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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동티모르)=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newscnx@hotmail.com
딜리, 2012년 7월은 이상하다. 고요하다. 심심하다. 선거운동판도 그랬고 투표 결과가 나오고도 맹맹할 뿐이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칼 찬 아이들이 길바닥으로 뛰쳐나오고 짱돌이 날아다니고, 자동차도 몇 대쯤은 불타고 구급차가 시끄럽게 돌아다녀야, 그게 딜리다. 1992년부터 동티모르를 취재해온 내 기억엔 그렇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걸 ‘평화’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길 한 모퉁이에 묶여 바구니풀을 씹는 사슴만 억울하다.
온 천지가 불 탈 때도 없었던 공기
다 좋은데, 공기가 자유롭지 않다. 공화국 독립 전인 1993년 산타크루즈 공동묘지 앞에서 인도네시아 군인들한테 체포당했을 때도, 1999년 국민투표 뒤 반독립파 민병대가 온 천지를 불지를 때도, 2006년 반란군이 나라를 뒤흔들 때도 공기는 지금 같지 않았다.
자유 없는 평화를 상상해본다. 시민이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있고, 전직 총리와 전직 대통령마저 몸을 사리는 이야기가 있고, 외신기자가 건드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우린 그런 사회를 자유롭다고 부른 적이 없다.
샤나나 구스망 총리 정부 5년이 남긴 자국이다. 그이는 말끝마다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그이를 두려워한다. 그이는 언론과 담을 쌓았고, 언론도 입을 닫은 지 오래다. 현 샤나나 연립정부 파트너인 민주당(PD) 대표 프란시스코 데 아라우요는 “이 정부엔 구스망밖에 없고, 구스망 명령만으로 굴러가는 정부다”라고 했다.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 정치 용어로 ‘독재’라고 한다. 구스망은 경제개발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가 없고 먹고살기 힘들다.
2002년 독립 첫해 정부 예산 6300만달러가 지금 17억달러로 늘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실업률이 40% 웃돌고,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60%에 이른다. 루카스 다 코스타 평화대학(UNPAZ) 총장은 “경제 없다. 왜곡뿐이다. 정부 예산 95%가 석유·가스 판 돈이고, 예산 대비 세수가 기껏 35%다. 이 땅에 고도성장은 부정부패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 87%가 농사짓는 나라에서 총리란 자가 “돈이 외국으로 다 날아가버렸다”고 떠들어대도, 누구 하나 삿대질마저 못한다. 이건 국부 유출이란 뜻이고, 정상적인 사회라면 즉각 총리 탄핵감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사람들이 적어도 5년은 더 구스망을 보고 살아야 할 판이니.
이쯤에서 귀담아들어볼 대목이 하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나마 속 편하게 살려면 구스망을 찍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 밴 말을 쏟아냈다. 현지 기자 말리 세자르는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구스망은 또 어떻게든 권력을 잡을 거다. 그러니 그이를 찍어주고 아예 분란 없이 가자는 뜻”이라 풀이했다. 신생 공화국 10년 동안 한 정치인의 끝없는 권력욕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해석한 민주주의란 건, 그렇게 체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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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망이 외쳐온 내일, 말할 수 없는 어제
구스망은 죽어라고 ‘내일’만을 외쳐왔다. 사람들은 ‘어제’를 말하기 꺼린다. 왜? 이 의문에 답하지 않고는 공화국 오늘을 읽을 수 없다. 두 눈 빤히 뜬 채 날치기당한 공화국 10년사가 담긴 까닭이다. 여기에 구스망이 연출한 정치극 두 마당이 숨어 있다.
#첫째 마당- ‘얼굴 없는 2006년’
2006년 2월 초부터 정부군 1200명 가운데 서부 출신 군인 581명이 동서 차별 반대를 외치며 탈영했다. 그해 3월23일, 탈영병 복귀와 사회 안정을 호소해야 할 대통령 구스망은 방송 연설을 통해 오히려 마리 알카티리 총리 정부를 ‘부패한 정권’이라 몰아붙였다. 그 연설이 끝나자마자 정체불명 젊은이들이 딜리 도심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탈영병들은 정권 퇴진을 외쳐댔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4월 말, 탈영병들이 딜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정부군과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겁에 질린 시민 2만여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5월 들어 헌병 소령 알프레도 레이나도가 부하 20명을 끌고 탈영병 대열에 합류해 알카티리 정부 해산을 요구하자 정치판으로 불길이 옮겨붙었다. 5월30일, 대통령 구스망은 알카티리 정부의 거센 반대를 뿌리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과정에서 폭동을 부추긴 이와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가 같은 인물이라며, 위헌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같은 날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이 ‘정치적 음모’라고 비난하며 사퇴했다. 구스망은 곧장 조제 하무스 오르타 외무장관에게 국방장관 자리까지 덧붙여주었다. 이때부터 구스망은 대통령이 군 최고사령관이라는 헌법의 명목상 구절을 이용해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며, 공화국 첫 합법 정부 총리인 알카티리 축출에 시동을 걸었다. 구스망은 대통령의 정치 개입을 금지한 헌법을 짓밟은 채 스스로 정치 혼란의 중심에 섰다.
여기서 동티모르 출신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자로 계약직 군인인 레이나도 소령과 구스망 관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5월29일, 구스망은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반란군 지도자 레이나도에게 대통령 문양이 찍힌 편지지에 포르투갈어로 쓰고 서명까지 한 편지를 보냈다. 구스망이 국가평의회를 열어 비상사태 선포를 놓고 격론을 벌인 날이기도 하다.
‘레이나도 소령, 좋은 아침이오. 우린 이미 오스트레일리아군과 손잡았으니, 당신은 아이레우(반군 거점)에 머무시오. 모두를 껴안으며. 샤나나 구수망.’1)
대통령이 범법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이상하지만, 대통령이 투항을 명령해야 할 반란군 수괴에게 상황을 알려주며 행동지침까지 내렸다.
반군 숙박비 지불하고 비상사태 선포하고
6월1일 반란군 산악 거점에서 과 만난 레이나도는 “알카티리 정부 퇴진이 목표다. 나는 대통령 명령만 따른다. 샤나나에게 전권을 줘야 복귀한다”고 또렷이 밝혔다.2) 한편 (PNN)는 레이나도와 반란군들이 비사우에 묵은 숙박비를 구스망과 그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아내 크리스티 스워드가 대신 지불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모두 구스망과 레이나도의 특수한 관계를 증명하는 보도들이었다. 6월2일, 정국 위기가 극으로 치닫던 날 알카티리 총리는 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 “나라 안팎 세력들이 꾸민 쿠데타”로 규정했다.3)
그 무렵 알카티리의 자주적 외교노선을 비난해온 오스트레일리아 언론들은 매일같이 알카티리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치며 퇴진을 요구했다. 특히 6월19일 오스트레일리아
6월22일, 구스망은 방송 연설을 통해 “내일까지 알카티리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대통령을 그만두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6월23일, 알카티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구스망도 물러나지 않았다. 구스망은 집 앞으로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물러나지 않겠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동티모르 헌법 어디를 훑어봐도 대통령이 총리 사임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코미디가 이어졌다.
6월25일 집권당인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이 알카티리를 재신임하자, 하무스 오르타 외무장관 겸 국방장관이 사임 성명서만 남긴 채 사라졌다. 하루 뒤인 6월26일, 알카티리가 사임하자 하무스 오르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잽싸게 다시 나타났다. 7월8일, 구스망은 하무스 오르타를 총리 자리에 앉혔다. 대통령 구스망은 그렇게 반란군을 끼고 정치 혼란을 부추겨, 법적 근거도 없이 총리를 쫓아내고 스스로 권력을 잡았다. 이걸 달리 부를 마땅한 정치 용어가 없다. 쿠데타였다.
구스망이 알카티리를 쫓아내고 한 달 만인 7월26일, 그사이 산에서 내려와 오스트레일리아 병영과 마주 보는 집에 살고 있던 레이나도가 체포당했다. 그러나 레이나도는 한 달 만인 8월30일, 오스트레일리아군 관할지역인 베코라형무소에서 수감자 57명을 데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탈옥한 레이나도는 방송 인터뷰까지 하고 다녔지만, 정부는 그이를 체포하지 않았다.
PNN은 반란군들이 비사우에 묵은 숙박비를 구스망과 그의 아내 크리스티 스워드가 대신 지불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모두 구스망과 레이나도의 특수한 관계를 증명하는 보도들이었다.
하무스 오르타와 구스망, 대통령 주고 총리 받고
2007년 5월9일 대통령 결선투표, 앞선 4월9일 선거에서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후보 프란시스코 구테레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하무스 오르타가 구스망의 전폭적인 지원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의 부정 개입 논란 속에 승리했다. 이어진 6월30일 총선, 구스망은 티모르재건국민회의란 당을 만들어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18석을 얻어 21석을 차지한 알카티리의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에 이어 제2당이 되었다. 과반을 얻지 못한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이 연립정부 구성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8월6일 하무스 오르타는 제2당인 티모르재건국민회의에 연립정부 구성권을 넘겼다. 또 이틀 뒤인 8월8일 티모르독립혁명전선의 반대를 무시한 채 구스망을 총리로 임명했다. ‘총리는 의회에서 정당들이 협의를 거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을 짓밟은 하무스 오르타의 결정을 통해 결국 첫째 마당 ‘얼굴 없는 2006년’은 1년 만에 구스망-하무스 오르타 조에게 승리를 안겨주며 막을 내렸다. 대선과 총선에서 패했던 하무스 오르타와 구스망은 민주제도의 이름 아래 권력을 나눠 가졌다. 그리고 공화국에는 극우연립정권이 등장했다.
#둘째 마당- ‘대답 없는 2008년’
2008년 2월11일, 대통령 하무스 오르타와 총리 구스망이 1시간 시차를 두고 저격당했다. 하무스 오르타는 가슴과 배에 두 발을 맞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실려갔다. 구스망이 타고 가던 자동차에 14발이나 총격이 가해졌지만 무사했다. 구스망 정부는 조사도 수사도 없이 곧장 레이나도를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레이나도는 하무스 오르타가 저격당하기 30~60분 전 이미 살해당한 뒤였다. 이처럼 정부는 초동 단계에서부터 의혹만 키우더니, 1년도 더 지난 2009년 7월13일 관련자 28명을 딜리주 법정에 세웠다.
최종 판결은 그로부터 또 1년 뒤인 2008년 6월14일 나왔다. 주범으로 꼽은 가스타오 살신하 중위를 비롯한 24명에게 1년에서 16년형을 때렸다. 암살 배후 조종자로 기소했던 레이나도의 연인 안젤리타 피레스(상자 기사 참조)를 비롯한 나머지 4명은 무죄 석방했다. 이어 두어 달 뒤인 8월20일 하무스 오르타는 명확지 않은 이유로 1명을 제외한 모든 관련자를 사면함으로써 사건을 영원히 어둠 속에 파묻고 말았다. 이 사건 재판을 쫓아온 루이스 데 올리베이라 사법제도감시프로그램(JSMP) 대표는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부터 증거 불충분과 소설식 논리가 난무했다”며 혀를 찼다. 그랬다. 누가, 왜 대통령과 총리를 쏘았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끝났다.
대답보다 의문이 많은 사건, 그 의문들이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다. 먼저 하무스 오르타 쪽부터 보자. 범인은 매일 아침 경호원 둘만 달고 바닷가를 달리는 대통령을 두고 왜 굳이 오스트레일리아군 병영과 중무장 경호원들이 도사린 대통령 집을 타격 지점으로 삼았을까? 대통령이 총 맞기 30~60분 전에 살해당한 레이나도가 어떻게 대통령을 쏘았을까? 하무스 오르타는 과 한 인터뷰(22~23쪽 기사 참조)에서 “결코 그이를 부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누가 레이나도를 불렀을까? 대통령 집 경호대는 왜 레이나도 살해 소식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까? 실질적으로 대통령 집 경호 책임을 맡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총소리를 듣고도 왜 즉각 출동하지 않았을까? 동티모르군이 사용하지 않는 총알이 레이나도 부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문들을 모아보면 분명해진다. 대통령보다 더 힘이 센 ‘누군가’가 있었다는 증거다. 누구였을까? 하무스 오르타는 이번 인터뷰에서 레이나도가 절대 자신을 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미끼로 던진 사람이 살해당하다
의문들을 모아보면 분명해진다. 대통령보다 더 힘이 센 ‘누군가’가 있었다는 증거다. 누구였을까? 하무스 오르타는 이번 7월2일 인터뷰에서 레이나도가 절대 자신을 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안젤리타 피레스도 “레이나도가 믿었던 유일한 인물이 하무스 오르타였다”고 증언했다.
구스망 쪽도 의문투성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총을 맞고 1시간쯤 뒤, “또 다른 반군 지도자 가스타오 살신하 중위가 한갓진 길을 달리던 구스망 총리 자동차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반군 지도자가 대통령 집에서 피살당했다는데 총리란 자가 과연 몰라서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일까? 대통령이 피격당한 국가 비상사태에서 총리가 경호대도 없이 한갓진 길을 달렸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보통 때도 구스망은 줄줄이 경호대를 달고 다닌다. 총리 자동차에 총탄 14발이 박혔다는데 총리 일행 4명이 모두 무사했다는 것도 의문이다. 이건 법정에서도 탈났던 대표적인 대목이다. 정부가 밝힌 살신하 중위 그룹이 있던 지점과 총알이 날아와 총리 자동차를 때린 지점이 정반대쪽이었기 때문이다. 총리 저격사건은 아예 조작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결국 이 두 암살 기도 사건을 푸는 열쇠는 구스망과 레이나도 관계, 그리고 구스망과 하무스 오르타 관계에 숨어 있는 셈이다. 2007년 정권을 잡은 구스망에게 레이나도는 유효기간이 끝난 멍에였다. 그해 12월 구스망은 레이나도에게 투항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둘 사이의 거래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흥정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2008년 1월 레이나도는 “구스망이 우리를 만들어낸 작가고 배후다”라며 폭로용 DVD를 뿌리며 강력히 저항했다. 그러자 하무스 오르타가 중재에 나섰고, ‘구속 뒤 5월20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사면한다’는 조건으로 레이나도가 투항에 합의했다.
그사이 민심이 크게 흔들리자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은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암살 기도 사흘 전인 2월9일, 하무스 오르타는 구스망과 알카티리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조기 총선 수용 뜻을 밝혔다. 그 자리에서 구스망은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심을 잃은 구스망에게 조기 총선은 정치적 사망선고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구스망에게 하무스 오르타는 더 이상 어제의 동업자가 아니었다. 알카티리를 쫓아내고자 공동전선을 펼쳤던 구스망과 하무스 오르타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 ‘1인자가 둘일 수 없다’는 권력 본질을 깨달았고, 정치력 시험무대인 반란군 문제 해결을 놓고 레이나도와 개별 협상을 벌이며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흘 뒤 대통령과 총리를 동시 타격 대상으로 삼은 희한한 사건이 터졌다.
결국 정치극 두 마당을 통해 구스망은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 첫째 마당에서 레이나도를 미끼로 던져 권력을 잡은 뒤, 둘째 마당에서 그 레이나도가 사라짐으로써 입막음까지 끝냈다. 게다가 구스망은, 첫째 마당에서 동업자로 함께 권력을 쥐었지만 곧 경쟁자로 변한 하무스 오르타가 둘째 마당에서 총상 끝에 기가 한풀 꺾임으로써 독주 체제를 갖췄다.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고 떠나자”
그러나 공화국의 정치극이 끝났다고 믿는 이들은 아직 없다. 동티모르 독립혁명 투쟁사를 관통해온 배반과 분열의 전통이 여전히 공화국에 드리워져 있는 까닭이다. 이쯤에서 “마지막 남은 ‘74세대’(1974년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창설자인 알카티리와 하무스 오르타)와 ‘75세대’(1975년 가입한 구스망)가 젊은 세대에게 정치판을 물려주고 떠나자”는 알카티리의 제의를 깊이 음미해볼 때가 되었다. 구스망이 독립투쟁 영웅으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공화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는 시민에게 자유로운 공기를 되돌려주는 일이다.
1) ‘대통령의 남자’(The President’s Man), 존 마틴커스(John Martinkus), (New Matilda) 2009년 9월2일치
2) 알프레도 레이나도 인터뷰, 정문태, 2006년 6월14일치
3) 마리 알키티리 인터뷰, 정문태, 2006년 6월14일치
알프레도의 애인 안젤리타 인터뷰
이 여자, 잘못 건드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다. 모든 사건 조작에는 배후가 있어야 완성도가 나오니까.
2008년 2월11일, 조제 하무스 오르타 대통령과 샤나나 구스망 총리 암살 기도 사건이 터지며 한 여인이 등장했다. 변호사 준비를 하고 있던 동티모르 출신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자 안젤리타 피레스(46)가 그 주인공이다. 피레스는 ‘배후 조종자’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췄다. 잘 교육받은데다 이중국적자(합법)이며, 그 아버지가 구스망의 정적인 마리 알카티리와 가까웠던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이는 반란군 지도자 알프레도 레이나도의 연인이었다. 검찰은 그런 피레스를 암살극의 배후 조종자로 기소했으나, 딜리 법정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해 일이 다 꼬이고 말았다.
속에 맺힌 게 많은 듯 말문이 터진 피레스는 2시간 넘게 멈출 줄 몰랐다. 그이는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게 내 인생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애초부터 “자신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믿었던 알프레도를 반란을 일으킨 범법자라며 투항시키려고 애쓴 게 나였다”고 주장했다. 그이가 알프레도에게 투항을 다그친 건 “누군가에게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결국 살해당하리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고도 했다. ‘정부가 당신을 배후 조종자로 몰았던 까닭을 생각해봤느냐’는 물음에, 그이는 작심한 듯 “마녀사냥이다. 내가 약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를 스파이라고도 했다. 근데 이 나라에 진짜 마타하리는 구스망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아내 크리스티다”라고 내질렀다.
피레스는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다. 물론 떨어졌다. 법정에서 자신을 홀대한 ‘하무스 오르타에 대한 복수냐’고 떠보았더니,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 총선에도 티모르저항국민통일(UNDERTIM) 부대표로 뛰었다. 또 떨어졌다. 한마디로 당찬 여인이었다. 구스망 정부가 잘못 건드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이는 “기소당한 상태에서 알프레도의 아기마저 유산했다”고 담담히 말하며, “내가 제출한 증거를 법정이 단 1건도 채택해주지 않았지만 알프레도와 나의 진실을 밝혀줄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다”며 들고 온 자료들을 일일이 보여주었다. 구스망과 알프레도가 주고받은 편지며, 알프레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며, 대외비가 찍힌 부검 소견서와 온갖 공판용 자료까지 쏟아져나왔다. 그이는 책 쓸 준비를 해왔지만 “구스망이 있는 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무스 오르타와 똑같은 말이었다. 딜리는 아직도 공포에 질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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