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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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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좀 살살 전하소서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불지옥 같던 시에라리온에도 한국인 선교사가… 공격적인 선교 방식 성찰해야 할 때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지구촌을 두루 다니다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곳곳에서 한국의 종교인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백이면 아흔일곱이 개신교 관련 사람들이다. 자료를 보면, 2006년 현재 1만6천여 명의 선교사가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해외 선교사 수다. 20년 전인 1988년 1천 명을 겨우 넘어섰던 한국 선교사 수는 해마다 두 자릿수의 놀라운 증가율을 보여왔다.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10만 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그럴 경우 한국은 미국을 앞질러 개신교 포교의 메카가 될 것이다.

한국군 없었으면 납치 안 했을까

분쟁 지역을 취재할 때도 한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2001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갔을 때다. 그곳은 10년째 끈 지루하고도 잔인한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병사들은 “테잔 카바 대통령 정부에 지지표를 던지지 말라”는 경고로 비전투원인 시민들을 붙잡아 손목을 도끼로 자르곤 했다. 양 손목을 잃지 않고 한 손목만 잃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의사나 엔지니어 등 상류층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나라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오갈 데 없는 농민 계층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반군의 위협에 떠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해가 지면 무장강도가 날뛰고 언제 포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내전 지역이 대서양 연안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서도 한국의 선교사들이 활동 중이었다! ○○교회에서 파송됐다는 한 선교사는 “이런 불지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선교의 본분”이라며 나름의 사명감을 내비쳤다. 시에라리온은 지난 날 영국의 식민지를 거쳤기에, 많은 이들이 기독교에 익숙한 나라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들과 무속과 주술에 가까운 형태의 토속신앙을 가진 이들도 많다. “무지몽매한 이교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고 밝히는 그 선교사의 눈빛에서 누가 뭐래도 넘어가지 않을 어떤 고집이 읽혔다.

올해 초 이란·시리아·레바논 등 중동 3개국을 취재하러 갔을 때도 선교사들을 만났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는 금기사항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은 관광안내원, 외국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다. 선교사란 직분을 감추고 있으니 ‘위장 취업’인 셈이다. 시리아에서 만난 한 선교사는 아예 자신이 사는 월세 집을 개조해 작은 예배당을 만들어놓았다. 집 바깥에 십자가를 매달아놓진 못하고, 쉬쉬하며 몰래 예배를 보는 형편이다. 어떤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느냐고 묻자, 그는 시리아 현지 사람들도 있지만 이라크에서 넘어온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있다고 했다.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 소속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 인솔자였던 배형규 목사는 끝내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많은 국민들이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2004년 여름 이라크에서 반미 저항세력에 납치됐다가 목이 잘리는 끔찍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김선일씨 사건의 악몽을 떠올렸다. 3년이라는 간격을 둔 두 사건의 공통점은 납치 주동세력이 애초 인질 석방 조건으로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한 데 있다. 나중에 탈레반 수감자 석방으로 요구를 바꾸긴 했지만, 만일 철군 요구를 고집했다면 노무현 정부로선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것이다. 그나마 수감자 석방 문제는 아프간 정부와 미군 쪽이 결정 권한을 가진 일이기 때문이다.

미군 방패 삼아 선교활동 강화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하게 따져볼 게 생겨난다. 한국군이 한-미 동맹이란 질긴 인연의 끈에 매달려 이라크나 아프간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에 ‘억지 부역’을 하지 않았다면, 납치 사건이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군이 이라크나 아프간에 파병되지 않았더라도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이슬람권에 널리 퍼진 한국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한몫한다.

9·11 동시테러 뒤 한국 종교인들은 미국이 중동 정치 지형을 군사력으로 강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후유증(이를테면 이슬람권에 9·11 전보다 훨씬 높아진 반미 정서)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미군의 주둔을 방패 삼아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강화하는 모양새도 없지 않다. 그 극단적인 예가 일부 보수 개신교 사람들이 벌이려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반대로 취소됐던 ‘2006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였다.

2001년 말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서 아프가니스탄이 한국의 개신교 텃밭으로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일부 선교단체의 선교 방식은 현지의 생각이 깊은 무슬림들에겐 지나치게 공세적이고 때로 도발적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피랍 사건은 앞으로만 내달리는 데 익숙한 한국인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땅 밟기’인가 ‘땅 짓밟기’인가

한국 교회의 보여주기식·정복주의적 선교 행태

▣ 이승규 기자 hanseij@nate.com

2005년 아프리카 수단은 막 끝난 내전으로 폐허였다. 이곳에서 선교사들이 가장 열심히 벌인 일은 무엇일까? 교회 짓기였다. 교회는 현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좋은 자리에 주님의 집을 지어야, 한국에 있는 교회에 사진도 찍어 보내고 헌당식도 할 수 있다. 2004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한 식당. 한 무리의 한국 젊은이들이 음식을 시켜놓고 큰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다. 방언까지 섞어가며 열심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대놓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 현지인들은 당황했다. 게다가 기도 내용은 카이로에 있는 사람을 축복하고, 이슬람의 악한 영을 모두 무찔러달라는 것이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되면 수많은 젊은이가 해외 도시를 방문해, 그곳의 땅을 밟으며 기도하고 찬양한다. 몇 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는 이런 ‘땅 밟기’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졌다.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지역을 찾아 땅을 밟고 온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근거를 찾는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니… 너로 인해 그 땅의 백성들이 축복을 얻으리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땅만 밟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이해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이사장 길자연)에 따르면 한국의 선교사들은 2006년 현재 전세계 173개국에 나가 있다. 중국·미국·일본·필리핀·러시아 순이다. 세계 최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우리의 두 번째 선교 대상국인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세계선교협의회는 ‘TARGET 2030’이라는 이름으로 2030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 1988년 한국 교회는 2000년까지 1만 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보내겠다는 ‘꿈’을 세웠고, 이를 실현했다.
한국 교회의 ‘일방적 선교’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교계 안에서도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변한 건 없다.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하는 사람의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내의 한 교단은 약 2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 중 10%에 달하는 200여 명이 현지에 신학교를 세웠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양국주 선교사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전형적인 한국의 선교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교회개혁 운동가인 구교형 목사(성터교회)는 한국의 ‘선교 지상주의’에 대해 “현지인을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선교 대상으로만 여기게 된다”면서 “이런 시각으로 선교를 하면 복음의 ‘전령’이 아니라 정신적 ‘점령군’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이들은 이런 ‘정복주의적 선교 행태’와는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다. 종교가 무엇이건, 고난받는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국주 선교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회는 진정 예수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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