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맞벌이 부부를 원한다. 높은 주택 가격, 비싼 물가와 교육비 탓에 외벌이로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데다 맞벌이라도 남편의 가사노동은 크게 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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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결혼 10년차 이승환(40)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업주부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내가 재취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6살, 작은아이는 4살이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때는 집에 아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집안이 돌아간다. 하지만 경제적인 상황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아이들이 크면 직장생활을 다시 했으면 한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아내는 종이접기 강사로 문화센터에서 특강을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였던 경력을 활용해 재취업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아이들이 보육시설에 있는 낮시간에 하는 일이라 아내는 가사노동도 전담한다. 이씨는 주중에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집안일을 도맡고 자신은 주말에만 청소나 설거지를 돕는다고 했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미취학 아이가 있는 외벌이 직장인 232명에게 물어보니 36.6%가 ‘육아 문제 때문에 맞벌이를 그만두게 됐다’고 답했다. 그 가운데 68.1%는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를 다시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씀씀이는 크게 줄지 않는데 가계 수입은 뚝 떨어져서다. 맞벌이 직장인의 한 달 평균 자녀 양육비는 88만8천원인 데 비해 외벌이는 59만1천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차액은 28만9천원에 그친다. 전업주부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 보내는 까닭이다. 12살 딸을 둔 김상훈(35)씨는 “아내가 직장을 그만둬 수입은 반토막이 났는데 육아 지출은 그대로다. 용돈과 생활비를 줄였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볼 때마다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고 했다.
맞벌이를 바라는 남편의 또 다른 속내는 자신의 가사노동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사회동향 2012’보고서를 보면, 맞벌이 남편이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은 평일에는 평균 17분에 그친다. 주말에도 토요일에는 32분, 일요일에는 49분 정도만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더욱이 외벌이 남편의 가사 분담과 비교해도 차이가 거의 없다. 외벌이 남편의 가사 분담은 평일 11분, 토요일 33분, 일요일 44분으로 조사됐다. 평일에는 맞벌이 남편이 6분 길고, 토요일에는 되레 외벌이보다 1분 짧다. 전체 평균을 내보면 24분(맞벌이) 대 19분(외벌이)으로 5분 차이가 난다. 하지만 맞벌이 아내는 평일 2시간23분, 토요일 3시간3분, 일요일 3시간29분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가사 시간이 남편보다 무려 8배나 많다.
아내가 꼭 필요한 남편의 가사노동 분담결국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아내는 시간을 압축적으로 쓴다. 이른바 ‘압축적 시간 경험’이다. 가족사회학자 조주은씨는 맞벌이 아내 20명을 인터뷰해 지난 1월 펴낸 저서 에서 “제한된 시간 속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많을 때 여성의 노동은 ‘동시성’이라는 특성을 띠게 된다”고 그 개념을 설명했다. “기혼 여성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자. 그녀는 출근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아이들의 학원비를 송금하며 잠시 은행 일을 본다. 중고생인 아이들에게 ‘오늘하루 생활 잘하고 책값은 거실 어디에 두었으니 학원 갈 때 잊지 말고 챙겨라’ 하는 자녀 관리용 문자도 뒤이어 발송한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의 주요 뉴스를 훑어본 뒤 때로는 자녀의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이들의 학교 관련 동향과 정보를 숙지한다. 오후가 되면 학원에서 자녀의 등원 시간, 일일 테스트 점수가 그녀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속속 도착한다. 그녀는 자녀가 학원을 마칠 무렵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와 아이와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다음 일정과 과제, 준비물 등에 관해 논의한다.” 이렇게 노동시간과 가정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맞벌이 아내는 여러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이뿐만 아니다. 여가시간도 남편과 아내는 다르게 인식한다. 가령 주말을 이용해 남편은 혼자 등산을 가거나 골프를 치며 여가를 즐길 수 있지만, 아내는 아이와 함께 사우나를 가서 아이를 씻겨주고 자신도 즐기는 잠시의 활동을 여가로 생각한다. 친구 모임에 어린 자녀를 데려가는 것도 순수한 여가라기보다는 자녀 돌봄 활동과 중첩된다.
하지만 맞벌이 남편은 가사노동에서 보조자 역할만 맡는다. 주로 특식 요리, 아이들과 놀기, 청소 등에 한정해 주말에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남편의 가사노동은 ‘훈련’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아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남편의 도움과 지원 없이 전적으로 가사노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지는 아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혼 13년차인 공무원 이승희(47)씨의 얘기다. “남편이 요리를 엄청 잘한다. 근데 문제는 여자들은 요리할 때 자기가 치워가며 하는데 남편은 다 벌여놓고 뭐 어딨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소금 어딨어? 간장 어디 있어? 뭐 어디 있어?’ 내가 그런다. ‘나와. 내가 라면 끓인다. 내가 이 짓을 하느니 차라리 라면 끓인다.’ 훌륭하게 한 상 차려오지만 부엌은 폭발 직전이고. 어쨌든 내가 또 치워야 한다.”
어깨에 놓인 짐이 무거우니까 여성은 결혼에 점차 부정적으로 변한다. 통계청의 ‘결혼에 대한 태도’(2012)에서 ‘반드시 해야 함’이라는 응답이 30대 여성은 7%로 남성(15.3%)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음’이라는 응답도 여성(53.4%)이 남성(34%)을 압도했다. 실제로 초혼 연령이 2011년 기준으로 남성은 31.9살, 여성은 29.1살로 해마다 늦춰지고 있다. 2012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도 1.3명에 그친다.
육아휴직에 통상임금 지불하는 ‘아빠의 달’조주은씨는 “남성의 가사·돌봄 노동 참여를 지원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아빠의 달’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박 당선인은 남성 노동자가 출산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육아휴직(30일)을 신청하면 고용보험기금에서 통상임금의 10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양성평등이 잘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도 1995년 아빠의 육아휴직을 강제함으로써 남성의 육아 참여가 보편화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아니타 뉘베리 교수의 말이다. “1974년부터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좀처럼 늘지 않았다. 아빠만 쓸 수 있는 30일간의 육아휴직을 도입하자 90% 가까운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하게 됐다. 이제는 스웨덴 어디를 가나 아이를 돌보는 아빠를 만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사회문화까지 바꾼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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