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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포기’ 등록금

허덕이며 마련해야 하는 한 학기 400만원, 휴학·복학 반복하거나 졸업을 포기하거나
등록 2010-04-09 15:02 수정 2020-05-03 04:26
한국대학생연합과 등록금넷 회원들이 지난 2월1일 정부에 등록금 상한제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국대학생연합과 등록금넷 회원들이 지난 2월1일 정부에 등록금 상한제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허희수(정치외교학)씨는 27살이다. 졸업까지 한 학기만 남겨두고 있다. 2002년에 입학했으니 8년이 지난 셈이다. 2학년이 되자마자 휴학을 했다. 집안 형편상 직접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때부터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과외 아르바이트는 물론 편의점, 새벽 의류 시장 등지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겨우 60만~70만원을 벌었다. 4년간 휴학·복학이 반복됐다. 250만원이던 등록금이 400만원이 되어 있었다. 학칙상 3년 넘게 휴학할 수 없는데, 때맞춰 복학 신청을 할 수 없었다. 결국 2007년 제적당했다.

쉬어본 적 없이 일했는데 빚만 2천만원

“돈 걱정과 고된 노동에 학점 관리도 쉽지 않았다”는 그는 이듬해 겨우 학교로 돌아왔다. 결원 등이 생길 때 가능한 재입학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학생회에 참여했다. 예전엔 가난에 쫓겨서라도 관심을 둘 수 없던 일이다. ‘알바’에 허덕이면서도 ‘빚쟁이’가 돼가는 상황은 저주에 가깝다. 허씨는 “나와 처지가 같은 학생이 많다는 걸 알았다. 등록금 문제는 조용히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총학생회장으로까지 나섰다.

지난해 서경대 성악과에 입학한 김아무개(28)씨는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했다. 46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집안 사정으로 본인까지 신용불량자가 됐다. 학자금 대출도 할 수 없었다. 학비에 생활비까지 충당하려면 학기마다 600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조선대 공과대에 다니던 최아무개(24)씨는 지난해 아예 학교를 그만뒀다.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이다. 하지만 더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3학년까지 다녔는데 왜 학교를 마치고 싶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최씨 역시 입학한 뒤부터 가외 노동을 쉬어본 적이 없다. 방학 땐 공장, 대형마트 등지에서 일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근처 치킨집에서 배달을 했다. 캠퍼스 안의 친구들과 마주쳤다. 번 돈은 집안 생활비로도 사용됐다. 다달이 80만원 넘게 벌었지만 학자 대출금만 되레 2천만원으로 커져 있었다. 지금 내고 있는 월 이자만 10만원이다.

최씨는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졸업을 해도 취직이 보장되지 않으니, 차라리 혼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며 자퇴서를 냈다. 그는 대출금 중도상환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정규 학기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금융대출 규모는/본교를 졸업한 이후 취업 가능성에 대한 만족도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규 학기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금융대출 규모는/본교를 졸업한 이후 취업 가능성에 대한 만족도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0년 한국 대학에 노는 대학생은 없다. 아등바등 스펙 관리를 하거나, 아등바등 등록금을 마련한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이들은 ‘스펙’을 포기한다. 악순환이다.

여러 대학에서 등록금이 동결된다지만 꼼수에 가깝다. 대신 대학원 등록금이나 학부 입학금을 올린다. 장학금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올해 서울 지역 대학원 30여 곳도 학비를 대폭 올렸다. 동국대는 등록금을 동결했으나 입학금은 무려 9.9%가 올랐다. 입학금만 100만원이 넘는다. 대학원 등록금도 5.8% 인상됐다.

김양희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북한학)은 “고등교육법에 등록금 심의위원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대학원은 제외됐다”며 “학교 쪽에서 일방적으로 인상을 고지했다”고 말했다.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 쪽은 “대학원생의 권익 침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지난 3월 초의 일이다. “교육의 질에 비해 우리나라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기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의 지난 1월 발언)이란 회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백진 편집국장·민유경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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