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 안 나오면 집니다. 한나라당은 김태호(전 경남지사)가 나온다 안 캅니까. 아무리 여가 노무현 대통령 고향이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캐도 아직은 한나라당 텃밭이라고 봐야지예. 지난번에 김맹곤 시장(민주당 소속) 됐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나라당 후보들끼리 싸워서 그래 된 기그든예.”
“아무리 친노라 해도 어렵다”
2월17일 오후 1시30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만난 한 40대 직장인은 언론에서 말하는 이 지역의 ‘친노 강세’ 전망이 비현실적이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직장이 봉하마을 근처 본산공단에 있는 그는, 점심 식사를 한 뒤 동료 직원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길이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 떨어졌을 때 속이 뒤집힙디다. 그래서 노사모 됐다 아입니꺼”라며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보선 전망은 밝게 보지 않았다. “김경수(봉하재단 사무국장)씨가 불출마 선언했다고 카데예. 안 나가길 잘했지. 이 지역 분도 아니고, 최철국이 비리로 배지 떨어지면서 민주당 좋게 안 봅니더. 이봉수(국민참여당 후보)씨는 벌써 선거 몇 번째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인지도가 낮지예. 한나라당에서 김태호 나오면, 문재인 정도 되는 사람 말고는 아무리 친노라 해도 어렵다고 봐야 됩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친노 진영이 김해을 재보선 후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게 다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비가 내려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대구에서, 전주에서, 서울에서 이 시골 마을까지 찾아와 노 전 대통령을 참배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허상이라는 얘기인가.
<font color="#C21A8D">재밌는 건 야당 예비후보들이 선거운동을 ‘노무현’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친노 정당’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는 선거사무소 바깥벽에 ‘노무현 정신 계승’이라고 쓴 커다란 펼침막을 내걸었고, 김근태 민주노동당 후보까지 “노무현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건 민주노동당의 정강·정책”이라고 말할 정도다.</font>
현재 김해을 지역구의 예비후보는 한나라당 6명, 민주당 3명, 민주노동당 1명 등 12명이다. 한나라당은 ‘영남 탈환’, 민주당은 ‘영남 개혁벨트 고수’,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신 계승으로 원내 정당화’, 민주노동당은 ‘영남 진보벨트 완성’ 등 제각각 선거 승리가 중요한 이유가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원내 제1·2정당은 ‘거물급’ 또는 ‘친노 주자’ 영입에 공을 들이는 반면, 예비후보들은 ‘낙하산 공천’에 반대한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지난 지방선거 때 한 ‘다음 재보선 때 양보’라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재밌는 건 야당 예비후보들이 선거운동을 ‘노무현’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친노 정당’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는 선거사무소 바깥벽에 ‘노무현 정신 계승’이라고 쓴 커다란 펼침막을 내걸었고, 김근태 민주노동당 후보까지 “노무현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건 민주노동당의 정강·정책”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역 발전 vs 친노 정서
이날 오후 늦게 진영 읍내에서 만난 이들도 야당 후보에게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영업자인 박아무개(47)씨의 말은 이랬다. “지방선거 때 김두관(경남지사) 찍은 사람들도 욕합니다. (친노·야당 후보를) 도지사 시켜놓으니까 맨날 정부하고 싸움만 하지, 하는 건 없잖아예. 동남권 신공항, 진주 혁신도시 전부 안 되는 게 김두관이 잘못해서 그런 거 아입니꺼. 국회의원이 여당이 돼서 힘이 있어야 지역에 먹을 것도 떨어지지예.” ‘지역 발전’이라는 문제 때문에 친노·야당 인사에게 걸었던 기대를 접었다는 얘기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유아용품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0)씨는 “김태호가 젊은 사람이 지사 할 때 잘했그든예. 사람은 누구든지 캐다 보면 단점 없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는 그런 거 속속들이 알 필요도 없다 아입니꺼. 저번에 (총리 후보자 때) 서울 올라가서 가정사에 돈 관계, 뭐 그런 사생활 갖고 뭐라 하던데 우리는 그렇게 캐는 거 별로 좋게 안 봅니더. 경제 잘 돌아가게 해서 장사 잘되면 좋은 기지예.”
유권자가 18만여 명인 김해을은 장유면 등 신도시 개발로 부산·창원 등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30~40대 유권자가 절반을 넘는다. 그런 탓인지 지난 총선 때 최철국 민주당 의원은 47.4%의 득표율로 45.2%를 얻은 송은복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봉하마을이 있는 진영읍에선 53.3%를 득표했다. 반면 비례대표 득표에서는 한나라당이 37.4%, 민주당이 23.5%, 민주노동당이 8.4%를 얻었다. ‘노무현 바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역색 역시 공고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지난 지방선거 김해을 지역의 개표 결과를 보면, 노풍과 야권 연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이 확인된다. 친노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는 이 지역에서 득표율 61.4%로 이달곤 한나라당 후보(36.3%)를 가볍게 이겼다. 김해시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선 한나라당이 35.24%로 ‘1위’ 자리는 지켰지만, 민주당(30%)과 국민참여당(12.1%), 민주노동당(10%) 등 선거 연대를 이룬 야당이 얻은 득표율의 합보다는 낮았다.
이번에 선거를 치르는 사람들로선,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지난 두 번의 선거 추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권자들은 여론 흐름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지지를 바꿀 수 있다. 이런 차이가 김해을 재보선에서 친노 후보를 둘러싼 유권자와 ‘선수’들 사이의 인식차를 빚어내는 셈이다.
위기에도 여전히 묘연한 야권 단일화
모두 단일화와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각 당의 속내도 다르다. 이봉수 국민참여당 예비후보는 “모든 논란은 내가 지명도가 높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며 “(민주당의) 노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내가 당선될 수 있다는 신뢰를 주지 못한 건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때 한 약속에 따라 민주당은 스스로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배정환 민주당 김해을 지역위원장은 “여긴 영남에서 유일하게 우리 당 의원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단일화를 하더라도 후보를 먼저 내야 한다”며 “지금 민주당 예비후보들 모두 김해 출신에 경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자꾸 중앙당에서 ‘낙하산 공천’ 얘기를 하는 건 출마 선언하고 선거운동 하고 있는 이 사람들 맥을 빼버리는 것”이라고 중앙당 쪽에 화살을 돌렸다. 민주노동당의 고민은 이번 재보선이 마치 ‘이명박 대 노무현’의 대리전으로 구도가 짜이는 것이다. 김근태 예비후보는 “임기 1년짜리 재보선을 중앙정치의 이벤트로 만들면 선거율만 떨어진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우리 당에 다 녹아 있는 ‘노무현 정신’을 팔아먹지 말아야 한다. 김태호 지사? 나와봐라. 지역 일꾼이 큰 말 한번 떨어트려주겠다”고 말했다.
김해=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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