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10월17일 은행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우리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힘이 빠져요. 앞서 대법원 판결이 치명적입니다.”
수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형식(가명) 사장은 최근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5년 넘게 은행과 법정 다툼을 벌여온 키코(KIKO·고위험 통화옵션상품) 소송의 항소심 결과가 내년 1월17일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2008년 초 은행의 권유로 환율 하락에 대비한 ‘최첨단 환헤지 상품’이라는 키코에 가입했다. 그러나 몇 달 뒤 환율이 치솟아 165억원의 손해를 보게 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가 “은행에는 책임이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을 때만 해도, 김 사장에게는 “2심·3심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희망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를 좌절시킨 건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는 지난 9월26일 키코 계약으로 피해를 본 수산중공업·세신정밀·삼코·모나미 등 4개 회사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은행 쪽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키코가 환헤지에 적합한 상품이고, 불공정한 계약도 아니며, 은행이 기업에 수수료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제공할 의무도 없다고 못박았다. 다른 214개 기업이 제기한 소송을 심리 중인 1심·2심 재판부가 따라야 할 기준이 생긴 것이다. 하나같이 은행 쪽이 그간 펼쳐온 주장이었다.
실제 대법원 판결 이후 하급심 재판부는 판례를 개별 재판에 적용했다. 그 결과 6개 기업이 3심에서 원고 완전 패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5개 기업은 1심·2심에서 졌다. 그나마 5개 기업이 1~3심에서 은행의 책임을 10~30% 인정받았다. 은행이 기업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이를 제대로 설명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였다.
기업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대법관의 소수 의견 없이 전원일치로 결정됐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고 있다. 선고를 앞둔 지난 7월, 대법원이 키코 소송에 대해 예외적으로 공개변론을 열고 양쪽의 법정 공방을 생중계했을 때만 해도 “대법관의 의견이 나뉘고 있는 만큼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희망을 품어왔기 때문이다. 기업 쪽 변호인단의 말이다. “키코의 계약 구조가 기업에 불리하다는 점을 대법원도 인정했고, 비슷한 경우 해외에선 은행을 제재한다는 점도 우리가 충분히 설명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13 대 0으로 은행에 잘못이 없다고 했으니, 법을 떠나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법원에서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 일치가 안 되거나,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 공개변론을 실시하고 있다. 키코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공개변론을 한 것이기 때문에 소수 의견이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까지 나온 터라 기업들이 은행에 책임을 물을 길은 더 좁아졌다.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근시안적인 대법원 판결로 기업들이 재산권 침해를 받았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로 했다. 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수단이다.
키코 사태로 적어도 734개 기업이 총 3조2천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금융감독원). 이 중 110개 기업은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폐업하거나 법정관리·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은행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은 그런 은행에 결정적인 면죄부가 됐다.
김성진 대법원, “속인 은행보다 속은 수출기업의 잘못이 크다!”
김보라미 들었다 놨다~.
유성규 땅땅땅! 대한민국을 진정한 위험사회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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