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옥·현준희씨 등이 겪어야 했던 고통… 부패방지법에 보호조항 있으나 민간기업 내부고발 활성화 힘들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이른바 ‘조직의 삼성, 관리의 삼성’으로 불리는 삼성그룹 내부에서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그룹 안팎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앞세워 치밀하고 지속적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으로 명성 높은 삼성에서 ‘내부고발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그동안 몇몇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 시도를 막으려는 회사 쪽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을 고발한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삼성그룹 고위 임원을 지냈던 사람의 양심고백은 삼성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비록 3년 전에 이미 삼성을 퇴직하긴 했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이번 양심고백은 ‘내부자의 폭로라고 할 수 있다.
4년간의 소송, 몸과 마음 망가져
1989년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고발했다가 파면·구속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군부재자투표 부정을 알렸다가 구속된 이지문 전 중위, 1996년 외압에 의한 감사 중단을 폭로한 현준희 전 감사원 공무원 사례 등 큰 파장을 일으킨 내부고발 사건이 몇 차례 있었으나 대부분 ‘공직사회’ 내부 폭로였다. 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의 부정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는 거의 없었다.

사실 김 변호사의 경우 삼성에서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양심고백에 따라 파면 등 고용상의 불이익 조처가 뒤따를 위험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문옥·이지문·현준희씨가 그랬듯 내부고발자 앞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김 변호사는 이번 양심고백으로 인해 변호사 업무가 사실상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 김 변호사는 최근, 자신이 일했던 법무법인 서정을 상대로 낸 ‘출자지분 환급청구’ 소장에서 “법인의 동료 변호사가 ㅈ일보 모 부장한테서 ‘김 변호사를 조치(퇴직 등)하지 않으면 다른 기업들 사건을 포함하여 앞으로 기업 사건을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에게 휴직을 권유하였다”고 밝혔다. 또 “지난 7월 다른 변호사들이 나에게 ‘반기업적인 사람이 근무하는 것은 곤란하다. 복귀할 분위기가 아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라.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서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복귀 명분이 선다. 삼성에서 근무해도 된다는 사인이 오면 근무가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삼성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이미 로펌에서 퇴직을 강요받고, 기업체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까지 있었다는 얘기다.
현준희씨 사례는 ‘양심선언’ 이후 내부고발자의 외롭고 기나긴 싸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씨의 폭로 이후 감사원의 해당 공무원들은 현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감사원이 조직적으로 나서 현씨를 ‘엉터리 영웅주의자’로 몰아가면서 현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감사원이란 거대조직과 싸우는 과정에서 대법원은 2002년 현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진실을 기록할 목적으로 어떤 공문서에 현씨가 가필을 한 사실(공문서 변조)에 비춰볼 때 현씨의 주장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 현씨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무모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등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서울지방법원이 현씨에게 다시 무죄를 선고해 순수한 동기에 의한 ‘양심선언’이었음이 확인됐지만, 용감하게 내부 비리를 고발했던 현씨의 몸과 마음은 재심이 진행된 지난 4년간 크게 망가지고 말았다.
현씨가 겪어야 했던 기나긴 소송 싸움은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부고발자를 ‘조직의 배신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고, 양심선언 뒤에는 파면·징계 등 어김없이 조직의 보복이 뒤따른다. 의리 없는 사람, 불순한 동기가 있는 사람으로 매도당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삼성 쪽도 즉각 “사실무근이다. 사실을 오인했다. 불평불만이 많았고, 가정불화도 겹쳐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격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폭로 동기의 불순함을 부각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삼성은 돈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힘들어”
김 변호사에게 “삼성을 떠난 뒤 한참 됐는데 왜 이제야 터뜨리느냐”는 의문이 쏟아질 수도 있다. 이처럼 양심고백의 진실과 본질, 그리고 내부고발자의 고민과 갈등은 뒤로 사라지고 오히려 곁가지가 그를 더 괴롭힐 수도 있다. 물론 삼성 쪽은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 것이고, 김 변호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 지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중앙대 박흥식 교수(행정학과)는 “민간기업에서 퇴직한 이후의 내부고발은 (현직에 있을 때의 내부고발에 비해) 그 ‘순수한 선의’를 증명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민간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에서 이뤄지는 내부고발의 경우 공동체와 공익보호라는 성격도 큰데, 내부고발자가 보상 등 이익은 못 보더라도 최소한 불이익은 당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는 부패방지법에 들어 있는데, 현준희씨 사례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양심선언’ 공직자 보호입법 운동이 일어났다. 1994년에 ‘내부고발자 보호법안’이 입법청원됐으나 통과에 실패하고 대신 2002년 부패방지법에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이 일부 포함됐다. 그러나 부패방지법은 내부고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부패행위를 △공직자의 부패행위 △공공기관에 재산상 손해를 가한 행위로 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내부고발자에게 보복성 징계를 한 경우 원상회복을 명령할 수 있지만, 민간기업의 내부고발자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월에는 내부고발자가 비공직자인 경우에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부패방지법이 개정됐다. 민간기업과 민간단체 소속 내부 공익신고자도 공직자의 경우처럼 부패행위 신고를 이유로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을 때 국가청렴위원회가 원상회복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이재근 팀장은 “국민들이 청렴위의 내부고발자 보호를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법안 개정만으로 민간기업에서 내부고발이 활성화될 것 같지는 않다”며 “특히 삼성은 퇴직 후에도 임원들을 일정 기간 (돈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내부고발자가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간기업 내부고발자는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김 변호사의 경우처럼 ‘양심고백’이란 극단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영국·뉴질랜드 등 10여 개국에서는 ‘디프 스로트’(Deep Throat)로 불리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돼 있다. 미국의 각 주는 누구 및 어떤 행위를 보호하는가와 관련해 공무원뿐만 아니라 ‘주 및 지방자치단체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의 직원’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공중보건·안전·환경 등 공익과 관련된 기업 비리를 폭로할 경우도 신고 및 보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박흥식 교수는 “현대 기업에서 복잡한 조직 내부의 사정을 외부자가 알기는 대단히 어렵고, 내부자 제보가 기업 부패를 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며 “미국의 경우 기업에 법률자문을 하거나 회계감사를 하는 변호사·회계사 등은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하는 공익 측면이 있고, 따라서 비리를 알면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변호사·회계사 신고 의무화
‘무노조 삼성’이라는 지독한 신화가 그렇듯, ‘거대한 감시공화국’이란 오명을 듣는 삼성의 조직문화는 언제부터인가 끊임없이 시대와 불화를 빚고 있다. 불화는 어떤 형태로든 폭발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쪽은 ‘비자금 조성 의혹’은 둘째치고 이번 양심고백을 계기로 또 다른 내부고발자들이 잇따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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