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 밀도 크게 감소하며 남극 ‘멸종 도미노’ 우려…미끼로 사용하지 않는 책임낚시의 자세를
▣ 남종영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 fandg@hani.co.kr
2006년 9월부터 2007년 3월까지 환경운동연합이 소박한 조사를 벌였다. 제주, 포항, 울산의 낚시꾼 143명을 대상으로 미끼로 사용되는 남극 크릴에 대해 물은 것. 통계적 유의성이 부족한 설문조사였지만, 결과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시사했다.
첫 번째 물음. “당신은 어떤 미끼를 사용하십니까?” 낚시꾼 중 크릴을 사용하는 사람은 58%였다. 지렁이를 쓰는 사람은 28%뿐. 두 번째 물음. “당신은 크릴이 남극 바다에서 잡혀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절반에 육박하는 46%가 이 사실을 몰랐다.
대구·펭귄·해표·고래 굶주려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크릴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크릴은 새우처럼 생긴 길이 5~6cm, 무게 6g의 작은 갑각류다. 수온이 4도 이하인 남극과 아남극권 등 찬 바다에 산다. 한국은 크릴의 주요 생산국이다. 2006년 3만898t을 잡아 1만7921t을 수출하고 국내에서 2만977t을 소비했다. 2004년 하반기~2005년 상반기 전세계 어획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최대 생산국은 노르웨이. 대형 펌프로 크릴을 ‘빨아들이는’ 공장식 어선을 도입한 이후 한국을 앞질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남극에서 잡아온 크릴은 대부분 온대의 바닷물고기를 잡는 데 쓰인다. 2006년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남극에서 운송된 크릴의 90%는 낚시 미끼용으로 쓰였다. 양식장 사료와 식용으로 각각 5%가 쓰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크릴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영국남극조사단(BAS)의 앵거스 앳킨슨 박사가 2004년 과학잡지 에 발표한 논문은 시사적이다. 그는 1926~39년, 1976~2003년 9개국 1만1978건의 상업·연구용 크릴 어획량을 조사해 크릴 밀도의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1976년 이후 남극반도 서남쪽 바다에서 크릴이 약 80% 줄었다.
왜 줄었을까. 앳킨슨 박사는 “해빙(빙하)의 지속 기간과 크기가 크릴 밀도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크릴은 해빙 아래 서식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빙하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함으로써 식물성 플랑크톤의 양어장 구실을 한다. 쉽게 말해 남극의 해빙이 겨울엔 얼고 여름엔 녹아야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한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평균 2.5도가 상승한 남극반도 주변에선 바다가 얼지 않는 해가 잦아지고 빙하 면적마저 줄어든다. 그러면 식물성 플랑크톤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크릴마저 준 것이다.
크릴이 줄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끔찍하다. 크릴은 남극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크릴보다 작은 생물 중 크릴이 먹지 않는 게 없고, 크릴보다 큰 생물 중 크릴을 먹지 않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크릴은 남극 먹이그물의 핵심에 존재한다. 크릴은 남빙양의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플랑크톤을 먹고 번성한 크릴은 남극 대구와 펭귄, 바다사자와 해표, 고래 등의 일용할 양식이다. 크릴이 줄어들면 고래도 굶주린다. 크릴이 멸종하면 ‘멸종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
해가 갈수록 어획량 늘어
크릴은 고단백질이다. 미래 식량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연구한다. 전세계 한 해 크릴 어획량은 10만t대다. 5천만~5억t의 절대량에 비해 일부지만 해가 갈수록 어획량은 늘어난다. 하지만 아직 멀리 남극에서 잡아오는 만큼의 값진 소비는 못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양어장 사료나 낚시 미끼로 값싸게 버려지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기획실장은 “바닷가 낚시터에 가면 낚시꾼이 여기저기 버린 크릴 미끼가 많다”며 “남극 생태계에서 크릴의 중요한 구실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극까지 얽힌 생태계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책임 낚시꾼’의 자세가 필요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