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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호수가 사라졌다

등록 2008-01-05 00:00 수정 2020-05-03 04:25

넓이 2만㎡에 달하는 칠레 템파노 빙하호 실종…호수 밖으로 물이 쏟아져나가는 ‘빙하 홍수’ 현상 때문

▣ 파타고니아(칠레)=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호수가 사라졌다!”

2007년 6월20일, 세계 주요 언론은 놀란 어투로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의 한 호수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호수는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국립공원의 템파노 빙하호였다. 템파노 빙하가 녹아 흘러내려 생긴 호수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푸에르토 에덴에서도 수백㎞ 떨어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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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수위가 빙하 높이의 90%에 이를 때

칠레삼림청의 관리인인 후안 호세 로메로가 사라진 호수를 발견했다. 그는 “지난 3월 순찰 때 버젓이 있던 호수가 5월에 갔을 때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칠레국립과학연구센터(CECS)는 지질학자를 파견해 현장을 둘러봤다. 비행기로 주변을 둘러본 결과, 넓이 2만㎡의 호수가 말끔히 사라졌다. 호수 밑바닥은 40m 정도 깊게 파여 검은 진흙을 드러냈고, 호수 위에 떠 있던 빙하는 좌초된 선박처럼 파묻혔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당시 현장 조사를 지휘한 CECS의 수석 빙하학자 기노 카사사 박사는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동료 빙하학자인 안드레스 리베라와 젠스 웬드트가 7월 초에 해군 수송기를 이용해 템파노 빙하호를 살펴봤습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원인은 빙하가 녹은 물이 호수로 흘러 들어갔고, 어느 순간 호수 바깥쪽(빙하 맞은쪽)의 댐이 붕괴됐습니다. 그 결과 호수가 가둔 물이 한꺼번에 사라졌지요.”

카사사 박사에 따르면, 붕괴 순간은 빙하 밑 터널(subglacial tunnel)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면 빙하 표면이 녹는다. 얼마 안 돼 빙하에 계곡이 생기고 이윽고 빙하 밑 깊은 터널로 바뀌어 호수와 연결된다. 그런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 빙하가 많이 녹아 호수에 물이 많아진다. 이어 호수 수위가 임계점에 이르고 빙하 터널은 수압을 이기지 못한다. 그 순간 빙하 터널은 붕괴되고, 갑자기 많아진 호숫물은 호수 바깥쪽 댐도 연이어 붕괴시킨다. 물이 쏟아져 나가고 호수가 사라지는 것이다. 카사사 박사는 “보통 호수 수위가 빙하 높이의 90%에 이를 때(임계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템파노 빙하호의 수위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카사사 박사는 “30년 전에 템파노 빙하호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반면 템파노 빙하는 얇아지고 후퇴하면서 빙하호를 만들어 물을 가득 채웠고, 결국 호수가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빙하 홍수’(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 혹은 ‘요쿨라웁’(Jokulhlaup)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런 현상은 히말라야나 안데스산맥, 아이슬란드 등 내륙 빙하에서 나타나는 장기적인 빙하 운동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욱 파괴적이고 잦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빙하호 아래 마을은 심각한 위협 받아

칠레 남부 템파노 빙하에서는 피해가 없었지만, 빙하호 아래에 마을이 있을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중국·네팔·파키스탄 등 히말라야 산정 마을이나 파미르고원의 하류 등은 빙하 홍수에 취약하다. 히말라야 인접국에서 활동하는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는 1999년부터 수집한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히말라야산맥의 50여 개 빙하호 둑이 조만간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고 지난해 6월 발표했다. 중국, 인도, 부탄, 네팔, 파키스탄 5개국 히말라야 산맥에는 1만5천 개의 빙하와 9천 개의 빙하호가 있다. ICIMOD는 “과거에는 200~300년에 한 번쯤 발생하던 고산지대 홍수가 앞으로는 2~3년에 한 번씩 반복될 것”이라며 “빙하 홍수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1981년 티베트의 장장보 빙하 홍수는 300만달러의 피해를 입혔고, 1985년 네팔의 딕츠오 빙하 홍수는 이 지역의 발전소를 파괴하는 등 130만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1994년 루계 쯔오 빙하 홍수에는 인명 피해도 났다. 이 지역 사람들은 빙하 홍수를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나미’라고 부른다. 지구온난화 시대, 빙하는 아래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위에서는 빙하 홍수를 일으킨다. 위아래로 인간들을 협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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