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대운하 여파로 땅값 들썩이는 지역들… 소문 부풀리는 외지인들 때문에 농지 구하기 어려워져</font>
▣ 여주·충주=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font color="#C12D84">[한반도 대운하- 3부 미래] </font>
“땅 좀 팔고 싶은데….” 3월19일 경기 여주군 대신면의 ㅅ부동산. 담배를 문 김대철(64)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신면 당산리 쪽에 산과 논밭이 6400평(2만1157㎡) 정도 있다”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현재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씨는 19년 전에 산 이곳의 땅을 150평 정도만 남기고 모두 팔 생각이다. “땅 판 돈으로 남은 땅에 집 짓고 소 키우면서 살려고요.”
4만~5만원 땅이 20만원까지
김씨가 소유한 당산리 땅 남서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한반도 대운하’(이하 대운하)가 만들어지면 여주 가산리에 대형 화물 터미널이 들어서는데, 당산리는 가산리와 잇닿은 하류 지역이다.
지난해 말 가산리가 대운하 화물 터미널 예정지라고 알려지면서 김씨는 하루에 50통이 넘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땅을 팔아주겠다는 기획 부동산 업자들이었다. 김씨는 “하도 전화에 시달려 거의 한 달은 휴대전화를 꺼놓고 살았다”고 말했다.
대운하 계획의 여파로 여주 지역 땅값이 크게 올랐다는 것은 이미 구문에 속한다. 국토해양부의 올해 1월치 지가변동률 자료를 보면, 여주군의 땅값 상승률은 0.685%를 기록했다. 최근 주상복합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서울 용산, 뚝섬과 가까운 성동구, 인천 남구, 역시 대운하 영향 지역인 경기 남양주시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높았다.
여주군의 지난해 월별 지가변동률은 0.1%대에서 0.4%대를 오가다가 12월에 이르러 0.712%를 기록한다. 12월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가산리의 땅값은 호가가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러나 호가만 올랐을 뿐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일은 드물다. ㅅ부동산을 운영하는 현상천(54)씨는 “대운하 발표 이후 가산리를 중심으로 3.3m²(1평)에 10만원 하던 땅이 20만~25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땅값이 오르자 더 오르리라는 기대심리 때문에 땅을 팔려는 사람은 없고, 이미 땅을 내놨던 사람들마저도 매물을 거두고 있다.
이날 땅을 팔러 온 김씨는 “아직 팔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가는 자꾸 오르는데다, 특별한 벌이가 없어 땅을 처분할 생각이다. 그는 “1평에 20만~25만원에 팔아주겠다고 전화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양도세가 높으니 그 이상이면 좋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외지인인 경우 양도 차익의 최대 66%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대신면 가산리와 함께 여객·화물 복합터미널 예정지로 거론되는 점동면 삼합리도 땅값이 크게 올랐다. 삼합2리 백왕현(49) 이장은 “매일 외지 사람들이 땅을 보러 온다”고 말했다. 1평에 10만원 하던 땅이 요즘에는 20만원까지 올랐다.
이렇듯 땅값을 올리는 것은 외지 사람들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기 때문에 땅을 파는 것은 곧 실직을 뜻한다. 백 이장은 “그래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운하에 관심이 높다”며 “마을에도 개발 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합리는 경기·강원·충북 3개 도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남한강·섬강·청미천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다. 복합터미널 지역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이날 오후 1시, 백 이장과 마을 주민 4명은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여주군민회관으로 향했다. 여주 한반도대운하추진운동본부에서 주최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 지지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군민회관 곳곳에는 ‘한반도 대운하 국운 융성의 길’ ‘한반도 대운하 여주의 희망’ 등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결의대회는 대운하 건설 홍보 영상을 시작으로 이명환 여주군의회 의장 등의 축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던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의 강연으로 이어졌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여주 군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에 참석한 최석용(79)씨는 “대운하 때문에 강가에서 1km 떨어진 지역까지 땅값이 들썩인다”고 말했다. “나처럼 강가에 사는 사람이야 운하가 생기면 좋지. 안 그렇겠어?”
충북 충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충주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와 한강과 금강을 잇는 충청운하가 갈라지는 곳이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해상교통의 요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도시는 한껏 들떠 있었다. 특히 화물터미널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진 가금면 장천리와 가흥리 땅값은 폭등한 지 오래다.
호가는 4배 이상 올랐다. ㄱ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백승용(57)씨는 “지난해 평당 시세가 4만~5만원 하던 땅이 올해 들어 2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공군사격장이 있는 장천리와 가흥리 일대는 대부분 국방부 소유의 국유지이고 강폭이 1km를 넘어 배들이 오가기에 편하다. 땅값이 치솟자 주민들은 “대통령 취임식 이후로는 평당 20만원 아래로는 팔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른 것은 역시 호가뿐이다. 백씨는 “땅 주인들이 무리하게 값을 부풀리는 측면이 있다”며 “요즘 같은 시기에는 땅을 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시세대로 평당 20만원씩 주고 샀다가 땅이 수용되면 6만~7만원의 보상금만 받고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대 여론이 높기 때문에 대운하 사업은 중간에 좌초될 수도 있다. 그는 “외지인들과 기획 부동산 업자들이 대운하와 레저시설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으로 주민들 마음만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치솟은 땅값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주민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민들을 던져준다. 농사용 땅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엄정면 목계리의 김낙진(49)씨는 “농사지으려고 땅을 사고 싶어도 두세 달 만에 턱없이 비싸져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작농들도 마찬가지다. 땅값이 오르면서 토지 대여료도 올랐다. 주민들이 단무지용 무를 재배하는 목계리와 장천리 일대 토지 대여료는 지난해 평당 1천원에서 1500원 사이를 오갔지만 올해 3천~4천원으로 뛰었다. 목계리 이장인 강광남(57)씨는 “마을 땅 70% 이상을 서울 등 외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어서 땅값이 뛰고 대운하가 건설된다 해도 주민들이 좋아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강 이장은 “쓸데없이 땅값만 높아져 외지인 땅을 빌려 농사짓는 주민들만 더 힘들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한강과 낙동강을 이으려면 두 강을 가로막는 조령산에 터널을 뚫어야 한다. 이 터널의 남한강 쪽 입구에 살미면 토계리가 있다. 35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담배 농사를 짓거나 소를 키우며 산다. 3월18일 마을은 매캐한 연기로 덮여 있었다. 봄을 맞아 담배를 심기 위해 겨우내 어지러워진 밭에 불을 피우는 중이라고 했다.
토지 대여료도 껑충 뛰어
유천규(53) 이장은 갈퀴로 밭이랑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평소 외지인들이 잘 드나들지 않았는데, 올해 1월부터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운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터미널이나 선착장이 생긴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죠.” 유 이장은 “땅값이 두 배 올랐다고 하지만, 평생을 이 땅에서 먹고산 사람들이 땅을 팔고 어디로 가겠냐”며 혀를 찼다. 그는 치솟은 땅값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생겨날 불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해는 산 너머로 지고 마을은 여전히 희뿌연 연기에 휘감겨 있었다. 소를 먹이기 위해 콩비지를 끓이던 유기철(71)씨는 집으로 날아온 우편물을 펼쳐 보였다. ‘충주는 항구다.’ 4·9 총선에서 이 지역구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홍보 책자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뭘 압니까. 나라에서 하면 그대로 따라야지요.” 유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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