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에서 <소름>까지, 공포영화에서 관찰되는 공포의 변화양상
‘뼈마디마다 사무친 한을 풀기 위해 밤마다 들려오는 귀곡성의 비밀’, ‘악마의 화신이 당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뜬다’, ‘견딜 수 있겠는가?’
시대별로 변해온 공포영화 홍보 카피는 우리의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변천사를 감지하게 한다. 다분히 코믹하게까지 들리는 72년 개봉작 <며느리의 한>의 카피는 밤길 조심하라는 고전적인 경고를 하지만, 84년 개봉한 <나이트 메어>의 카피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다”고 좀더 위협적인 경고를 한다. 마지막의 98년작 <스크림2>의 경고는 바로 옆자리에서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하다. 이처럼 공포는 점점 더 가까이,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온다.
“누가 괴물이 됐는가”라는 코드
공포를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인간의 상반된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공포영화다. 공포영화의 뿌리에는 공포문학이 있다. 19세기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윌리엄 스토커의 <드라큘라> 등 이제는 고전이 된 공포문학은 20세기 대중의 놀이가 된 영화를 통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며 다양한 후손들을 잉태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문학이건 영화이건 공포의 대상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어떠한 심오한 예술작품보다 한 사회와 개인이 품고 있는 무의식적 불안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왔다는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문학이 분열된 사회의 공포감으로부터, 그리고 이 두려움을 치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누더기 차림의 프랑켄슈타인은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열하는 19세기 사회에서 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노동자 계급을 상징한다. 드라큘라는 성이 억압된 빅토리아조 시대의 리비도, 즉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여성의 목을 깨문다거나, 공격받은 여성들이 모두 감각적으로 변한다는 내용은 꽁꽁 묶여 있던 성적 욕망이 풀리기 시작한 사회의 불안감에 대한 은유다. 이런 괴물들은 결국 처벌당함으로써 불확실하게 된 사회의 통합, 무엇보다 흔들리는 가족제도에 대한 결속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193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공포영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리학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는 “공포영화에서 누가 또는 무엇이 괴물이 되는가는 그 사회가 억압하는 본원적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한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 초기 공포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던 괴물이 50년대 외계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심씨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냉전의 이 시기에 공산주의와 핵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의 가장 큰 위협이었다. 이때 등장한 공포영화들은 돈 시겔 감독의 <신체강탈자의 침입> 등 SF와 호러의 복합물이 많았다. <신체강탈자의 침입>에서 지구에 침투한 외계인들은 지구인으로 자기복제를 하면서 복제의 대상이 된 인간들을 죽인다. 미국과 자유주의 진영이 생각하기에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와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공포가 외계인의 지구 침입 위협이라는 형태로 투사된 것이다.
“공포영화란 집단적 악몽”
60∼70년대는 공포영화의 전성기라고 불릴 만큼 많은 공포영화가 쏟아져 나왔던 시기다. 이 시기는 반전운동, 인종차별운동, 여성주의 운동 등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도덕률을 흔드는 저항의 기운이 가득했던 시대로 기록된다. 60∼70년대 등장했던 공포영화의 사회문화적 코드를 세밀하게 분석했던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이 시기에 공포영화가 쏟아져 나온 이유를, 일부일처 이성애적 부르주아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정상성(Normality)’이 위기에 처한 탓으로 해석했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가치관들의 전면적인 붕괴에 직면한 이 시대에 위협은 외부에서 내부의 타자로 전이된다. 여성이나 어린이 또는 유색인종의 인간으로 공포의 대상이 전치된 것이다. 이때부터 좀비영화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엄마를 뜯어먹는 아이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에서 악마로 잉태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70년대까지 유행한 이른바 오컬트영화(악령 등 초자연적인 힘을 다룬 공포영화)에서 악마의 현신은 대부분 어린아이이거나 소녀들이었다. 70년대 말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을 시작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난도질영화 속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10대의 청소년들이었다. 10대들의 성도덕이 개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이 시절, 구체적 인간으로 등장하는 괴물은 겁없이 섹스를 즐기는 10대들에 대한 가차없는 응징을 가했다.
풍요의 시대, 공포의 팬시화
30∼50년대 공포영화와 60∼70년대 공포영화를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은 악의 소멸시효다. 초창기 공포영화의 결론에서 괴물은 반드시 처벌된다. 그러나 60∼70년대 공포영화에서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에서 부활을 암시하는 괴물은 단순히 속편제작에 대한 영화사의 강한 의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악의 오염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른바 정상성이라는 토대는 더이상 굳건하지 않다는 생각이 공포영화의 기저에 깊숙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영화분석에서서 로빈 우드는 “괴물은 정상성의 검은 망령”이라고 지적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예처럼 귀물과 정상성의 관계는 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두 가지 모습인 것이다. 억압된 소망이 (정상적 관점에서 볼 때) 너무 끔찍해서 그것을 몹시 메스꺼운 것으로 부정해야 할 때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영화란 한 사회의 “집단적 악몽”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성년 시기의 성욕, 동성애,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에 대한 가해욕구 등 금지된 욕망을 공포영화의 괴물에 투사시킴으로써 관객은 가장 원초적인 쾌감을 맛보는 것이다.
불안과 일탈, 퇴폐가 정리되고 다시 모든 이가 풍요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 80년대에 당연하게도 시들해졌던 공포영화제작이 다시 불붙은 건 90년대 중반이다. 3∼4년간의 반짝 인기로 끝나기는 했지만 <스크림>이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 시리즈로 제작된 90년대 공포영화의 주요 관객은 70년대 말 <할로윈>이나 <나이트 메어>처럼 10대였지만 관객의 반응은 달라졌다. 스크린을 통해 억압된 욕망과 그에 대한 부정이 뒤얽힌 “집단적 악몽”을 꾸었던 관객은 마치 경쾌한 코미디나 트렌드영화를 보듯 공포영화를 즐기게 된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엽기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크린을 붉게 물들이는 난도질은 이제 억압된 욕망의 거세라는 심각한 해석이 필요없는 유희가 됐다. 얼마 전 서울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공포영화들의 캐릭터를 모아 전시했던 ‘엽기전’에서 인기를 모았던 캐릭터들은 누르면 피가 솟구치는 가면 등 끔찍한 모형들이었다는 백화점쪽의 설명은, 공포가 하나의 팬시현상으로 변한 요즘 세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공포는 사라진 것일까. 최근 개봉한 국내영화 <소름>과 <세이 예스>에서 괴물은 아무도 괴물임을 인지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두 작품의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공포와 죽음의 그림자는 아무런 인과의 고리없이 우리의 삶 속에 불쑥 찾아온다는 것이다. 괴물은 바로 옆집 청년이거나 우연히 차를 태워준 사람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는 폭력적 욕망이기도 하다. 일상에 만연한 공포, 어느날 갑지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는 친구 또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 우리는 피칠갑한 인형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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