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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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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신청자도 먹고살아야 한다

무허가 취업으로 구금된 난민신청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 판결
“생계 지원 없이 취업 규정 위반했다 처벌하는 것은 편의행정”
등록 2013-12-28 14:45 수정 2020-05-03 04:27
주목할 판결▶서울행정법원, 취업 허가 없이 일한 난민신청자에 대한 강제퇴거 명령 취소 판결

아무런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두 차례 허가를 받지 않고 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자를 구금하거나 추방 명령을 내려도 되는 것일까.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심준보)는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다.

1년 넘는 심사 기간에 뭘 먹고 살라고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난민지원센터에서 한 난민신청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법원은 허가 없이 취업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자를 구금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조처는 행정 편의성만 앞세운 것이라고 판시했다.정용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난민지원센터에서 한 난민신청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법원은 허가 없이 취업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자를 구금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조처는 행정 편의성만 앞세운 것이라고 판시했다.정용일

2011년 6월 버마(미얀마)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 해리(24·가명)가 한국으로 향했다. 입국 10여 일 만에 그는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정치·종교적 사유로 난민인정 신청을 낸다. 난민신청자에겐 기타(G-1) 체류 자격이 주어졌다. G-1 비자는 원칙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체류 자격이다. 난민 심사는 1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옛 출입국관리법엔 난민인정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날 때까지 심사 결과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법무부 장관은 취업 활동을 ‘허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해리는 허가를 따로 받지 않고 2012년 8월 일용직 일을 시작했다가 보름 만에 적발된다. 서울출입국관리소는 범칙금 100만원 처분을 내리고, 같은 해 12월28일까지 취업 허가를 내준다.

2012년 11월 법무부는 난민 불인정을 통보했다. 심사 결정에 수긍할 수 없던 해리는 12월24일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내고, 서울출입국관리소엔 체류 기간 및 취업활동 연장 허가를 신청했다. 체류 기간은 연장됐지만, 취업활동 연장은 허락되지 않았다. 취업허가 기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일하다 2013년 2월 또다시 단속에 걸렸다. 서울출입국관리소는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을 내리고 그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황필규 변호사는 그를 대신해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판결 확정 전까지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을 낸다.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해리는 갇힌 지 5개월 만에 보호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난 10월 재판부는 해리에 대한 강제퇴거 및 보호 명령을 모두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난민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제한적으로 취업활동을 허가하고, 난민 불인정 결정 뒤엔 허가를 연장해주지 않으면서 일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결정한 것은 행정의 편의성만을 강조한 조처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난민협약은 난민에 대한 추방·송환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데,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난민인정 심사가 오래 걸리는 상황에서 허가 없이 취업을 한 이유만으로 ‘공공의 안전을 해쳤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장서연 변호사는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행정에 있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재량을 넓게 인정해온 게 관례인데, 이번 판결은 그 재량의 범위를 엄격하게 판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난민 불인정 이의신청은 법무부서 기각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앞서 해리가 법무부에 낸 난민 불인정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그는 서울행정법원에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낸 상태다.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또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하는지. 불안한 한국살이는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

심사위원 20자평▶

오창익 난민신청자도 사람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확인.

유성규 2013년 대한민국. 난민이 공기만 먹고 살 수 없음을 인정하다.

조혜인 생존권 보장 없는 ‘난민 보호’라는 난센스는 이제 그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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