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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소만 빙하의 굴욕

등록 2008-01-05 00:00 수정 2020-05-03 04:25

킹조지섬의 거인, 1990년대 들어 급속히 후퇴… 남극 빙하가 다 녹으면 세계 해수면 57m 상승

▣ 킹조지섬(남극)=글 남종영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남극은 얼음의 나라다. 남극에서는 얼음의 하얀색과 하늘의 파란색만이 존재한다. 남극대륙의 꼬리처럼 북쪽으로 길게 뻗어나온 곳이 있는데, 이곳이 남극반도다. 예로부터 사람은 살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름에는 맨땅이 드러나 동식물이 거주한다.

남극반도의 끝 즈음에 킹조지섬이 있다. 한여름 킹조지섬은 영상을 웃돌 정도로 따사로워서 남극제비갈매기, 펭귄 등 조류와 코끼리해표, 혹등고래 등 해양포유류가 몰려든다. 그래봤자 한여름 킹조지섬에서 눈이 녹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8.3%에 불과하다(2004년 브라질 기지 조사).

대기 온도 상승이 결정적 영향

세종기지가 설치된 킹조지섬 바턴반도 또한 동식물의 안식처다. 한여름에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찾아오고 남극도둑갈매기와 갈색도둑갈매기가 펭귄 머리 위를 맴돈다. 코끼리해표와 웨델해표도 단골손님이다.

이런 풍족한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건 아이로니컬하게도 남극의 추위와 눈, 빙하다. 매년 벌어지는 빙하의 결빙·융해운동이 남극 생태계를 떠받치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번성케 해주기 때문이다. 세종기지에서 2km 남짓 떨어진 마리안 소만 빙하도 사실 세종기지의 펭귄과 해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에너지다.

이주한(37) 극지연구소 연구원은 2005년부터 마리안 소만 빙하와 씨름하고 있다. 2006년에 이어 지난해 말에도 세종기지에 찾아와 빙하를 탐사했다. 그는 GPR(geometric penetrating radar) 기법으로 빙하의 비밀을 캐낸다. 빙하 아래로 전자기파를 쏘아 빙하의 두께, 성분 및 지각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2006년에는 헬기를 타고 마리안 소만의 빙하를 수십 번 돌면서 ‘전자기파’를 쏘았다. 영상 2도까지 올랐던 12월6일 이 연구원은 마리안 소만 빙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1956년부터 2006년까지 마리안 소만 빙하는 1.7km 후퇴했어요. 이 정도 속도라면 2060년엔 저 빙하도 완전히 사라집니다.”

마리안 소만 빙하는 1990년대 들어 점점 더 빨리 사라지고 있다. 1956년 12월부터 1984년 1월까지 27년 동안 마리안 소만 빙하는 169m만 뒷걸음질쳤다. 반면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단 5년 동안엔 270m가 녹아 사라졌다. 1990년대 들어 무엇인가가 ‘액셀’을 밟은 것이다. 마리안 소만 빙하의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이주한 연구원에 따르면, 빙하의 전진과 후퇴는 크게 세 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빙하 두께가 70%, 대기 온도가 10%, 수온이 10% 정도라는 것. 이 연구원은 “빙하 두께 등 다른 변수는 급격히 변하지 않아 영향이 적지만, 대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의 온도 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훨씬 높다. 1969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약 0.037도씩 상승했다. 27년에 약 1도씩 오른 것이다(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1906~2005년 지구 평균 기온은 0.74도 올랐다. 연평균 0.0074도 오른 셈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여름과 초가을(12월~3, 4월)에는 계속 영상을 웃돌고 있다.

남극반도 빙하 87% 후퇴

마리안 소만 빙하의 ‘소멸’은 충격적이지만, 사실 남극 빙하의 ‘후퇴’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남극조사단(BAS)의 앨리슨 쿡 박사가 2005년 펴낸 ‘지난 반세기 동안의 남극반도 빙하들의 후퇴’는 상당수 남극 빙하학자들이 주목하는 논문이다. 논문의 내용인즉 “남극반도 전체 244개의 빙하 가운데 87%인 212개의 빙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남극반도 평균 온도는 2.5~4.5도 상승했다. 쿡 박사에 따르면, 남극반도 빙하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후퇴하는 빙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전체 빙하를 평균한 전진(+)/후퇴(-)값도 1960년대 후반부터 -(후퇴)로 돌아선다. 심지어 스조그렌 빙하는 최근 10여 년 동안 8km나 뒷걸음질쳤다. 앨리슨 쿡 박사는 “이런 후퇴 경향은 온난화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남극반도의 빙하가 다 녹으면 전세계 해수면이 6m 상승한다. 남극의 모든 빙하가 모두 녹으면 57m 치솟는다. 바닷물에 잠기는 적도의 섬 투발루, 해마나 물난리를 겪는 방글라데시 저지대뿐만 아니라 창이공항 등 주요 시설이 해발 2m 아래 위치한 싱가포르의 운명을 쥔 곳이 남극이다. IPCC는 2007년 2월 이번 세기 안에 해수면이 최고 59cm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취재진은 마리안 소만 빙하에 가보기로 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12월10일 저녁, 취재진이 탄 고무보트는 세종기지에서 20여 분의 항해 끝에 빙하 끝단에 다다랐다. 여기저기 난 크레바스(빙하에 난 균열)로 빙하는 험상궂은 모습이었다. 한때 15층 건물 높이만 하던 빙하는 이제 가장 낮은 곳은 3~4m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박명희 세종기지 총무가 말했다.

“15년 전만 해도 거대한 빙하였어요. 한여름에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우르릉 꽝’ 하는 소리가 세종기지까지 들렸지요.”

크릴도 사라지고 사람도…

요즈음은 이마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빙하 크기 자체가 줄었고 그나마 잘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한때 세종기지 앞까지 뾰족 솟아 웅장함을 자랑하던 마리안 소만 빙하는 하루를 멀다 하고 뒷걸음질쳤고, 지금은 마리안 소만 깊숙이 처박혀버렸다. 현재 지점에서 빙하 정상까지는 불과 2.7km다. 이주한 연구원의 말대로 마리안 소만 빙하의 최후가 멀지 않은 셈이다.

세종기지 대원들은 지난 2005년 점점 넓어지는 마리안 소만 빙하의 크레바스에 빠져 이웃 아르헨티나 기지 대원들이 숨졌다는 말을 했다. 빙하의 소멸과 함께 크릴도 사라지고 사람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잘게 부서진 빙산 위로 남극제비갈매기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빙하마다 달라요

남극·그린란드 빙하는 수위를 높이고 북극 해빙은 열·염분 순환 교란

빙하가 녹으면 바닷물 수위가 높아진다. 정확히는 민물을 가두고 있는 ‘대륙빙하’가 녹아야 바닷물 수위가 높아진다. 이런 대륙빙하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지역이 그린란드와 남극이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보고서는 “그린란드 빙하가 다 녹으면 전세계 해수면이 7m 상승하고, 남극 빙하가 녹으면 57m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북극은 대륙이 아닌 바다다. 북극해를 중심으로 러시아·시베리아·알래스카·캐나다·그린란드 등 육지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북극의 바닷물은 얼고 녹기를 반복한다. 물론 북극점을 중심으로 한 고위도 지역은 항상 얼어 떠다닌다. 여하튼 이런 얼음은 빙하라고 부르지 않고 ‘해빙’이라고 부른다. 그럼 북극의 해빙이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질까. 그렇지 않다. 위스키 속의 얼음이 녹아도 위스키 잔이 넘치지 않듯, 바닷물이 언 해빙은 녹아도 해수면 높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홍성민 극지연구소 박사(빙하학)는 “기후변화에 따라 빙하(혹은 해빙)가 줄어드는 게 전반적인 추세지만, 북극·남극·중저위도 등 지역에 따라 미치는 여파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북극의 해빙이 녹으면 전세계 바다 밑에서 이뤄지는 열·염분 순환이 교란된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는 바닷물 수위를 높여 저지대를 침수시킨다. 아시아의 히말라야,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지방 등 중·저위도 빙하는 단기적으로 인근 지역의 홍수를, 장기적으로는 물 자원 부족 문제를 일으킨다.






“수백만 년 전 미생물 얻을 수도”

빙하생물학자 이상훈 극지연구소 박사가 말하는 빙하 연구의 가능성

세종기지는 한국 빙하 연구의 유일한 ‘필드 테스트’ 지역이다. 빙하 미생물을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인 이상훈 극지연구소 박사(세종기지 제20차 월동대장)를 12월9일 세종기지에서 만났다.
빙하 연구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수만~수천만 년 동안 눈이 쌓이고 눈의 무게가 눌리면서 빙하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옛날 공기와 미생물이 빙하 속에 포집된다. 빙하를 시추해 채취한 시료로 수백만 년 전의 미생물을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살려낼 수도 있다. 빙하 속 공기방울을 분석해 로마시대 공기에 납 성분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지 않았나. 이를테면 이런 연구다. 워싱턴 빙하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바이러스와 관련된 유전자를 지닌 미생물이 발견됐다. 바이러스의 자기복제 성질을 감안하면, 현세 생물 유전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들을 살펴본다. 이렇게 빙하 연구는 광범위하다. 남극에 떨어진 운석의 분석을 통한 혹성 간 생명체 전파, 진화, 유전 등도 가능성이 많은 연구 주제다.
생물학자로서 빙하 속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는데, 마리안 소만의 빙하로 연구한 건가.
=아니다. 남극대륙에서 떨어진 킹조지섬에는 이른바 ‘족보 있는’ 빙하가 없다. 과학자들이 많이 몰리지 않고 기존 연구 결과가 많지 않으니 아직 한계가 있다. 동남극 지역 영국의 맥머도 기지 근처 워싱턴 빙하에서 채취한 시료를 얻어 연구했다.
세종기지 20년 역사에 비해 빙하와 관련한 연구가 관록이 붙은 것 같지는 않다.
=남극 연구의 꽃은 빙하다. 남극 주변부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제대로 된 빙하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2012년 남극대륙에 제2기지가 건설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극지연구소도 기초 자연과학 분야 중심으로 극지 연구와 관련한 국가적 센터로 발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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