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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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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내각, 직선-간선 왔다갔다

9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은 모두 정부 형태와 관련돼…
근대헌법 90년 동안 권리장전이 중심이 된 개헌 없어
등록 2009-09-25 15:58 수정 2020-05-03 04:25

‘인권’이 아닌 ‘주권’ 중심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서술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현행 헌법의 정초는 1919년 임시정부가 채택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속한다.”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이 조항을 임시정부는 제일의 원칙으로 내걸었다. 왕조가 아닌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는 대외적 선언의 의미가 강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좌파와 우파는 제헌헌법의 여러 초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1948년 반포된 제헌헌법을 사실상 주도했던 유진오 박사는 좌와 우의 헌법 초안을 절충했다. 그가 남긴 헌법 초안 메모를 보면 첫 조항에서 “조선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고 밝혔다. ‘민주공화국’은 우파에서, ‘조선’ ‘인민’이라는 용어는 좌파에서 빌려왔다. ‘유진오 초안’은 제헌의회 심의 때 이승만에 의해 뒤바뀌었다. 원래는 내각책임제였는데, 이승만의 고집으로 대통령제로 변경됐다. ‘인민’이라는 단어도 ‘국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해방 정국의 뜨거웠던 헌법 논의에서도 권리장전이 화두가 되지는 못했다. 좌파와 우파 모두 권력 형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9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은 한결같이 정부 형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다시 대통령제로, 직선제를 간선제로, 다시 직선제로 바꾸는 식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 마련된 현행 헌법도 그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권력구조의 큰 틀에 대해선 아래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그 밖의 내용들은 여야의 밀실 협상에서 결정했다. 국민적 참여와 이에 따른 학습 과정이 생략된 헌법은 사회적으로 확고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김종엽 한신대 교수)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헌법이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2004년이다. 한나라당이 장악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 최종 심판을 헌법재판소가 맡게 됐다. 초유의 사태 앞에서 사람들은 현행 헌법의 권능과 한계를 동시에 절감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주요 관심사는 대통령-의회-법원을 잇는 ‘권력구조’의 문제였다.

권리장전의 관점에서 헌법을 다시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계간 는 2004년 겨울호에서 각계 인사들이 쓴 ‘헌법 전문’을 실었다. 시민이 직접 헌법을 다시 쓰려는 시도였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005년 7월부터 11월까지 인권·문화·여성·평화 등의 관점에서 헌법을 다시 보는 심포지엄을 연쇄적으로 열었다. 2006년 4월에는 ‘대화문화아카데미’가 개헌을 논의하는 연쇄 모임을 시작했다. 이 무렵 활동을 시작한 뉴라이트 단체는 헌법에서 경제적 정의를 위해 재산권을 제약할 수도 있다고 천명한 ‘사회적 경제’ 조항을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개헌 논쟁의 핵심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 사이에 벌어졌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헌법 개정을 주장했지만, 최 교수는 헌법이 아닌 정당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은 이 논쟁은 정작 권리장전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냈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와 선거 주기 변경에 대한 개헌부터 하고, 권리장전 등은 차기 정부에서 마무리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권력체제 변경을 거부했다.

“정부 형태는 그야말로 정치인들의 관심사”

정권이 바뀌어 2008년 7월, 국회 안에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방안이 처음부터 거론됐다. 역시 권리장전에 대한 논의는 빠졌다. 지난 9월15일에 나온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체제 변경 개헌’은 그 귀결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통치 구조나 정부 형태는 그야말로 정치인들의 관심사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는 별 연관이 없다.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면 기본권 조항을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시대적 변화에 맞춰 보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19년 최초의 근대헌법이 모습을 드러낸 뒤 90년 동안, 한국의 정치인들이 권리장전으로서 헌법을 진지하게 논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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