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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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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넘쳐나는 부가 서민에게 흐르지 않는다

10대 기업 주력사 분석 결과, 3년간 매출액·영업이익 50~60% 늘어도 고용·투자·세금 등 국가경제 기여도는 낮아져…
대기업의 성장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적하효과’ 없어도 ‘부자감세’ 지속하는 MB정부
등록 2011-04-14 16:41 수정 2020-05-03 04:26

‘글로벌 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헤쳐나온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꼽는다면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 위기 극복의 ‘1등 공신’은 과연 누구일까?

대기업 총수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일반 기업을 회원사로 둔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경제단체들은 주저 없이 “한국의 대기업들”이라고 외칠 것이다. ‘대기업 1등 공신론’의 가장 큰 근거는 그들의 화려한 경영실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은 2009년 하반기 이후 1년6개월 동안 사상 최대 실적 경신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 경제 위기 극복의 견인차가 됐던 수출에서도 대기업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매출액 50% 늘어도 고용은 6.9% 늘어

“대기업의 넘쳐나는 부가 서민들에게까지 흘러넘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대기업을 도와줘 먼저 성장을 이루게 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 전략을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이는 대기업 위주 성장 전략의 이론적 토대가 됐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규제 완화의 명분이 됐다. 하지만 전체 기업체 수의 99%를 넘는 중소기업의 회복세는 여전히 미미하고, 일반 국민도 경제 회복을 체감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이 자산 기준 상위 10대 그룹인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현대중공업·GS·한진·한화를 대상으로 주력회사 1곳씩 10개 대기업을 선정해 2007~2010년 4개년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개별 기준)를 분석한 결과, 고용·투자·세금·협력사 거래 등과 관련된 기업들의 국가경제 기여도가 모두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대기업의 적하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는데, 이런 분석 결과는 적하효과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구체적이고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MB 정부의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과 성장전략에 대해 대대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분석 대상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SKT, LG전자, 롯데쇼핑, 포스코, 현대중공업, GS칼텍스, 대한항공, (주)한화 등 사실상 각 그룹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10개사의 전체 매출은 2007년 206조3천억원에서 2010년 309조원으로 3년간 50%(102조6천억원)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매출액이 3년동안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10개 대기업의 영업이익도 지난 3년간 19조원에서 31조1천억원으로 63%(12조원)나 급증했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10%를 넘는 곳도 SKT(16.3%), 포스코(15.5%), 현대중공업(15.4%), 삼성전자(13.3%) 등 4곳에 달한다.

하지만 화려한 경영실적과 달리 대기업들의 고용 성적표는 기대 이하로 나타났다. 10개 대기업의 전체 종업원 수는 지난해 말 현재 26만3404명으로 3년 전의 24만6312명에서 6.9%(1만7092명) 늘었다. 그러나 매출액 10억원당 고용 인원을 보여주는 ‘고용유발계수’는 평균 1.08명에서 0.84명으로 오히려 크게 줄었다. 회사가 매출과 이익 증가로 성장한 것만큼 고용이 늘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고용유발계수는 일시적으로 악화된 게 아니라 지난 3년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대기업의 ‘고용 기피형 성장전략’이 고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3년간 고용유발계수가 증가한 대기업은 단 1곳도 없다.

총급여·투자액 비율 오히려 줄어

» 지난 1월24일 서울 여의도 KT 사옥에서 열린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기업 대표로 나서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수출을 많이 늘려서 경제 활력을 높이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회장 오른쪽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왼쪽으로는 최태원 SK 회장이 보인다.

» 지난 1월24일 서울 여의도 KT 사옥에서 열린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기업 대표로 나서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수출을 많이 늘려서 경제 활력을 높이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회장 오른쪽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왼쪽으로는 최태원 SK 회장이 보인다.

회사별 고용유발계수는 현대차가 1.53명으로 가장 크고, 대한항공(1.5명), LG전자(1.13명) 순이다. 반면 고용유발계수가 가장 작은 기업은 GS칼텍스로 0.10명에 불과해, 현대차와 비교하면 15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그다음은 SKT 0.35명, 포스코 0.5명이다. 절대 고용 규모 기준으로는 10개 기업 중 7곳이 지난 3년간 종업원 수가 증가했다. 고용증가율은 한화가 18.9%로 가장 높고 롯데쇼핑(15.6%), 대한항공(15.2%), 삼성전자(12.9%) 순이다. 반면 포스코, 현대중공업, SKT 3곳은 고용 규모를 2.7~5.3씩 줄였다. 대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대폭 감소한 이유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사내하청 포함)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종업원에 대한 총급여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롯데쇼핑과 GS칼텍스를 제외한 8개 대기업의 평균 총급여 비중은 2007년 7.57%에서 2010년 6.57%로 하락했다. 이 역시 2008년을 제외하면 매년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 종업원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급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회사의 빠른 성장세에 급여 증가세가 따라가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총급여 비중이 높아진 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현대차는 총급여 비중이 지난해 12.2%로 가장 높다. 그다음은 대한항공(9.5%), 현대중공업(7.9%) 순이다.

10개 대기업의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를 합친 전체 투자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10.8%에서 2010년 8.8%로 하락했다. 투자 비중 하락도 특정 시점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3년간 지속적으로 일어나, 기업들의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 역시 만성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년간 투자 비중이 높아진 곳은 포스코와 한화 2곳뿐이다. 나머지 8개 기업은 모두 하락했다. 투자 비중이 가장 많이 하락한 곳은 현대중공업이고, 그다음은 GS칼텍스, 롯데쇼핑, 삼성전자 순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전자(19.4%)이고, 그다음은 SKT(17.8%), 포스코(14.7%), 대한항공(9.1%)이다.

MB 정부는 집권 이후 3년간 대기업을 향해 고용과 투자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전경련은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전경련은 올해도 30대 그룹의 투자가 지난해보다 12.2% 늘어난 113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고, 총근로자 수도 101만7천 명으로 5.5% 증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실적은 전경련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에 떨어지는 몫은 오히려 줄어

대기업은 고용과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MB 정부의 감세정책 혜택은 톡톡히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기업을 제외한 대기업들의 평균 유효세율은 2007년 22.4%에서 2010년 16.8%로 5.6%포인트나 대폭 하락했다. 유효세율은 기업들이 낸 법인세를 세전순이익으로 나눠 실제 부담하는 세금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법인세는 기업들이 세무서에 실제로 납부한 법인세 부담액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 중 하나로 꼽혀왔다.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대표적인 유형은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납품 단가 미반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하도급거래를 하면서 중소기업이 느끼는 어려움으로 ‘납품단가 인하’와 ‘원자재 가격 상승분 납품단가에 미반영’을 꼽은 응답률이 각각 55.1와 50%로 1·2위를 차지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대기업의 원재료 매입액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중소기업과 하도급거래가 활발한 현대차·삼성전자·현대중공업 3개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액 대비 원재료 매입액 비중을 살펴보면, 평균 매입액 비중이 2007년 56.4%에서 2010년 52.4%로 하락했다. 자동차·전자·조선공업은 원재료 매입액의 상당 부분을 부품 구입비가 차지한다. 현대차의 경우 전체 원재료 매입액 중에서 부품 구입비 비중이 80~85%에 달한다. 부품 구입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재료 매입액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대기업이 원가절감을 내세워 협력사에 대한 납품단가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리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 경제학자는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기업의 매출이익 증가가 비용 삭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비용 삭감의 대부분은 재료비 삭감이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1960∼70년대 경제발전 초기만 해도 적하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나라로 손꼽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적하효과가 약화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집권 초기 적하효과를 강조한 MB 정부도 지난해 이후 ‘경제 양극화’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대기업들의 경제기여도 약화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대기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높은 환율과 낮은 금리, 세율 인하 혜택을 누렸다. 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경제력 집중 완화와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 훼손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민 주머니 털어서 대기업에 몰아 줬지만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 실적이 미흡하고, 중소기업과의 공정한 하도급거래나 물가 안정 노력 등 사회적 책임 부문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환율 높았지, 금리 낮았지, 세금까지 깎아줬으니, 대통령이 사실 수출하는 대기업들에는 현금을 갖다 안겨준 꼴”이라면서 “그렇게 번 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투자나 고용 등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 스스로도 적하효과가 사라졌음을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MB 정부가 지난해부터 ‘친서민’ ‘공정사회’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의 잇단 세무조사, 정유사에 대한 기름값 인하 압력, 공정위의 정유사와 이동통신사에 대한 조사 등을 정부의 이런 불편한 심기를 반영하는 조처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적하효과에 대한 약발도 떨어지는데 계속 대기업에 높은 환율, 낮은 금리, 적은 세금 등 특혜를 주는 경제정책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민주당의 박선숙 의원(정무위원회 소속)은 “정부가 고환율을 유지한 것이 대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가 지는 것 아니냐”며,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성장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은 국가경제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경제구조를 왜곡하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최근 유럽의 한 기관이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난 한국 기업의 경쟁력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방한했다. 그들은 결론적으로 ‘고환율 정책’ ‘비정규직’ ‘하도급거래’ 세 가지를 비결로 꼽으면서, 자신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한 경제학자는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 비정규직 양산,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선진국에서 용납되지 않는 것”이라면서 “국내 대기업이 경쟁력을 얻는 3대 요인은 내수시장 발전과 근로자 고용 안정, 중소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고, 적하효과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MB 정부 들어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특히 상위 거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도가 더욱 심화되는 것은 고환율 등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경제정책 시행과 함께 2009년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재벌 규제 완화 정책의 효과”라며 “대기업 위주 정책을 중소기업 육성 정책으로 전환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맹목적인 규제 완화를 재정비해 재벌에 대한 규율의 공백 상태를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법인세율 2% 인하?

최근 MB 정부가 ‘공정사회’라는 구호 아래 재벌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를 위해 세법 개정 방침을 밝히고, 국회에서도 회사기회유용 금지(상법 개정)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하도급거래법)를 도입한 것은 친재벌 일변도의 경제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MB 정부가 친대기업 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4월6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기업환경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2억원 초과분에 대한 법인세 세율을 22%에서 20%로 인하하기로 한 기존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010년부터 추가 인하하기로 했으나, 국회에서 논란 끝에 시행을 2011년까지 유보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대표적인 친기업 정책으로 지목되는 ‘부자 감세’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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