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두 차례 허가를 받지 않고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자를 구금하거나 추방 명령을 내려도 되는 것일까.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심준보)는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다.
1년 넘는 심사 기간에 뭘 먹고 살라고2011년 6월 버마(미얀마)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 해리(24·가명)가 한국으로 향했다. 입국 10여 일 만에 그는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정치·종교적 사유로 난민인정 신청을 낸다. 난민신청자에겐 기타(G-1) 체류 자격이 주어졌다. G-1 비자는 원칙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체류 자격이다. 난민 심사는 1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옛 출입국관리법엔 난민인정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날 때까지 심사 결과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법무부 장관은 취업 활동을 ‘허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해리는 허가를 따로 받지 않고 2012년 8월 일용직 일을 시작했다가 보름 만에 적발된다. 서울출입국관리소는 범칙금 100만원 처분을 내리고, 같은 해 12월28일까지 취업 허가를 내준다.
2012년 11월 법무부는 난민 불인정을 통보했다. 심사 결정에 수긍할 수 없던 해리는 12월24일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내고, 서울출입국관리소엔 체류 기간 및 취업활동 연장 허가를 신청했다. 체류 기간은 연장됐지만, 취업활동 연장은 허락되지 않았다. 취업허가 기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일하다 2013년 2월 또다시 단속에 걸렸다. 서울출입국관리소는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을 내리고 그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황필규 변호사는 그를 대신해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판결 확정 전까지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을 낸다.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해리는 갇힌 지 5개월 만에 보호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난 10월 재판부는 해리에 대한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을 모두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난민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제한적으로 취업활동을 허가하고, 난민 불인정 결정 뒤엔 허가를 연장해주지 않으면서 일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결정한 것은 행정의 편의성만을 강조한 조처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난민협약은 난민에 대한 추방·송환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데,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난민인정 심사가 오래 걸리는 상황에서 허가 없이 취업을 한 이유만으로 ‘공공의 안전을 해쳤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장서연 변호사는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행정에 있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재량을 넓게 인정해온 게 관례인데, 이번 판결은 그 재량의 범위를 엄격하게 판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난민 불인정 이의신청은 법무부서 기각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앞서 해리가 법무부에 낸 난민 불인정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그는 서울행정법원에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낸 상태다.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또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하는지. 불안한 한국살이는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
심사위원 20자평▶오창익 난민신청자도 사람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확인.
유성규 2013년 대한민국. 난민이 공기만 먹고 살 수 없음을 인정하다.
조혜인 생존권 보장 없는 ‘난민 보호’라는 난센스는 이제 그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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