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65) 창조한국당 의원은 보수다. 미국에서 전기공학으로 석·박사를 딴 정보통신 전문가다. 통신업계의 ‘메인스트림’으로, KTF와 KT 대표이사를 거쳤다. 재력가다. 본인은 물론, 부인 쪽도 부를 대물림했다. 그는 늘 경제적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18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정치적 관점을 더하고 있다. 이 의원은 미디어법 정국에서 독자적인 방송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그 내용은 민주당 쪽 개정안에 상당히 반영되기도 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수정안 통과로 의미가 없어졌지만. 미디어법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7월23일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미디어법은 결국 (보수 언론의) 독과점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독과점이 되면 경쟁이 사라져 단기간에 기업은 좋겠지만, 장기에 걸쳐 산업 전체가 죽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을 위해서는 올바른 경쟁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며 경제적 관점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미디어법 통과 당시 어디에 있었나.=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어 상임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회의실에서 혼자 방송으로 봤다. 허탈하고 씁쓸했다.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면서 많이 고생했다. 우리 안은 진입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은 지분 제한을 통해 사전 규제를 한다는 식인데, 그건 금고문을 열어놓을 테니 대신 조금만 가져가라는 것과 같다. 우리는 특정 신문의 시장 진출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런 규제를 풀어줄 때는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 여론의 다양성을 점검하면서 풀어야 한다. 그런데 통과된 안을 보면 이른바 ‘조·중·동’에 방송을 주기 위한 법인 것처럼 보인다. 수정안을 내는 마지막까지 허겁지겁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을 보면 어떤 특정한 신문을 (위한 내용을) 넣어야겠다는 신념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보이기도 하더라.
-9월에 처리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법안이 복잡하지만, 토의를 하면서 의견을 좁힐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에도 법안을 발의하자마자 ‘크리스마스 전에 처리하겠다’는 식으로 나왔고, 지금껏 싸움만 하면서 토의할 시간은 없다고 했다. 내가 법안을 발의하니까 비로소 논의가 시작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민주당이 회기를 한 달 더 연장하자고 했는데, 한나라당은 7월24일까지 끝내야 한다고 버텼다. 나는 한 달 더 연장할 수 없다면, 당연히 9월 정기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중요한 법안을 상정 직전에야 수정안이라고 내놓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를 읽어볼 틈도 없이 찬성표를 눌렀다. 참담한 심정이다.
-한나라당은 왜 서둘러야 했을까.=김형오 국회의장도 민생법안이 아니라고 했고, 경제 살리기와 무관하다고 실토했다. 그런데도 강행한 것은 다음달에 있을 개각으로 민심을 달래고, 10월 재보선과 그 이후의 지방선거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개각으로 씻김굿이 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방적인 태도는 이번 정부의 DNA 같다. 무리한 법안과 국정 목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 같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데, 이른바 ‘CEO 대통령’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CEO와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CEO는 자기의 비전을 따라서 직원들을 이끌면 된다. 따라오지 못하는 직원은 해고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자기를 찍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다 같이 이끌어야 한다. 회사를 경영했던 경험자로서 시장경제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언론은 시장경제만 따라서 풀 사안은 아니다. 시장경제로만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이다. 자본력이 큰 기업이 이기게 돼 있는 것이 시장경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자본이 ‘보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보수적이지 않은 자본을 못 봤다. 이런 풍토에서 시장논리로만 하면 보수 일변도의 언론만 살아남게 된다. 언론의 편식을 막으려면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미디어는 왜 시장논리로 풀어서는 안 되나.=우리나라 자본의 성격을 이야기했는데, 미국은 좀 다르다. 시장에서도 신문·방송 겸영에 대한 제한도 있지만, (정치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사회적 기반으로 깔려 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유대 자본이다.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으로 박해를 받았던 민족으로, 어떤 사회에 가서도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한다. 진보적인 성향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일부 한다. 또한 는 자본력도 튼튼하고 진보적인 신문이다. 물론 〈LA타임스〉 같은 보수 신문도 있다. 언론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의 한국 미디어 시장은 어떻게 될까.=(신문사와 대기업들이) 지상파는 자본이 많이 들어가니까, 종합편성 허가를 받아서 케이블 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그런데 광고는 한정된 상황에서 채널이 많아지면 선정성 경쟁이 이어질 것 같다. 지금도 지상파에서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데, 이후에는 보도 쪽까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지난번에 낸 방송법 개정안을 보면 시장점유율 10% 이하 신문사만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 채널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국내 신문시장을 선도하는 신문이 대략 11개인데, 이들 전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영향력의) 균형을 맞추려면 점유율 10% 이하만 방송에 진출하는 것이 맞다고 본 것이다. 팔당댐을 열 때는 서울 마포에 물이 넘을지 여부를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주변의 둑도 튼튼한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장치도 없이 허겁지겁 열었다. 왜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다.
-정부 논리는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시대’를 맞아 미디어 시장 재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신 전문가로서 현재의 통신-방송 융합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가.=18대 국회도, 이명박 정부도 완전히 방송에만 매달려 있다. 통신(에 대한 관심과 정책)은 완전히 실종돼 있다. (KT가 개발한 무선 인터넷인) 와이브로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이 한 단면이다. 이번에 ‘디도스’(DDoS·분산형 서비스 거부 공격)에 국내 인터넷이 취약했던 것도 그간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책을 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과 통신에 균형된 시각과 의지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통신-방송 융합이 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미디어법 통과를 전후해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박근혜 전 대표가 낸 ‘매체합산점유율’은 아주 고차원적인 제어 방법이었다. 모든 매체를 합쳐 한 언론사가 합산점유율 30%를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비전이란 생각도 든다. 통신-방송 융합 시대에 통신-방송-신문까지 융합되면 각각 다른 시장을 전체로 아우르는 하나의 잣대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개념까지 내놓은 것을 보면 박 전 대표가 연구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합의 처리가 중요하다는 말까지 했는데, 지금 일방적으로 통과된 안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더라. 한나라당 수정안을 얼마나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말한 내용이 수용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마지막까지 원칙을 고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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