, 페이스북 등등 플랫폼마다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의 내용이나 형식이 다르다. 바인(VINE·동영상 공유 서비스)에는 6초짜리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는 10초짜리 동영상을 올려야 하는 식이다. 똑똑한 언론이라면 그런 플랫폼별·커뮤니티별 특성을 잘 이해해서 다른 전략을 택해야 한다.

언론이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플랫폼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0대가 페이스북을 떠나고 있다. 이용자가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가장 진취적이고 젊은 이용자들은 그 플랫폼을 떠나게 마련이다. 20살 조카는 페이스북 계정을 없앤 대신 텀블러와 와츠앱을 좋아한다. 언론 입장에선 새로운 플랫폼과 앱이 튀어나올 때마다, 각각에 얼마큼 자원을 나눠 투자할 것인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독자와 시청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언론에는 큰 기회이자 도전이다. 어디로 가야 이들을 만날지 아는 언론이 결국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중간지대의 언론은 사라질 것애플워치에는 3줄짜리 기사, 바인에는 6초짜리 동영상 뉴스가 소비되는 식이라면, 깊이 있는 뉴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아닌가.

아침 8시에 화재가 발생했다. 독자는 8시1분에 그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애플워치 제공 뉴스에는 ‘화재 발생’이라고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독자가 원하는 정보는 두 가지다. 빠르고 신속한 뉴스와 굉장히 깊이 있는 정보. 지난 100년 동안 저널리즘은 그 중간지대에 있었다. 어떤 독자가 전날 아침 8시에 일어난 화재 기사를 24시간 뒤에 신문으로 읽고 싶어 하겠나? 중간지대에 있는 언론은 대부분 사라질 거다. 이미 미국의 많은 신문사들이 문을 닫았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는 언론계 일자리 10만 개가 줄어들었다. 모바일의 시대 정신을 확립하지 못하는 언론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깊이 있는 뉴스의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될까? 두이 교수는 좋은 ‘내용’과 ‘형식’이라고 답했다. “기자들이 소설가나 영화인들이 좋은 실화를 어떻게 재밌는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내는지를 배워야 한다. 이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전쟁, 자연재해, 부패 등은 할리우드 영화만이 아니라 뉴스의 좋은 소재다. 언론도 독자나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뉴스 재밌네’ 생각하고 친구에게 공유해주도록 하는 게 바로 엔터테인먼트다. 그런데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은 이걸 잊어버릴 때가 많다. 콘텐츠가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이 문제다. 여기에 미래의 생존이 달려 있다. 기자가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음악·영화·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뉴욕(미국)=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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