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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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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멜 놈을 꿔와야 혀”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평균연령 58.9살, 노령화지수 1100%… 홍수 나면 논 정리할 사람도 벼 걷어 널 사람도 없어

▣ 부여=남형석 인턴기자 justicia82@paran.com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늙은이가 죽어도 상여 멜 젊은 놈이 없어.”

50년째 이 마을에 살아온 최이규(81)씨의 말처럼,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4리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옆 동네에서 상여를 들어줄 젊은이들을 ‘빌려’온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최근에는 아예 동네장을 포기하고 장례식장에 일을 맡기는 일도 잦아졌다. 장례를 치르고 조문객을 대접할 젊은이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할 사람이 없어 즐비한 유휴지

구교4리 주민의 평균연령은 58.9살. 이 중 65살 이상 노인은 33명으로 마을 전체 인구의 무려 43.4%에 이른다. 초고령화 사회의 기준이 20%임을 감안하면 구교4리는 초고령화사회를 훌쩍 뛰어 넘는 ‘슈퍼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기자가 구교4리에 머문 나흘 동안 마을에서 검은 머리의 젊은이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드넓은 논에서 자기 몸집보다 큰 농기계를 둘러맨 채 홀로 외롭게 일하는 백발 성한 노인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 그래도 농사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성한 사람은 그나마 처지가 나은 편이다. 구교4리에는 더 이상 힘에 부쳐 농사짓기를 포기하고 홀로 집 앞의 작은 텃밭만을 가꾸며 살아가는 노인들도 많았다.

한창 일을 해야 할 20대, 30대 젊은이는 이 마을에 일곱 명뿐이다. 이 중 세 명은 외국인 며느리이고, 정작 농사일을 하는 젊은 남성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유소년 인구(0~14살) 대비 고령 인구(65살 이상 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는 무려 1100%. 15살 미만 유소년 한 명당 65살 이상 노인 11명이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2005년 우리나라 농가의 노령화지수는 296.7%로, 2020년에는 1816%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다. 구교4리는 우리나라 농촌의 멀지 않은 미래인 셈이다.

마을에 젊은이가 없다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많다. 이 동네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는 김준성(55)씨는 “몇 해 전 마을에 큰 홍수가 났는데, 둑을 다시 쌓고 흐트러진 논을 정리할 사람이 없어 막막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구교4리에 즐비한 유휴지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생을 구교4리에서 살아온 이석수(85)씨는 “곧 9월이 되면 벼를 널어 말려야 하는데 늙은이들은 벼를 들고 다닐 힘이 없다”며 “우리 늙은이들은 기계를 다룰 줄도 몰라서 아예 구입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없는 돈을 들여 사람을 사고 싶어도, ‘제대로 힘 쓸’ 사람조차 없다. 김준성씨는 “지금 마을의 젊은이라고 해봐야 다 50∼60대”라며 “지금도 문제지만 10년이 지나고 나면 아마 (구교4리는) 가구 수도 반절은 줄 거고, 그땐 정말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기업 유치, 떠들면 뭐합니까”

청장년층이 지역사회를 이탈해 대도시로 떠나다보니 혼자 남겨진 노인들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구교4리 38가구 중 1인 가구(한 가구에 한 명만 사는 가구)는 전체의 28.9%인 11가구에 달한다. 그 중 60살 이상 노인 혼자만 사는 1인 가구가 10가구이니, 네 집 중 한 집은 노인 혼자 쓸쓸히 사는 셈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아흔 살이 된 박성태 할머니 역시 자녀들을 대전으로 보내고 홀로 고향에 남아 살고 있다. 이웃 우민식(43)씨는 “자녀들이 내게 할머니가 잘 계신지 가끔 가보라고 해서 하루에 한 번 꼴로 (할머니 집에) 들른다”며 “여전히 밥도 혼자 잘해 드실 정도로 정정하시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20여 년 전 사별한 뒤 줄곧 남편의 고향인 구교4리 배마레 마을에서 혼자 살아온 신이례(77)씨는 “이 동네가 뱀이 많이 나와서 배마레라고 불린다”며 “지금도 마당에서 가끔씩 뱀을 보는데 무서워 죽겠다. 그래도 혼자인데 별 수 있나, 무서워도 꾹 참아야지”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구교4리를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서 아무런 희망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장병과 당뇨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3년 전 귀향한 우민식(43)씨는 “여기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할 게 없다. 마땅한 회사도 없고, 결혼도 못한다”며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논농사뿐만 아니라 인력일까지 같이 뛰고 있다”고 밝혔다. 20년 동안 조경회사에서 근무하다 3년 전 귀향한 류춘열(60)씨도 농촌에는 젊은이들을 끌어안을 뭔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자체 선거 때 되면 모든 정치인들이 다 우리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떠들죠. 기업이 오면 뭐합니까. 일할 사람은 전부 70대, 80대밖에 없는데. (현재) 있는 기업도 다 나가고 있는 판입니다.” 그의 말투는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이러한 청장년층의 농촌 이탈 현상에 대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경환 연구위원은 “젊은이들이 농촌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초고령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초점”이라며 “적정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 걱정 없는 자녀교육 여건, 기본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보건의료시설, 그리고 문화생활이 가능한 환경 조성 등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2020년, 농가인구피라미드에 60대 이상만

대한통계협회의 ‘2005년 농림어업총조사 종합분석’ 보고서는 2020년에는 우리나라의 농가인구피라미드가 60대 이상만으로 구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까지 바라볼 필요도 없이, 이미 구교4리의 인구피라미드에서는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군복무 중이지만 주민등록상으로 아직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아들을 둔 복연옥(47)씨는 “우리 아들도 제대하면 곧 이 마을을 떠날 것”이라며 “여기 있어도 할 게 없는데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경로당’이 되어가는 구교4리의 모습은 우리나라 모든 농촌 사회가 겪고 있고, 또 겪어야 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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