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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해고’로 가는 길을 설계하라?

MBC가 저성과자들 해고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법무법인 김앤장·화우에 자문한 ‘해고 비법’ 5가지
등록 2014-12-04 13:54 수정 2020-05-03 04:27
MBC는 대기명령, 명령휴직, 직권면직 등 인사 처분을 활용해 저성과자를 단기간에 퇴출할 방법을 찾고 있다.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성실·무능 공무원을 퇴출 후보로 분류해 쓰레기 줍기, 잡초뽑기 등 환경정화 활동을 시켰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MBC는 대기명령, 명령휴직, 직권면직 등 인사 처분을 활용해 저성과자를 단기간에 퇴출할 방법을 찾고 있다.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성실·무능 공무원을 퇴출 후보로 분류해 쓰레기 줍기, 잡초뽑기 등 환경정화 활동을 시켰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은행 지점장 김아무개씨는 2003년 7월 명예퇴직을 권고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회사가 대기발령, 명령휴직 처분을 반복했다. 김씨가 지점장으로 있던 영업점이 2001년 하반기, 2003년 상반기 경영평가에서 하위 영업점으로 평가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끝내 명예퇴직에 응하지 않자 회사는 2004년 6월 김씨를 당연면직 처분했다. 회사 인사규정을 보면, ‘업무실적이 극히 불량해 직무 수행이 곤란한 직원’에게 대기발령(1년 이내)을 할 수 있고, ‘회사 형편상 휴직이 필요한 경우’에는 명령휴직을 명할 수 있다. 또 휴직 기간 만료 뒤 1개월 이내에 복직되지 않으면 당연면직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은 “면직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씨 영업점은 중위권 이상의 실적을 내다가 2년에 걸쳐 2차례 영업실적이 최하위로 떨어졌다.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책임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저성과자를 직권면직하는 데 법원은 엄격하다.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회사가 일반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끝낸다는 점에서 직권면직도 해고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정당한 해고 사유’는 근무성적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정도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직무 수행 능력이 최소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법무법인 김앤장과 화우는 MBC에 그 비법 다섯 가지를 조언했다.

1. 평가 기간을 늘려라

MBC가 계획한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보면, 1회 R등급(70점 미만·최저) 교육발령, 2회 연속 R등급 대기발령 및 교육발령, 3회 연속 R등급 대기발령 후 명령휴직, 교육발령, 희망퇴직 권고, 직권면직 등을 진행한다. 6개월에 한 번씩 개인평가를 하니까 최초 R등급을 받고 12~13개월 만에 3회 연속 R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1회 R등급을 받으면 교육, 2회 R등급을 받으면 대기발령 및 교육을 진행하는데 그러면 업무 수행 기간이 6개월에서 3~5개월로 줄어든다. 더 짧아진 업무 수행 및 업적 평가를 근거로 면직 또는 징계해고하면 당연히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법원은 약 4년간 최하 등급의 근무성적을 받은 근로자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2년간 영업실적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정당한 해고 사유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최소한 2~3년 이상 계속 R등급을 받은 직원을 명령휴직 또는 직권면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2. 평가 기준을 객관적으로 마련하라

저성과자의 해고를 인정한 판례는 두 가지다. 첫째, 보험회사 직원(관리역)의 보험계약 실적이 극히 불량한 경우였다. 그는 18개월 동안 목표액의 22.1%를 달성했다. 과장급 평균의 6% 수준이었다. 대법원은 “보험계약 실적에 따라 회사 운영의 성패가 좌우되는데 이 근로자의 실적은 최소한의 직무 수행 능력에 못 미친다”고 인정했다. 둘째, 자동차 제조·판매 회사에서 근무성적이 하위 2%를 수년간 맴돈 판매과장의 사례다. 근무를 게을리하거나 상사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허위 사실을 담은 전자우편도 대량 발송했다. 서울고법은 “해고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저성과자를 직권면직하는 데 법원은 엄격하다.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회사가 일반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끝낸다는 점에서 직권면직도 해고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평가 기준이 객관적·합리적이어야 한다. 회사가 평가 기준과 요소를 자의적으로 설정하거나 평가자의 주관에 의존하면 안 된다. 방송 업무의 특성상 MBC는 직원의 실적을 계량화해 평가하기 어렵고, 나아가 직원의 실적이 많고 적음에 회사의 성패가 달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로 법원은 실적 산정 기준이 다른 직원과 다르거나 평가 요소 설정에 객관적 근거가 없는 경우 평가 기준의 객관성·공정성이 부족해 해고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3. 비위(불법)를 찾아라

근무성적 불량 이외에 직무태만, 지시불이행 등 구체적 비위가 있다면 그 구체적 행위를 채증한다. 평가자는 그 사례를 특정해 기록하도록 하자. 또 객관적인 입증 자료나 관련 직원 진술서 등을 함께 첨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은 또 다른 징계 회부 사유가 된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장기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근무성적 불량에 따른 해고 절차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그 직원이 저지른 비위 행위를 근거로 징계 절차를 별도로 밟는다. 법원이 근무성적과 비위를 함께 고려해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할 것이다. 실제 사례가 있다. 10년 가까이 인사평가에서 하위 등급에 머물던 건설사 직원이 성과향상 프로그램에서 탈락했다. 업무감사에서 자신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떠넘기고 수당 등을 보고 없이 임의 지급하는 등 징계 사유도 드러났다. 서울행정법원은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데다 다수의 부적절한 업무 처리 사례가 적발됐다. 종합해보면 해고가 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4. 맞춤형 교육을 개발하라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법원은 “회사가 근무역량 강화를 위한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는지”도 따진다. 그런데 MBC가 실시하는 저성과자 교육 프로그램은 근무역량 강화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근무태도 및 기본 인성 함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 주제를 이렇게 획일적으로, 일방적으로 선정하면 형식적인 퇴출 과정으로 오인받을 것이다. 앞으로 교육 대상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하는 특성을 반영하도록 교육 전문가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또 교육 대상자를 개별적으로 만나 업무 내용과 적성, 성적 부진 이유 등을 청취하고 ‘맞춤형 교육’을 개발하도록 한다.

5. 명령휴직을 개선하라

MBC는 연속 3회 R등급을 받으면 명령휴직을 내린다. 명령휴직도 해고처럼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근로를 제공할 수 없다거나 근로 제공이 매우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명령휴직을 인정한다. 구체적인 판례를 보자. 한 은행원이 2년간 동급 직원 121~130명 중 업무평가에서 102~124위를 맴돌았다. 이에 회사는 6개월 명령휴직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근로 제공을 받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며 명령휴직 무효를 선언했다.

MBC 취업규칙을 보면, 최장 1년간 명령휴직을 내릴 수 있는데 지나치게 길다. ‘정직’이 최장 6개월이라는 점을 봐도 그렇다. 명령휴직 처분으로 1년간이나 업무에서 배제되면 직원이 입는 불이익이 크다. 그 기간에는 임금도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급여 부분에선 해고와 동일한 불이익인 셈이다. 저성과자 해고 절차상 명령휴직은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명령휴직 기간을 6개월 이내로 축소하고 그 기간에 일정 비율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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