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연합 정치는 이탈리아 정치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순수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른 1993년 이전에는 각 정당이 선거는 독자적으로 치르되 정부 수립 단계에서 손잡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1993년 상·하원의 75%를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나머지는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도록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 연합’ 바람이 불었다. 비례대표제에서 생긴 수많은 정당의 난립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의 거대 연합체를 구성해 단일 후보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승산이 적었기 때문이다.
단순다수대표제 이후 형성된 지역주의 투표 경향도 선거 연합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에서 중부는 사회주의 세력이 강해 ‘붉은 지대’라 불리고, 남부는 기독민주계와 파시스트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며, 중북부는 기독민주계와 극우 성향의 북부동맹이 압도적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주의 투표 경향을 가장 잘 활용한 진영은 중도·우파 진영이었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가 남부에서는 파시스트당과 연합하고 북부에서는 북부동맹과 연합해 선거에 참여했다(심지어 남부에서는 ‘좋은 정부를 위한 연합’, 북부에서는 ‘자유를 위한 동맹’으로 그 연합체의 명칭까지 달리했다). 이 전략은 특히 2001년 선거에서 큰 승리로 연결됐다.
반면 중도·좌파 진영은 이데올로기적 응집성이 강한 만큼 성격이 판이한 정당들의 연합까지 가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중도·좌파 연합의 지속성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에 기인했다. 지속성의 또 다른 요인은 인물의 당선 가능성만 고려하지 않고 비례대표제의 전통에서 형성된 각 당의 지지율을 기준으로 후보 수를 안배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다수대표제의 가면 속에 숨겨진 비례대표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초의 중도·좌파 연합으로 1994년 선거에 참여한 ‘진보연맹’은 집권에 성공하지 못했다. 공산당이 분당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도·좌파 진영 내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좌파민주당으로 개명한 옛 공산당은 중도·좌파 정당들을 포섭할 정도로 유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분당한 재건공산당과 함께할 정도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반성에서 비롯된 ‘올리브동맹’은 1996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좌파민주당이 국민당이나 사민당 같은 중도·좌파 정당들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이었고, 재건공산당도 연합체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올리브동맹과 협력하게 되었다. 특히 재건공산당과의 협력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올리브동맹과 재건공산당은 집권 이후 정책 교환을 조건으로 지역별 협력 공천을 실시했다.
그러나 올리브동맹과 재건공산당과의 협력 관계는 집권한 올리브동맹의 정책이 재정정책에 지나치게 집중돼 재건공산당이 제시한 사회정책들이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파기됐다. 이는 2001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중도·좌파 연합의 실패로 이어졌다.
정책 교환 약속 위반이 분열과 패배의 원인이에 대한 반성은 2006년 선거에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재건공산당이 직접 선거 연합체에 가입함으로써 또다시 승리로 연결됐으나, 2008년 선거에서는 중도·좌파 진영이 패배를 맛봤다. 이는 재건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무지개당’의 공조를 얻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탈리아 중도·좌파의 선거 연합 정치는 이와 같이 각 당의 실질적 세력 분포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에 합당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정치이념의 응집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동맹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성공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정치이념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정책 교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또다시 분열로 연결됐고, 이 분열은 패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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